당시 도올은 문화일보 입사 전으로 자료수집 등을 위해 동남아 일대를 여행하고 있었으며 김 전회장은 외국 지인의 별장에서 도올을 만나 "평생을 개인의 영예나 이익을 생각지 않고 열심히 일하며 살아온 나를 (김대중 정부가) 파렴치한 사기꾼으로 몰고 있다"고 주장했다.
문화일보는 두 사람의 만나 나눈 대화를 26일자에서 인터뷰 형식으로 보도했다.
▼관련기사▼ |
김 전회장은 이 자리에서 대우가 무너진 이유에 대해 "김대중 정권의 신흥관료체제 가치관과의 근원적인 갈등의 소산"이라며 "'파워'의 관성에 대한 너무나 막연한 믿음 때문에 나는 그들(신흥관료들)을 너무 믿었다. 그런데 그들은 너무도 성급했다"고 설명했다. 대우는 죽여야 할 대상이 아니었음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이 부족했다는 것. 신흥관료들은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었다는 것이 김 전회장의 주장이다.
그는 또 "내가 도대체 왜 대한민국을 위해 그토록 죽기살기로 일했는지 생각해보면 한스럽다. 대한민국은 나에게 너무도 싸늘한 배신의 등을 돌렸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이어 건강과 관련, 장유착증세로 수술을 한 차례 받았으며 몸무게가 73㎏에서 63㎏줄고 29인치 바지를 입고 있으나 건강은 비교적 양호한 상태라고 김 전 회장은 전했다.
한편 김 전회장의 귀국여부에 대해 그의 한 측근인사는 "김대중 정부에서 '단죄'된 대우문제를 노무현 당선자와 새 정부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김 전회장의 입국여부와 시기가 결정될 것"이라며 "노무현 당선자가 경제분야와 재벌정책 등에서 현 정부의 기조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아 당장은 귀국하기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노 당선자가 대선 직전에 현 정부의 정책에서 실패한 부분은 책임도 지우고 떼어내 생각하겠다고 말한데 기대감을 갖고 있다"면서 "대우를 국가경제를 망친 장본인으로 규정하고 있는 현 정부의 '대우관(觀)'이 바뀌어 김 전회장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해명할 수 있게 된다면 멀지 않은 장래에 귀국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회장은 대우사태가 발생한 1999년 10월 중국 옌타이 자동차부품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가 종적을 감춘 뒤 계속 해외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 현재 유럽에 체류중인 것으로 알려진 그는 지난달 말 대우그룹 분식회계사건을 맡아온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대선 이전 귀국여부를 놓고 의견을 물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달 대우그룹 분식회계 사건에 대한 항소심에서 국내자금 해외유출 및 불법 외환거래 혐의에 대해 24조3588억원의 추징금이 선고된 것도 김 전회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 90년말 한 달 여동안 아프리카와 동유럽 등을 여행하면서 교분을 쌓았으며 김용옥씨는 당시 나눈 대화를 담은 책 '대화'(통나무출판사·1991년 출간)에서 김 전 회장을 가리켜 "한국기업사에서 새로운 전기를 이룩한 성인(聖人)"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대우그룹 경영비리 사건'은 검찰이 지난해 2월 대우그룹의 분식 회계과 불법 대출 등에 연루된 그룹 임직원 50여명을 기소하면서 수사가 일단락됐다.
검찰은 당시 대우그룹 임직원이 97∼98년 총 41조1361억원에 대한 분식회계를 통해 금융기관에서 9조9201억원을 불법 대출을 받고 97∼99년 수입서류를 위조하거나 자동차 수출대금을 빼돌리는 수법으로 모두 44억달러의 회사 재산을 해외로 도피시켰다고 밝혔다.
이들은 법정에서 "대부분 김우중(金宇中) 전 회장의 지시에 따랐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전문경영인들이 자리 보전 등을 위해 그룹 총수의 무책임한 차입경영에 편승, 기업윤리와 책임을 저버린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질책했다.
그후 지난해 12월 대검찰청에 공적자금비리 수사 본부가 발족된 뒤 김 전 회장이 비자금을 조성한 한 뒤 정치인에게 뇌물을 준 혐의도 추가로 드러났다.
최기선(崔箕善) 인천시장이 98년 대우타운 건립 추진 과정에서 대우자동차판매㈜로부터 3억원을 받은 혐의와 민주당 송영길(宋永吉) 의원이 대우자판에서 1억원을 받은 혐의 등이 그것.
장병주(張炳珠) 전 ㈜대우 사장, 이상훈(李相焄)전 ㈜대우 전무, 강병호(姜炳浩) 전 대우자동차 사장, 전주범(全周範) 양재열(梁在烈)전 대우전자 사장 등 김 전 회장의 측근은 지난달 말 열린 2심 선고 공판에서 집행 유예로 풀려났다.
하지만 부실 경영과 불법 대출의 '사령탑'인 김 전 회장이 귀국하지 않아 사건의 진상은 완전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한편 경찰청은 26일 김우중(金宇中) 전 대우회장이 지난 11월 16일 태국에 입국했다가 이달 1일 로마로 출국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그러나 김 전 회장이 어느 도시를 경유해 태국에 입국했는지, 수행원이 동행했는지 등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경찰청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이 로마로 출국함에 따라 이태리 등 유럽지역의 인터폴에 소재확인을 요청했다"며 "김 전 회장이 로마를 거쳐 다른 유럽 국가로 떠났는지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허승호기자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