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브랜드' 시장상황에 업체들 긴장

  • 입력 2003년 1월 20일 17시 56분


“유명 브랜드? 물건은 똑같은데 괜히 이름값 하느라고 비싼 거 아냐?”

막강한 브랜드 위력을 자랑하던 기업들이 올해 새로운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브랜드 위력 덕분에 그동안 제대로 검증 받지 않아도 괜찮았던 ‘품질’이 본격적인 시험 무대에 오른 것이다. ‘브랜드 제품이 과연 브랜드라는 장점을 버리고 중저가 제품과 경쟁해도 이길 수 있을까’가 관전 포인트다.

▽브랜드 떼고 경쟁하라〓어느 날 정부가 “앞으로 사이다는 무조건 ‘하얀 사이다’로 이름을 통일해 팔아야 한다”는 법을 새로 만들었다고 하자. 이 경우 가장 큰 손해를 보는 회사는 ‘칠성사이다’라는 브랜드 하나로 시장을 완전 장악했던 롯데칠성이다.

이와 비슷한 일이 실제 휴대전화 업계에서 일어났다. 정부가 모든 신규 휴대전화 번호를 010으로 통일하는 ‘휴대전화 번호이동성 제도’를 내년부터 도입키로 한 것.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번호가 있습니다”라는 광고 카피를 내세울 정도로 ‘011 브랜드’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던 SK텔레콤으로서는 날벼락을 맞은 셈. 이제 SK텔레콤은 011이라는 브랜드를 떼고 순전히 가격과 통화품질로 경쟁해야 한다.

▽최악의 상황에서 경쟁하라〓남성 의류는 브랜드의 위력이 맹위를 떨치는 대표적인 시장.

옷이 유행을 별로 타지 않아 한번 고급 브랜드의 이미지를 갖추면 소비자가 꾸준히 그 제품을 찾는다. 제일모직(갤럭시 로가디스) LG패션(닥스 마에스트로) FnC코오롱(맨스타 아더딕슨) 캠브리지(캠브리지멤버스) 등 4사가 수십 년째 과점을 유지해온 것도 브랜드의 위력 덕분.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신용카드 대출 억제로 소비 심리가 주춤하면서 위기가 시작됐다. 브랜드 남성복은 품질에 비해 비싸다는 인식이 강한 제품. 소비자가 알뜰해질 수밖에 없는 불경기에 ‘브랜드 때문에 비싸다’는 이미지는 장점이 아니라 약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올해 1월 주요 백화점 정기 세일에서 남성 정장은 지난해에 비해 매출이 2% 정도 감소했다.

▽관전 포인트〓‘진짜 브랜드’라면 위기에서도 위력을 발휘해야 한다. 브랜드 이름을 제품 겉에 드러내건 속에 감추건 늘 잘 팔리는 유럽 명품들처럼 011도 ‘010’이라는 이름으로 성공할 수 있어야 진짜 브랜드라는 것.

남성 의류도 소비심리가 나빠질수록 ‘두 벌 살 옷을 한 벌로 줄이는 대신 제대로 된 한 벌을 사겠다’는 소비자의 구매 심리를 끌어내야 진짜 브랜드로 대접받을 수 있다.

남성 의류 회사의 올해 1·4분기 실적과 SK텔레콤의 내년 상반기 실적이 나오면 이들 브랜드의 진짜 실력이 드러날 전망이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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