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 26일 충남 아산시 인주면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생산라인.
전날 꿀맛 같은 크리스마스 휴일을 보낸 덕분인지 생산라인은 활력으로 넘쳤다. 이곳 근로자들은 휴일에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하루 낮밤 2교대 근무에다 토요일은 매주, 일요일은 한 달에 두 차례씩 특근을 한다. 그런데도 3만5000대의 주문차량이 밀려 있다.
안달이 난 안주수(安柱洙!?전무)공장장은 노조 대표에게 “일요일 특근을 좀더 할 수 없느냐”고 몇 차례 사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 공장장은 “(온전히 쉴 수 있는 휴일이 며칠이나 된다고) 휴일특근을 요청하는 게 스스로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놓는다.
현대차 아산공장은 한국 수출차의 대표 차종인 뉴EF쏘나타와 그랜저XG를 57초 간격으로 1대씩 토해 낸다. 시간당 평균 63대, 하루 평균 1160여대씩 생산하는 셈.
이 공장의 가동률은 평균 97%선. 하루 중 생산라인이 멈춰선 시간을 계산하면 20분 남짓에 그친다. 일본 도요타자동차(99%)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자동차 형체를 만드는 차체공장엔 ‘1분 정지시 10만7072원 손해’라고 적힌 큼직한 표어가 시선을 휘어잡는다.
이성규 총무팀 대리는 “311대의 ‘기계군단’ 용접로봇이 1분 정지할 경우 10만원 이상을 손해본다는 뜻”이라며 작업라인의 팽팽한 긴장감을 전했다.
아산공장은 2003년에는 생산설비의 한계치인 시간당 66대 생산에 도전한다. 이는 연간 29만9000대 생산으로 한계 생산능력(연 30만대)에 바짝 다가서는 것이다.
현대차 아산공장은 지금 ‘두 개의 전쟁’을 준비 중이다. 생산성과 품질면에서 전세계 자동차공장을 압도하는 것이다. 2003년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기틀을 다지는 해다.
아산공장은 2001년 영국의 조사전문기관인 월드마케팅 리서치가 분석한 전 세계 ‘자동차 조립공장 생산성분석’에서 4위를 차지했다.
뉴EF쏘나타와 그랜저XG는 미국 자동차시장 조사업체인 JD 파워사의 2002년 하반기 품질만족도(APEAL) 조사에서 보급형 중형차부문 1,2위를 석권했다.
박완배 차량생산기술팀장의 머릿속엔 2004년 뉴EF쏘나타 후속모델을 위한 생산라인 조정구상으로 꽉 차있다. 모듈(여러 부품을 한데 묶은 부품세트) 적용비율을 끌어올리고 부품공장에서 생산된 모듈을 아산공장의 각 공정에 적시에, 자동으로 공급하는 최적의 물류시스템을 연구 중이다. 그렇게 하면 ‘2007년엔 일본 도요타의 품질과 생산성수준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게 박 팀장의 계산이다.
의장(조립)공장 이호대 복합팀장은 특근을 ‘밥먹듯’하면서도 얼굴엔 생기가 넘쳐난다. 동료들의 땀과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차가 외국에서 호평을 받을 땐 절로 신이 난다는 것.
하지만 이들에게 유연한 근무자세와 자부심 열정을 불어놓는 동인(動因)은 남부럽지 않은 경제적인 혜택.
“잦은 특근 때문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이곳 현장근로자들은 급여가 꽤 많은 편입니다. 일감이 밀려있는 올해도 넉넉하지 않을까요. 가정과 회사가 튼튼하니까 우리가 만드는 자동차의 품질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네요.”
이 팀장은 2003년에 흘릴 땀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긴장이 된다며 씩 웃었다.
아산〓이강운기자 kwoon90@donga.com
▼신도리코/복사기 넘어 IT기업으로▼
‘복사기 회사에서 최첨단 미래 사무자동화를 선도하는 글로벌 IT기업으로.’
신도리코의 영업사원들은 스스로를 ‘IT 컨설턴트’라고 부른다. 단순히 복사기를 파는 것뿐만 아니라 컴퓨터와 디지털 복합기의 연결 및 활용, 공간 라인 배치 등까지 컨설팅해 준다는 자부심이 깔려 있다.
이 회사의 새해 전략은 ‘컴퓨터만큼 똑똑한 사무기기’로 디지털 네트워크 중심의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복사기 프린터 팩스 스캐너에 편집기능까지 모두 갖춘 디지털 복합기가 올해 시장을 공략할 핵심 ‘무기’이다.
