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홍기획 ‘프리젠테이션통’ 한광규 국장

  • 입력 2003년 1월 6일 17시 16분


그리고 침묵이 흘렀다.

대홍기획 광고3본부 한광규 국장(45·사진)은 식은땀이 등줄기를 적시는 것을 느꼈다. 내색할 수는 없었다. 무표정한 교원그룹 임원진 7명을 향해 한층 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교과서 보고, 빨간펜 보고.’ 이 카피로 우리는 ‘빨간펜’을 들어는 봤지만 뭔지 잘 모르는 학부모들에게….”

발표가 끝났다. 언제나처럼, 박수를 치는 사람은 없었다. 이번에도 대입시험을 치른 기분. 그는 퇴근길에 포장마차를 찾았다.

다음날 교원그룹에서 연락이 왔다.

“계약합시다. 기왕이면 그쪽에서 제시한 중장기 광고계획까지 집행할 수 있도록 합시다.”

1984년 7월 대홍기획에 입사한 한 국장은 시장 조사를 담당하다가 90년부터 지금의 업무인 영업기획을 시작했다. 새 광고주를 영입하고, 기존 광고주를 관리하는 게 그의 일. 회사의 아이디어를 광고주들 앞에서 발표(이른바 ‘PT’·Presentation)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잦아졌고, 그는 PT에 재능을 보였다.

“광고회사에 있어서 PT는 모든 일의 시작입니다.”

광고주 없는 광고는 없다. ‘광고를 이렇게 만들겠다’고 제시하는 PT에 따라 광고주는 광고 대행사를 선택하고, 한 차례의 PT가 광고대행사의 매출 수억∼수백억원을 좌우한다.

회사에서 ‘PT의 달인’으로 통하는 그는 ‘빨간펜’ 브랜드가 인지도는 높지만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을 시장 조사를 통해 발견했다. 그리고 중장기 계획으로 △‘빨간펜은 전과목 학습지’임을 널리 알리고(‘교과서 보고 빨간펜 보고’) △‘빨간펜은 누구나 하는 학습지이기 때문에 나도 안 하면 뒤질 수 있다’(‘빨간펜 모르면 간첩’)는 인식을 전하는 방안을 효과적으로 내놓았고 교원측은 그의 PT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 것 같은 발표장 분위기에서 끝까지 확신을 잃지 않고 주장을 펴는 게 성공적인 PT의 비결”이라는 그는 남들 앞에서 발표를 잘하기 위해 다음을 명심하라고 했다.

①내용 몸동작 표정 등을 100% 각본에 의해 연출할 것 ②사적인 얘기를 간간이 섞고 발표 도중 한두 번 웃음이 터져 나오게 할 것 ③어려운 용어를 쓰지 말 것 ④핵심은 짧게 한마디로 표현해 강렬한 인상을 남길 것.

나성엽기자 cpu@donga.coj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