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외국인들은 대한상의를 잘 안다. 한국에 나와 있는 미국 기업의 대표기관은 주한미국상의이다. 독일상의도 있고 유럽연합상의도 있다. 이처럼 전경련은 대단히 ‘한국적인 존재’이며, 대부분의 국가에서 기업의 목소리는 상의가 내고 있다.
전경련은 요즘 골치 아픈 일들이 많다. 재벌개혁을 표방하고 있는 차기 정부와의 관계설정을 놓고 고심하는 가운데 한 외신보도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전경련 김석중 상무가 “대통령직인수위의 목표는 사회주의”라며 원색적인 공세를 펼친 것으로 보도된 것. 인수위는 발끈하며 해명을 요구했고, 김 상무는 발언내용을 부인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내달 6일로 예정된 차기 전경련 회장 선임도 힘겨운 숙제다. 새 정부와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누려면 힘있는 오너회장이 맡아야 한다는 것이 내부의 바람이지만 전망은 불투명하다.
전경련은 그렇지 않아도 최근 몇 년 사이 대우 한보 기아 현대 등이 잇따라 와해되면서 위상추락에 시달려왔다. 회원관리에 문제가 생기자 2000년에 회원자격규정을 고쳐 합작기업과 벤처기업 유치에 주력했지만 성과가 뚜렷치 않다. 또 회원범위가 겹치게 된 상의 중소기업중앙회나 인터넷기업협회 등과 갈등도 있다.
국내에 경제단체 숫자가 너무 많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일본의 경제단체연합회(한국의 전경련에 해당)와 경영자단체연맹(경영자총협회에 해당)이 통합됨에 따라 경총과 전경련의 통합주장도 진작부터 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 전경련의 정체성 문제다. 가진 자의 이익만 대변하고 재벌클럽 노릇만 한다는 이미지가 고착되면 국민의 외면을 받을 수 있다. 시간이 갈수록 그렇다. 이 즈음에 차라리 ‘건강한 보수주의의 대변인’을 자임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보수세력이 꼭 존경받을 행보만 해온 것은 아니다. ‘국가나 권력의 개입에 반대하고 시민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옹호한다’는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제대로 실천해온 합리적 보수, 사려깊은 보수가 빈곤했다. 대신 권위주의 정권과 유착한 기회주의자들이 일정부분 포진해 있었다. 반공이데올로기와 봉건적 관행, 비리 등의 이미지도 엉켜 있다. 아직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일부 대기업의 재벌적 행태는 시장주의와 한참 거리가 멀다.
사회가 건강하려면 건강한 진보뿐 아니라 건강한 보수가 필요하다. 최근 전경련이 윤리경영상을 제정해 투명하고 신뢰있는 경영을 해온 기업을 포상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 일이 전경련의 앞길과 관련해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허승호 경제부 차장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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