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서류의 핵심은 기업의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를 비롯한 재무제표. 미국은 작년에 엔론 월드컴 등 대기업들의 분식회계 사건이 잇따라 터지자 위헌 논란에도 불구하고 CEO의 재무제표 인증제도를 도입했다.
국내에서는 대우그룹 분식회계를 계기로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다. 기업이 작심하고 재무제표를 조작한다면 외부 감사기관인 회계법인이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감사기간에 이를 찾아내기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회계법인이 재무제표 결과에 책임을 지는 만큼 경영진에도 무거운 법적 책임을 지워 분식회계를 하고 싶은 유혹을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취지다.
이 안건은 지난해 금융감독위원회가 마련한 회계제도 개혁방안에 포함됐으나 재계의 강력한 반발에 부닥쳤다.
그러나 인수위는 기업의 회계투명성을 확보하려면 이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고 특히 ‘형사처벌도 감수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켜 CEO가 자신의 이익 또는 대기업 총수의 부당한 지시에 따라 재무제표를 조작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수위의 한 관계자는 “기업이 공시하는 재무제표에 CEO가 서명하지 않겠다는 것은 ‘사실임을 증명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재계는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형사처벌이 가능한데 굳이 형사책임의 서약까지 요구하는 것은 이중규제”라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처벌대상에 단순한 실수와 회계정보 누락까지 포함되면 기업활동이 지나치게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을 꼽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미국은 CEO가 단기성과에 치중해 분식회계를 저질렀지만 한국은 장기성과를 경영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상황이 다르다”며 “이미 내부 회계관리제도 등에 따라 CEO가 법적 책임을 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증시(NYSE)에 상장돼 있는 국민은행의 김정태(金正泰) 행장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외국기업은 CEO 인증제도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공표했는데도 자발적으로 재무제표에 서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