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재벌정책 긴급좌담<上>]기업 지배구조 개선

  • 입력 2003년 1월 3일 18시 08분


《새 정부가 추진하는 대(對)기업 정책의 큰 방향이 하나둘씩 제시되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최근 재벌개혁을 위한 제도적 틀로 구조조정본부 폐지 유도, 증권분야 집단소송제,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등을 구상 중이다. 이에 대해 대기업들은 법률이나 기업 현실을 들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긴급 전문가 좌담을 열어 양측의 찬반 양론을 들어 봤다. 김상조(金尙祚·한성대 교수)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소장이 재벌개혁을 주장하고 전국경제인연합회 김석중(金奭中) 상무가 대기업들을 옹호하면서 토론을 벌였고 홍익대 선우석호(鮮于奭皓) 교수가 진행을 맡았다. 구조조정본부 폐지 등 기업지배구조 문제와 증권 집단소송제로 주제를 나누어 2회로 싣는다.》

■구조조정본부 폐지

▽선우석호 교수〓재벌개혁에 대한 새 정부의 의지가 상당히 강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한국경제가 ‘태풍 속의 배’처럼 떠 있다는 것이다. 제기된 문제를 중심으로 얘기하되 전체적으로는 한국 경제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생산적인 토론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수위원회가 제시한 내용들이 기업경쟁력과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그 반대가 될 우려가 많은지를 점검해보자.

구조조정본부 문제는 사실상 해당되는 그룹이 몇 개 안 되는데 새 정부가 가시적인 성과나 상징성 등을 원해서 추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도 있다.

▽김석중 상무〓DJ정부 때 청와대 등에서 전경련에 “5대 그룹의 자료를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구조조정본부에서 그런 기능을 하지 말라고 해놓고 무슨 자료냐, 개별 기업들에 각각 자료요청하라고 했지만 막무가내로 자료를 내놓으라고 했다. 구조조정본부는 장기 기획전략, 계열사간 상충문제 해결, 인력 확충 등에서 필요한 측면이 많다. 어떤 조직이나 제도도 역기능과 순기능이 있다. 역기능만 보고 없애라고 하면 안 된다.

▽선우 교수〓구조조정본부의 긍정적 기능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정부 주도의 개발이 이뤄지고 자본시장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는 경제발전을 위해서도 구조본의 존재가 필요했다. 그러나 개별기업의 경쟁력이 강해지고 자율성이 중요해지는 시대에는 투명경영의 필요성이 더 강해진다. 한 계열사에서 번 돈을 다른 기업에 써버린다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매우 당황스러운 일이다. 지주회사 제도를 활용하지 못하니까 이런 문제가 나온다.

▽김 상무〓현재 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위한 요건이 너무 까다롭다. 노무현 당선자는 더 강화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니까 기업들이 구조본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조직 존폐 여부는 기업이 알아서 할 일이다.

▽김상조 소장〓구조본을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대통령직 인수위의 문제의식에는 동의하지만 정부가 해체를 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기업이 구조본의 기능 자체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될 때 없어지는 것이다. 인수위의 ‘구조본 폐지 유도’ 발언은 내부에서도 조율이 안 된 것으로 보인다. 재계도 과민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다고 본다.

현재 구조본은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하면서도 공정거래법을 충족시키는 지주회사로 전환하지 못하고 있다. 지주회사 체제로 변신하려면 지주회사가 비상장사 계열사 지분의 50%, 상장 계열사 지분의 30% 이상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앞으로도 지금처럼 적은 지분으로 순환출자 등을 통해 많은 계열사들을 지배하려 하니까 지주회사로의 전환이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구조본이 남아 있는 것이다.

지주회사는 권한과 함께 그에 상응하는 법적 책임도 진다. 책임성이나 투명성에서 지금의 재벌구조보다 훨씬 장점이 많다. 지금도 지주회사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동원그룹과 LG가 이미 지주회사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지금의 구조본은 권한은행사하면서 그에 따른 책임은 전혀 안 진다.

▽김 상무〓투명성이나 지주회사의 필요성 등에 대해서는 다 동감한다. 그러나 제도와 정책은 이상적인 것도 좋지만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기업집단들이 지주회사로 안 가고 편법적인 경영을 한다면 처음엔 완화해서 전환하도록 유도하고 단계적으로 조건을 높여야 한다. 가령 5년간은 자회사에 대한 30% 지분도 인정해주고 그 후에는 단계적으로 높여서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유도해야 한다. 기업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만들어놓고 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좋지 않다.

▽선우 교수〓정부 정책의 일관성도 중요하다. DJ정부에서도 구조조정을 계속 하라고 하면서 기업을 퇴출시키려고 하면 실업률이 올라간다고 하지 말라고 하는 등 정책 추진에 일관성이 없었다. 경제는 경제논리로 풀어야지, 정치적 부담 때문에 정치논리를 자꾸 개입시켜서는 곤란하다.

▽김 소장〓사실상 노무현 정부가 집중해야 할 사안은 새로운 정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난 5년 동안 도입된 많은 새로운 제도를 엄정하게 집행하는 것이 일차적인 과제다. DJ정부는 많은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지만 사실상 기업개혁, 금융개혁에 실패했다. 제도가 미비해서가 아니다. 일관성 있게 집행하지 못함으로써 각 경제주체의 의식과 행동에 철저히 자리잡지 못했다.

