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본관 건물 앞 화단에는 배씨의 사진을 확대한 걸개그림이 붙어 있고, 배씨의 시신이 안치된 보일러공장과 단조공장 사이의 ‘민주광장’에서는 조합원들이 천막농성 중이었다.
배씨의 분신 이후 조업은 계속되고 있으나 두산 노조원과 노동계 인사들은 거의 매일 사내에서 추모집회와 보고대회, 촛불시위 등을 개최한다. 회사 밖에서도 ‘두산제품 불매운동’과 거리선전전을 계속하고 있다.
25일 오후에는 분신사망대책위가 창원 ‘만남의 광장’과 서울 두산타워 앞에서 두산을 규탄하는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대책위는 “회사측이 조합원의 성향과 주변환경 등을 분석한 5단계 개인별 등급을 정해 노동운동을 조직적으로 탄압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특별근로감독 실시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첨예한 시각차=이번 사태를 보는 회사측과 노동계의 시각차가 워낙 커 양측의 갈등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회사측은 “불법 파업을 주도한 세력들이 배씨의 분신을 다른 목적에 이용하려 한다”는 시각인 반면 노동계는 “두산의 ‘백화점식 노동탄압’이 분신을 부른 만큼 이번에 이를 개선토록 하겠다”고 벼른다.
그동안 3차례 열린 노사간 협상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지난해 5월 노조 파업 후 해고된 18명의 원직복직과 70여명의 징계 철회, 고소고발 철회 문제가 걸린 탓이다. 배씨의 분신도 이런 문제의 해결이 지지부진한 데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회사측은 “지난해 폭력이 수반된 47일간의 불법 파업 책임을 없는 것으로 하고 원점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은 이러한 불법 파업을 끝없이 반복하도록 조장하는 효과를 낳기 때문에 검토할 가치가 없다”고 밝혔다. 다만 노조원 개인재산 가압류 해제 부분은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배씨의 부인으로부터 협상 권한을 위임받은 전국금속노조연맹측은 “노조를 탄압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적어도 이런 문제는 풀고 넘어가야 한다”며 “지난해의 파업은 단체협약 일방 해지와 고소고발 등으로 노조를 무력화하려는 것에 항의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현장 노동자 분위기=사내외의 각종 규탄집회가 계속 열리고 있지만 조업은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 이는 규탄시위 등에 참석하는 두산중공업 노동자들이 100명 안팎에 불과하기 때문. 그나마 대부분이 노조 대의원이나 간부들이다. 그러나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현장 노동자들의 마음도 뒤숭숭하기는 마찬가지다.
단조공장에서 만난 40대 기능공은 “배씨의 죽음은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라면서도 “노조 집행부에서 여러 문제를 함께 들고 나오는 바람에 조합원의 동참이 저조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금속노조 경남지회의 박유호(朴有好) 조직부장은 “조합원의 참여율이 낮은 데서 두산의 노조탄압과 현장통제가 얼마나 철저한지 알 수 있다”며 다른 해석을 내놨다.
회사의 한 간부는 “23일 회사에서 열린 노동자대회 참석자 500명 중 정작 두산 노조원은 100명에 못 미치는 등 강경 일변도의 집행부에 상당수 조합원이 등을 돌린 상태”라고 주장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측은 “분신사건 직후인 10일과 13일을 빼고는 조업률이 떨어지지 않았으며 매출손실도 거의 없다”고 밝혔다. 다만 안정되지 않은 회사 분위기 때문에 바이어 초청 설명회나 업무 협의에 어려움이 많아 사태가 조기에 해결되지 않으면 직간접의 피해가 우려된다고 전했다.
회사측이나 노동계는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사태의 조기 수습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창원=강정훈기자 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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