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본부 폐지 유도 ▼
인수위〓재벌개혁 프로그램의 일환인 대기업 구조조정본부 존폐 검토는 사실상 이 조직이 그룹 계열사 구조조정이라는 본연의 업무보다는 재벌 총수 비서실 역할을 하면서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구조조정본부는 현 정부 들어 이름만 바꿨지 역할은 예전 그대로 불투명한 관행을 따르고 있다는 게 인수위의 판단이다. 이런 시각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서 줄기차게 요구해온 재벌개혁 프로그램과 같은 맥락이다.
상장회사 임원들의 연봉 공개를 추진하려는 것도 구조조정본부의 불투명한 행보와 직결돼 있다.
노 당선자의 한 핵심 관계자는 “구조조정본부에서 어떻게 하면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고 재벌 2세들에게 변칙적으로 상속과 증여를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업무에 상당한 노력을 쏟고 있다”면서 “상장사 임원 연봉을 공개해야 한다는 것도 구조조정본부 임원들의 역할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인수위의 한 고위 관계자는 “구조조정본부가 출범한 뒤 그 역할에 대한 평가가 전무했다”고 지적하고 “구조조정본부가 말 그대로 계열사 구조조정을 하는 사령탑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더 이상 존치할 필요가 있는지를 인수위에서 종합 검토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경제계=인수위 관계자의 ‘구조조정 본부 폐지 유도’ 발언에 대해 경제계는 “기업의 조직까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지나친 권력 남용”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대기업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들은 “외환위기 직후에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들은 ‘정부가 시장 시스템을 벗어나 사기업의 경영조직까지 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권고했다”면서 “잘 하고 있는 기업분야는 제발 좀 놔두고 공기업과 정부조직이나 효율화할 방안을 찾으라”고 입을 모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김석중(金奭中) 상무는 “기업의 조직까지 정부가 붕어빵 찍듯이 좌지우지하려는 것은 문제”라면서 “기업이 환경팀을 신설하면 그것도 허락을 받아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구조조정본부는 기업이 필요에 의해 운영하고 있는 조직이며 제너럴일렉트릭(GE)이나 씨티그룹 등 해외 대기업들도 모두 헤드쿼터를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모 그룹 구조조정본부의 임원은 “구조본은 산업의 수직 계열화나 장기 전략 설정 등을 통해 한국 기업의 국제 경쟁력 강화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면서 “여러 가지 순기능이 있고 한 가지 역기능이 있다면 그 역기능을 시장시스템이나 다른 제도를 통해 바로잡아야지 구조본 자체의 폐지를 운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구조조정본부=그룹의 종합기획실 또는 비서실의 후신으로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원활히 한다는 목적 아래 새 이름으로 태어났다. 삼성 LG SK 한화 등 많은 계열사들을 거느린 그룹에 있으며 업무는 과거 기획실이나 비서실과 비슷하다. 그룹에 따라 영향력이나 역할이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계열사들의 인사와 재무구조, 장기 사업 전략, 경영진단 등에 포괄적으로 간여하며 이들을 종합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상속세 완전포괄주의 전환▼
인수위=상속 증여세에 대한 완전포괄주의는 ‘전문가를 동원해 세법의 허점을 뚫고 부(富)를 세습하는 행위’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뜻이다.
노 당선자는 이미 대선 공약 수립을 위해 전문가그룹과 토론하는 과정에서 재벌들의 반칙을 막으려면 확실하게 이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인수위측은 삼성그룹 이재용(李在鎔) 상무보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동원한 상속을 변칙상속의 대표사례로 꼽고 있다.
또 완전포괄주의가 필요한 이유로 국회가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비상장 기업주식의 매각’ 조항을 세법 개정안에 반영시킨 사례를 들고 있다. 당시 A기업은 특수관계인 B씨에게 비(非)상장 주식을 헐값에 넘긴 뒤 다른 상장사와 합병하면서 주가가 폭등했다. 민주당 김정수 수석전문위원은 “국세청은 당시 과세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엄청난 차익을 얻은 B씨측에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2000년 개정된 현행 세법도 포괄주의를 부분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증자 합병 결손법인 등 13가지 유형에 해당될 때에만 상속 증여세를 적용하는 ‘유형별 포괄주의’에 그치고 있다. 김 수석전문위원은 “편법 세습을 번번이 그냥 두고볼 수만 없다는 것이 노 당선자의 거듭된 신념”이라고 말했다.
▽경제계=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도입에 대해서는 경제계는 물론 조세법 학자들 사이에서도 반대하는 의견이 많다.
최명근(崔明根·조세법) 경희대 교수는 “완전포괄주의를 도입하면 ‘과세 관청’이 무소불위에 가까운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며 “과세 관청의 중립성 보장 등 시행여건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유형별 포괄주의에 관한 평가도 제대로 하기 전에 완전포괄주의를 도입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면서 “국제적 흐름에도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캐나다와 뉴질랜드는 상속 증여세를 양도소득세로 전환했고 미국은 상속세 폐지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는 것.