▽김 상무〓전적으로 동감이다. 제도 정착이 우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국세청 등 감독기구들이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추는 게 급하다. 예쁜 기업은 봐주고 미운 기업만 못살게 굴었다.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선우 교수〓구조본은 전 시대적 유물이라는 공감대는 있는 것 같다. 긍정적 역할을 많이 했지만 변화가 요구되는 조직이다. 노무현 정부가 지주회사로 전환되도록 제도화했으면 한다. 다만 기업에 지나친 비용 부담이 없도록 현실을 감안해서 유연하게 해야 한다. 그동안 법은 있지만 금감원 공정위 등에 너무 정치적 입김이 반영된 것이 5년간의 개혁정책이 실패한 이유다. 노무현 정부는 법이 일관되고 공평하게 집행되도록 해야 하고, 그러려면 정부 개혁이 같이 따라줘야 한다.

■이사회의 역할

▽김 상무〓사외이사의 독립성을 얘기하면서 이사회의 찬성률이 너무 높다는 얘기를 한다.이는 기업의 실체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기업 이사회에서 사내이사와 사외이사가 꼭 서로 싸워야 하는 것처럼 오해하고 있다. 대부분의 이사회 안건은 사전에 충분히 검토를 거친 것이다. 대부분의 안건은 동의하고 넘어가는 것이 사실이다. 이걸 보고 거수기라느니 도장만 찍는다고 하는데 그건 실정을 모르는 소리다. 사외이사를 무조건 늘리는 게 좋으냐는 것도 짚어야 한다.

▽김 소장〓집행임원과 이사들의 역할은 구분돼야 한다. 이사는 주주를 대신해 조언하고 견제하는 사람들이다. 집행임원들이 실제 경영을 하는 것이다. 이를 생각하면 사외이사 비율을 더 높여도 된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3가지 관행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사 선임과정과 평가, 책임을 묻는 제도가 고루 잘 갖춰져야 한다. 우선 이사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소액주주들이나 이해관계자들을 대변 하는 이사가 선임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줘야 한다. 한 사람만 있어도 된다. 이를 위해집중투표제 도입이 필요하다.

둘째는 이사들이 역할 수행 과정에서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주어야 한다. 이사의 활동과 평가, 보상 규정을 만들고 이에 따른 평가와 보상 내용을 공시해 주주들이 알도록 해야 한다. 지금은 임원보수를 총액만 공개하고 이사회 내부에서 알아서 처리한다.

셋째는 이사들이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회사에 손해를 끼치면 이에 대해 책임을 추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주주대표소송과 집단소송이 활성화돼야 한다.

▽김 상무〓선임절차를 어떻게 더 강화하란 말인가?

▽김 소장〓주주가 할 수 있도록 집중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김 상무〓그 폐해를 잘 알지 않는가.

▽선우 교수〓지배구조와 관련해 이사회의 역할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하겠다. 사외이사의 역할은 집행임원들에게 딴죽거는 게 아니다. 회사 이해관계자들간에 이해가 상충되는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고 회사가 잘못된 경영활동을 하려고 할 때 이를 막는 등 최악의 상태를 막는 예방 역할이 중요하다. 잘못된 결정에 대해 책임지는 것은 지금도 엄격하고 집단소송 제가 도입되면 더욱 책임이 커지므로 어떤 사외이사도 잘못된 결정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지금 제도에서도 집중투표제가 불가능하지 않다. 일단은 지금 수준에서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출자총액제한제도

▽선우 교수〓노 당선자는 지금 상태를 유지하자는 쪽인 것 같다. 지주회사로 가고

집단소송제도 도입되면 출자총액제한제도 같은 기업 규제는 점차 없어져야 할 것으로 본다. 지주회사로 나아가고 순환출자가 사라지면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의미가 없어진다. 지주회사로 유도하면서 투명성과 계열기업 자율성을 함께 해결해야 한다.

▽김 상무〓완전히 한 바퀴를 도는 ‘고리형 순환출자’는 문제다. 그러나 어떤 회사가 다른 회사에 출자하는 것을 막으면 안 된다. 기업이 10년 뒤까지 지금 사업만 갖고 먹고 살 수도 없고 신규 사업을 해야 하는데 이를 막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사회 주주총회 금융기관 등의 시장시스템을 통해서 제어해야지 출자총액제한 등의 규제를 하는 것은 안 된다. 이걸 법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전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다.

▽김 소장〓맞다. 기업이 다른 회사에 투자하는 것을 문제삼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은 자기자본의 30%, 총자산의 15%를 계열사의 주식으로 가지고 있다. 이것은 정상적인 투자가 아니다. 이는 총수의 지배력을 유지하고 부실기업을 보조하기 위한 것이다.

상법과 증권거래법이 제대로 살아 있고 금융기관들이 제 역할을 한다면 공정거래법의 기능은 줄어든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언젠가는 없어질 것이다. 다만 현재 기업의 지배구조개선 속도를 보아가면서 폐지 여부를 맞춰가야 한다.

현재의 출자총액제한제도에 대해서는 재계나 시민단체 모두 불만이다. 지금 출자총액제한제도는 효과는 없고 행정비용만 많이 드는 ‘누더기 규제’다. 이 제도를 규정한 공정법 10조는 A4용지 4장이나 된다. 예외조항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단순화해서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선우 교수〓현재 출자총액제한제도는 효과는 없이 행정비용만 많이 든다. 지배구조를 개선하려는 목적이라면 예외규정을 없애고 지주회사가 정착되는 시기에 철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정리=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

△1962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서울대 경제학박사

△한성대 경상학부 교수(현)

■김석중 전경련 경제조사본부장 상무

△1956년생

△고려대 농경제학과

미국 콜로라도주립대 대학원 석사

미국 퍼듀대 농업경제학박사

△리스협회 부장

여신금융협회 기획부 부장

■선우석호 홍익대 경영대 경영학부 교수

△1951년생

△서울대 응용수학과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

경영 대학원 경영학석사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

재무관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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