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은 언제부터인가 공과금 수납을 처리하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영업점에 무인 공과금수납함을 만들었고 A은행도 예외는 아니었다.
영업점 입구에 있는 수납함에 계좌번호, 비밀번호, 전화번호를 적은 메모지와 공과금 지로용지를 함께 넣으면 은행 직원이 알아서 계좌에서 돈을 빼간다.
최씨는 한달째 지로 영수증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영수증을 받기 위해 A은행 지점으로 갔지만 “공과금 영수증 배송을 일괄 처리하는 서울 영업점에 문의해 보라”는 말만 들어야 했다.
최씨는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만 있으면 현금카드를 위조할 수 있다는데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이 수납함을 뒤지기라도 하면 집 주소에 전화번호까지 알 수 있으니 무슨 일이 생길지 아찔하다”고 말했다.
최씨의 사례에서 보듯이 은행 고객들의 개인 정보가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우리은행 농협 등의 현금카드 위조 사건은 고객 정보를 함부로 다루는 은행들도 일부 책임을 져야 하는 ‘예견된 사고’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회사원 송모씨(37)는 현금입출금기(CD)로 돈을 찾을 때마다 기계에서 나오는 거래전표를 잊지 않고 주머니에 챙긴다.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은행 무인점포 내 휴지통에 예금잔액 등 금융정보가 적힌 거래전표가 수북이 쌓인 광경을 볼 때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정보를 들여다본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은행 직원에게 “자동화기기 옆에 종이 파쇄기를 비치해 줄 수 없느냐”고 몇 차례 요청해봤지만 “알아보겠다”고만 할 뿐 몇 개월째 소식이 없다.
김모씨(41)는 얼마전 신용카드 비밀번호를 바꾸기 위해 B은행을 찾았을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기분이 개운치 않다.
창구 직원이 내주는 문서에 인적 사항과 계좌번호, 새 비밀번호 등을 적어 건네줬더니 은행 직원은 “잠시만 기다리라”며 문서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자리를 비웠다. 김씨는 잠시 다른 생각을 하다 옆 창구로 얼굴을 돌렸더니 자신이 써낸 문서를 어떤 사람이 보고 있었다.
은행 직원이 돌아왔을 때 다른 비밀번호를 적어냈지만 고객 정보를 너무 함부로 다룬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지난해 9월 강모씨(43)는 서울 경기 일대에서 점심시간에 빈 사무실에 들어가 신용카드 등을 훔쳐 100여 차례에 걸쳐 2억원을 빼낸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수사 결과 강씨는 피해자들의 인적 사항을 알아낸 뒤 은행에 전화를 걸어 “직장 상사인데 비밀번호가 필요하다”며 비밀번호를 알아낸 것으로 밝혀졌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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