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계열분리 곳곳 '암초'

  • 입력 2003년 1월 15일 18시 20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정부가 금융회사 계열분리청구제와 의결권 제한 강화에 대한 본격 검토에 나섰다. 그러나 초기 검토단계에서부터 많은 부작용이 예상돼 경제부처들이 고민에 빠졌다.

재정경제부의 한 당국자는 15일 “금융감독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과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기에 앞서 내부검토를 해보았으나 계열분리청구제는 문제점이 너무 많아 실효성 있는 시행방안을 만들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밝혔다.

▽계열분리청구제 추진 배경=인수위와 민주당은 금융회사가 ‘재벌의 사금고’처럼 활용되는 것을 막고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서 이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김효석(金孝錫) 민주당 제2정조위원장은 “금융회사가 고객이 맡긴 자산으로 사들인 주식으로 계열사에 유리하게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설명했다.

계열분리청구제는 대기업그룹 계열 금융회사가 계열사를 부당하게 지원하면 행정기관이 법원에 계열분리를 청구하거나 행정기관이 직접 계열분리명령을 내리겠다는 것이 주요 뼈대.

또 의결권 제한 강화란 43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80개 금융회사도 지난해 1월부터 국내 계열사 주식에 대해 임원 임면(任免), 정관 변경, 합병 및 영업양도 등의 사안에 한해 30%까지 의결권 행사를 허용받았으나 이를 다시 금지시키겠다는 것.

▽‘국부(國富) 유출’ 가능성=정부가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 원칙에는 찬성하면서도 계열분리청구제 도입에 회의적인 이유는 국부 유출 가능성 때문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예컨대 삼성생명이 계열분리 명령을 받았다고 가정할 때, 이를 인수할 수 있는 곳은 현실적으로 외국계 자본밖에 없다”면서 “부실이 없는 알짜기업을 외국자본에 넘기면 국민이 수긍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의결권 제한도 비슷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한 대기업의 재무담당자는 “금융회사의 의결권을 제한하면 외국인에게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당할 위험이 커진다”고 우려했다. 2001년 말 현재 증권거래소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한 주식보유비율을 보면 국내 일반기업이 20.32%, 국내 증권사 보험사 투신사 종합금융사 금고 등은 8.71%에 불과한 반면 외국인은 36.62%에 이른다.

또 외국계 금융회사들의 한국 시장 점유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그나마 경쟁력을 갖고 버티는 회사가 대기업그룹 계열인데 이들의 손발을 묶어야 한다는 점도 정부로서는 고민이다.

▽외국에도 없는 법=정부가 부닥친 실무적 고민 가운데 하나는 외국에서도 계열분리청구제를 입법한 예가 없다는 점. 그만큼 시행착오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재계는 소니 르노 다임러크라이슬러 등 세계적인 제조업체들이 최근 은행업에 진출하고 있는 국제적 추세를 들어 산업과 금융자본의 분리는 낡은 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보험사와 투신운용사를 제외한 다른 금융회사는 고객의 돈으로 영업한다고 보기 어려워 계열분리청구제를 강제할 명분이 약하다”면서 “금융회사의 계열사 부당지원에 대한 감독과 제재를 강화하는 것이 대기업의 사금고화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천광암기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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