신도리코는 지난해 ‘변화와 성장’이라는 주제로 기업이미지 통합(CI) 작업을 끝낸 뒤 연구원 180명을 앞세워 차세대 디지털 복합기 연구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1960년 개성상인 출신의 고 우상기 회장이 창업한 신도리코는 42년 동안 복사기 생산의 한 길을 파온 한국의 대표적 중견 기업.
탄탄한 수익구조와 투명경영은 업계에 끊임없이 회자되는 경영의 ‘모범 답안’으로 통한다. 창사 이래 42년간 한 번도 차입경영을 하지 않았고 현재 현금성 자산만 3000억원에 이른다.
순이익 중 매년 30%씩을 종업원과 주주에게 돌려주고 30%는 설비투자 및 연구개발에 투자한다는 원칙도 깨뜨린 적이 없다. 나머지 10%는 꼬박꼬박 사회에 환원해 왔다.
사원을 먼저 생각하는 인화경영은 신도리코의 또 다른 강점. 생산직과 사무직의 거리감을 없애기 위해 사무직 직원들도 작업용 유니폼 차림으로 일하는 것이 좋은 예다. 사장과 임원들도 파란색 실로 소속과 이름이 박혀있는 흰색 웃도리와 바지를 입는다.
수억원대 작품들을 빌려 전시한 갤러리와 세련된 휴게실, 실내 농구장, 대나무 정원 등이 어우러진 회사 건물은 기업체 사옥이 아니라 문화 전문 공간으로 착각하게 한다. 본관 전체의 70%가 극장과 노래방 등 복리후생 공간으로 꾸며진 충남 아산 공장의 분위기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600억원 이상의 순이익을 낸 것으로 추정되는 신도리코는 “우리 회사 최고”를 외치는 사원들의 열기를 등에 업고 힘차게 2003년 양띠해를 달려 나가고 있다.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커뮤니케이션 윌/하이마트 광고로 대히트▼
광고대행사 커뮤니케이션 윌의 신년 제작 회의.
이날 회의에 참석한 최진수 사장과 광고기획자(AE), 프로듀서, 카피라이터들은 자유로운 분위기의 광고계 종사자들답게 각자 편안한 자세로 앉아 의견을 발표하거나 생각에 골몰하고 있다. 그러나 느긋해 보이는 이들의 태도 뒤에는 일말의 비장함이 감돈다. 지난해 큰 일을 해냈다는 자부심과 올해에는 더 큰 성장을 일궈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서린 눈빛들이다.
2000년 7월 설립된 중소 광고대행사 커뮤니케이션 윌은 지난해 한마디로 ‘히트’를 쳤다. 이 회사가 만든 하이마트의 ‘오페라 시리즈’ 광고는 대형 광고사들의 작품을 제치고 대한민국 광고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현대증권의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공익 광고로 동상을 받는 경사까지 겹쳤다.
광고회사들의 실적을 말해주는 취급액은 2001년 230억원에서 지난해 400억원으로 뛰어올랐다. 광고업계 순위도 2001년 30위권 밖에서 지난해 20위로 등극했다. 1년 전 설립한 계열사인 영화 제작사 시네윌은 얼마전 ‘피아노 치는 대통령’을 개봉했다.
커뮤니케이션 윌의 올해 목표는 광고업계 10위권 진입. 광고업계에서 차츰 인정을 받으면서 대기업 광고를 따내기 위한 경쟁 프리젠테이션에 참가하는 기회도 부쩍 늘어났다.
규모가 작은 신생 광고대행사일수록 크리에이티브 능력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 법. 커뮤니케이션 윌이 진행하는 광고 프로젝트에는 업계 경력 30년이 넘는 사장에서부터 몇 달 전 입사한 신입사원까지 동등한 자격으로 참가한다.
새해 전략을 논의하는 이날 회의에도 이 회사 전체 직원의 3분의 1에 가까운 10여명이 모습을 나타냈다. 회의 주제는 최대 광고주인 하이마트의 광고 방향을 잡는 작업. 컨셉 설정에서부터 모델 기용에 이르기까지 여기저기서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보름앞으로 다가온 광고주 회의 때까지 이런 아이디어 회의는 매일 열린다.
모든 기업들에게 주어진 도전은 기존의 것을 능가하는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끊임없이 선보이는 것. 커뮤니케이션 윌의 직원들은 ‘2년생 징크스’를 뛰어넘어 광고계의 선두주자로 부상하기 위해 오늘도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작업에 골몰하고 있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