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근무하는 서울옥션은 기업들이 소장한 많은 미술품을 경매를 통해 처분해 주고 있다. 주로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했거나 파산한 법인들이 처분을 의뢰하는데 국내 유수의 은행, 건설회사, 증권회사, 전국에 산재한 종금, 리스 회사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소장품들이 대부분 특별한 주제나 일관성이 없고 작품성이 떨어지는 조악한 수준이어서 국내 기업의 미술품 컬렉션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한때는 잘 나가던 기업들이었다는 점에서 이들 기업의 미술품 컬렉션 행태를 한국 기업의 표본쯤으로 간주해도 무방할 것이다.
기업의 컬렉션은 동기가 투자이든, 장식이든, 아니면 소유주의 취향에 따른 것이거나 예술가를 후원하려는 메세나 활동이건 건축물의 조형물과 더불어 공공 환경을 구성한다. 직원이나 고객은 물론 지나가는 일반 시민들에게 문화적 풍요로움을 줘야 한다는 면에서 사유물이지만 공익에 봉사해야 하는 것이다.
작품성이 낮으면서 주위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거리 조형물이 공해이듯이 기업 사무실이나 금융회사 객장을 장식한 조악한 미술품은 끊임없이 그것과 마주쳐야 하는 사람들에게 참을 수 없는 공해일 수밖에 없다. 물론 해당 기업의 재산 손실을 초래하고 이미지도 실추시킨다.
뿐만 아니라 기업은 미술시장에서 주식시장의 기관투자가 역할을 한다. 따라서 기업의 미술품 소장은 더욱 중요하다. 기업이 건전하고 올바르게 미술품을 구입하면 훌륭한 작가를 육성하고 미술을 건전하게 발달시키는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종종 말썽이 되듯이 거리 조형물의 설치나 미술품 구입에 작품성이 아닌 검은 거래가 개입되면 미술계 전체를 파행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선진국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기업들은 거의 예외 없이 아트 컬렉터라고 보면 된다. 사무실에 걸려있는 그림으로 최고경영자를 판단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이다.
어디 최고경영자뿐이랴. 은행가 의사 변호사들도 일하는 공간을 장식하고 있는 미술품으로 평가받는다. 최근에는 이런 움직임이 중소기업에까지 확산되는 추세다. 이들은 미술품 수집 이유로 근무환경 개선과 투자가치를 으뜸으로 꼽고 있다.
단기간에 적은 자본으로 가장 성공한 기업 컬렉터로는 미국 보험회사인 프로그레시브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컬렉션의 성패는 수집가의 철학과 열정, 그리고 안목에 있는 것이지 돈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이 회사는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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