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지난해 실적을 발표하는 모임을 마련한 네오위즈 임직원들은 “오늘도 6, 7명밖에 안 오면 어떡하지?”라며 근심 어린 얼굴로 서로를 쳐다봤다. 그러나 지금의 네오위즈는 과거의 네오위즈가 아니었다. 발표 시간이 임박하자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경제연구소 연구원 60여명이 구름떼 같이 몰려들었다.
박진환 사장은 기쁨에 들떠 떨리는 목소리로 경상도 사투리를 섞어가며 전문가들의 질문에 대답하기 시작했다.
“지,지난해 매출액은 사백십억원, 여, 영업이익은 구십, 구십 오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올해에는….”
▽‘헛것을 누가 사겠어?’=지난해 4월 16일, 1·4분기(1∼3월) 실적발표 자리에 참석한 전문가는 6명에 불과했다. 1억2000여만원의 당기 순손실을 기록하기는 했지만 박 사장은 세이클럽(www.sayclub.com)의 유료화 성공 자신감을 표시했다. “유료화 1년 만에 매출액 100억원을 돌파한 만큼, 아바타 사업이 네오위즈에 큰 성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지만 애널리스트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그림 따위를 누가 사겠어요?” “그거 그냥 사람들이 호기심에서 한 번씩 돈 낸 결과로 나타난 일시적 현상 아닙니까?” “글쎄요…”
그날 밤 박진환 사장은 퇴근하지 않았다. 빈 사무실에 앉아 서글픔을 곱씹었다.
‘아니야, 될 거야. 사람들이 돈을 내기 시작했어. 그게 중요한 거야.’
박 사장은 벌떡 일어나 손에 잡히는 아무거나 집어 바닥에 내팽개쳤다. 전화기가 박살났다. 그는 소리쳤다.
“된다고,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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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전문가들은 틀렸다. 문자 ID 대신 사용자를 상징하는 데 사용하는 캐릭터(아바타)는 세이클럽 회원 사이에서 생활 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캐릭터를 치장하는 데 쓰는 모자나 신발 자동차 등의 그림(아이템)이 하루 2000만∼3000만원어치씩 팔려나가면서 안정적인 수익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게임 서비스를 추가해 달라”는 1900만 회원의 요구에 따라 게임 개발업체 ‘엠큐브’를 인수, 서비스하기 시작한 세이게임(www.saygame.com)도 꾸준히 매출이 늘고 있으며 올해 3·4분기에는 세이클럽 매출을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시작이다=네오위즈의 저력은 회의에 있다. 직원 190명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팀 단위로, 동료 단위로 회의를 연다. 크고 작은 회의가 줄잡아 하루 100여건이 열린다.
회의에서 나온 수 백건의 아이디어는 사내 전산망의 ‘아이디어뱅크’에 △주제별 △팀별로 나뉘어 저장되고 숙성된다.
캐릭터와 게임, 확실한 수익모델 두 개를 확보하면서 ‘이제 안정기에 접어든 게 아니냐’는 주위의 시선에 대해 네오위즈 직원들은 단호하게 대답한다.
“아이디어뱅크에 저장된 모델 수 천 개 중 이제 두 개를 꺼내 썼습니다.”
나성엽기자 cpu@donga.com
▼박진환 사장 인턴뷰
“악몽같은 16개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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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환 사장(사진)은 1996년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네오위즈 전략기획본부장으로 일하다가 2001년 3월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당시에는 네오위즈의 주력상품인 전화선을 이용한 인터넷 자동접속 프로그램 ‘월 클릭’이 초고속 인터넷의 급속한 대중화 때문에 서서히 ‘죽어가던’ 시점이었다. 취임 후 16개월 동안, 지난해 2·4분기(4∼6월) 세이클럽에서 ‘대박’이 터지기 전까지 줄어들기만 하는 매출액 때문에 “하루도 뒷목이 뻣뻣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는 것.
“처음 해 보는 CEO였다. 소중한 경험이 됐다. 앞으로는 자신 있다.”
‘CEO수업’을 마쳤다는 그는 네오위즈의 미래에 대해 “아직 현재도 안 지나갔다. 미래를 논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그는 “사람들이 인터넷 혁명을 얘기했을 때는 아바타나 게임 수준을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회사의 ‘아이디어뱅크’ 속에서 뜸들이고 있는 수 백개의 사업모델 중 2, 3개가 앞으로 4, 5년 안에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진정한 ‘인터넷 세상’이란 인터넷으로 인해 인간의 생활양식이 완전히 바뀌어 사는 곳.
그는 네오위즈가 닷컴 기업의 선봉에 설 수 있는 조건으로 기술력과 인력구성을 들었다. 현재 네오위즈는 수십만명의 동시접속자가 몰려도 서비스 속도가 변하지 않도록 사용자들을 여러 대의 서버에 나눠 접속시키는 ‘분산처리기술’ 등 안정적인 인터넷 서비스를 위한 다양한 노하우를 갖고 있다. ‘아바타’가 돈이 될 것을 내다본 감각파 임직원 190명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
박 사장은 “지금까지 온 길은 보지 않겠다. 남들이 겁나서 못 가는 길에 발을 과감히 딛는, 그런 기업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올해 31세다. 나성엽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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