김두형(金斗炯·법학·변호사) 숙명여대 교수는 “일부 학자들은 현행 유형별 포괄주의조차도 위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지금도 한국은 상속 및 증여행위를 지나치게 넓게 해석하는 나라”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완전포괄주의 논란은 과세 관청이 극소수 ‘재벌’의 절세(節稅) 기법을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면서 “일부 계층의 문제 때문에 중산층까지 정당한 재산권을 침해당할 위험이 있다”고 강조했다.
또 재정경제부나 국세청의 실무자들 사이에서도 “너무 서두르면 부작용이 클 것”이라는 신중론이 적지 않다.
정부당국의 한 실무자는 “완전포괄주의라는 정의부터 모호하다”면서 “분명한 한계를 정하지 않으면 아버지가 아들에게 밥을 사주고 학비를 대줄 때도 증여세를 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고 말했다.
▽상속 증여세 완전포괄주의=한국은 세법에 열거된 상속 증여행위에 대해서만 과세를 하는 ‘열거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유형별 포괄주의’로 이를 보완하고 있다. 유형별 포괄주의란 법에 열거된 것과 유사한 상속 증여행위에 대해서도 과세를 할 수 있는 제도로 2000년말 도입됐다. 완전포괄주의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법에 열거되지 않았더라도 ‘사실상의’ 상속 증여가 발생하면 모두 세금을 매기는 것을 말한다.
천광암기자 iam@donga.com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증권 집단소송제도 도입 ▼
인수위〓증권 관련 집단소송제에 대해 노 당선자측은 “재계와 타협하거나 어정쩡하게 시간을 끌 사안이 아니다”며 재계의 도입 보류 요청을 ‘엄살’로 보고 있다. 노 당선자도 “첫 단계에서 아주 제한적으로 실시하는 것이므로 기업들이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면서 조기 도입 의지를 강력히 밝혔다.
노 당선자는 집단소송제 도입을 대기업 개혁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제도가 도입돼 이사회가 소액주주를 두려워하기 시작하면 △‘지분 5%’를 갖고 사실상 전권을 갖는 대주주의 역할 재정립에 대한 기업지배구조 개선 △거수기 역할에 그치는 사외이사제도 △투명한 회계처리 등을 둘러싼 문제가 자동 해결된다고 믿고 있다는 것.
민주당 김효석(金孝錫) 제2정조위원장은 “노 당선자가 대통령 선거 공약을 만드는 과정에서 실무팀과 토론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된 양보할 수 없는 카드”라고 못박았다.
대기업이 부작용으로 내세우는 소송 남발에 따른 기업 신뢰 하락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 인수위의 시각이다. 소송 대상이 법으로 금지된 사기 등 명백한 불법행위에만 국한되고, 법원이 사전 심사를 통해 무리한 소송을 걸러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제계=증권집단소송제도 도입에 대해 재계는 매우 부정적이다. 허위공시 주가조작 분식회계 등 불공정행위를 뿌리뽑아 경영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도입에 따른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는 주장이다. 극단적으로는 회사가 걸핏하면 소송에 시달려 제대로 굴러가기 어려울 것으로 우려된다는 것.
한국경제연구원 이인권 박사는 “집단소송제가 도입돼 소송이 자주 제기되면 주가가 떨어지는 등 기업이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며 “근거 없는 소송을 막기 위한 요건을 명확히 하고 손해액 산정 시점과 추정액을 객관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심사능력을 갖춘 뒤에야 집단소송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주주가 피해를 보면 현재도 민법상의 당사자제도에 의해 구제받을 수 있다”며 “대표소송은 승소의 이익이 회사로 반환되지만 집단소송은 승소 이익이 소를 제기한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주주들에게 직접 돌아가므로 기업, 특히 대기업의 부담이 엄청나게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S사의 한 임원도 “재정경제부가 국회에 냈던 집단소송제 도입 방안에선 소송 제기에 대한 특별한 제약을 두지 않고 법원이 허가 여부를 결정하도록 해 소송 남발이 우려된다”며 “증권거래법과 외부감사법 등에 소액주주를 보호하는 장치가 있는 만큼 집단소송제를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증권 집단소송제도=기업의 허위공시나 주가조작 및 분식회계 등으로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보았을 때 구제하기 위한 제도. 피해를 본 소액주주가 대표가 돼 변호사와 함께 소송을 제기한 뒤 재판에서 이기면 그 효과가 전체 주주에게 미치게 된다. 재판의 효과가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에게만 있는 현 제도와 다른 점이다. 미국과 캐나다의 일부 주에서 도입하고 있다.
홍찬선기자 hcs@donga.com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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