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2003]경남 밀양5일장 "설 장이니…덤도 듬뿍"

  • 입력 2003년 1월 28일 18시 24분


설을 닷새 앞둔 27일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밀양장은 제수용품을 장만하려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치고 있다. 밀양=박형준기자
설을 닷새 앞둔 27일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밀양장은 제수용품을 장만하려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치고 있다. 밀양=박형준기자
‘5일장을 기억하시나요?’

서울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은 매일 장이 서는 ‘상설시장’. 하지만 아직 시골에는 5일마다 장이 서는 곳이 많다.

1989년 시로 승격된 경남 밀양만 해도 아직 2일과 7일장이 선다. 장날이면 시골 할머니들은 정성스럽게 키운 콩나물과 나물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이른 아침부터 좌판을 벌인다. 27일은 설을 앞둔 마지막 장이라서 더욱 활기에 넘쳤다.

#오전 7시30분. ‘비가 와도 장은 선다.’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오후에는 영하 5도 이하로 뚝 떨어질 것이라는 일기예보도 있었다. 하지만 밀양 시내 서쪽 귀퉁이에 자리잡은 시외버스터미널 앞은 이른 아침부터 노점상들로 붐볐다. 1년에 한번 있는 가장 큰 대목이 바로 설 직전 장이다.

“비가 오더라도 지사(제사) 지낼 나물하고 생선은 사야지요. 오늘 하루가 손님이 제일 많을 낍니더(겁니다).”

리어카에 각종 멸치를 널어놓은 텁수룩한 50대 노점상이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늘 하루 운을 점쳤다. 리어카나 용달차 짐칸에 물건을 풀어놓은 경우는 그래도 ‘재력’ 있는 상인들. 시골 텃밭에서 키운 나물을 들고 나온 할머니들은 길바닥에 주저앉아 손님을 기다린다.

“이거 다 팔면은 3만원은 안 넘겠나. 그라믄(그러면) 조기하고 사과 몇 개 사갈라고.”

나물을 팔아 생선과 과일을 사겠다는 할머니에게는 돈이 별 의미가 없다. 필요한 물품을 살 수 있을 만큼 가진 채소를 팔면 그것으로 만족할 뿐이다.

#오전 11시5분.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다.’

빗방울이 점점 가늘어졌다. 장보러 나온 손님도 더욱 몰리기 시작했다.

설을 앞둔 장터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곳은 생선 코너. 과일이나 공산품은 설 하루 전에도 구입할 수 있지만, 생선은 미리 사서 손질을 해 놔야 하기 때문이다.

“아지매(아주머니), 오징어 1마리 3000원입니더. 2마리 사면 5000원에 가지고 가이소.”

시골 장에는 가격표가 없다. 이야기만 잘하면 오징어 2마리가 4000원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오후 2시30분. ‘5일장은 시골 잔치.’

주차단속 차량이 장터 주위를 계속 맴돌고 있다. 지난해 초만 해도 시청 공무원들은 길가에서 불법으로 영업하는 노점상들을 단속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예 노상 판매를 허용하고 교통 흐름을 막는 불법주차를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5일장을 더 키워야지요. 밀양시에서 불법이라고 몰아붙이면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가겠습니꺼.”

상가협의회 김영건(金永建) 대표는 “장터는 시골 잔칫집과 같다”고 말했다. 굳이 약속을 하지 않더라도 장이 서는 곳으로 가면 이웃동네 노인들을 다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날씨가 따뜻한 봄, 가을에는 물건을 사는 사람보다 마실(놀러) 나온 노인이 훨씬 더 많다고 귀띔했다.

#오후 5시20분. ‘반값에라도 팔자.’

“자, 6마리 만원 하던 갈치가 10마리 만원. 반값입니다, 반값.”

5시가 넘어가자 상인들이 하나 둘 ‘땡처리’를 외쳤다. 갑자기 장터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시골 장터의 가격 경쟁력은 바로 떨이장사에 있을지도 모른다. 따로 생선이나 과일을 남겨가 봤자 보관할 장소가 없어 당일 물건은 그날 다 팔아야 한다. 장 끝 무렵에는 가격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곤 한다.

오후 6시. 날은 꽤 어두워졌다. 상인들은 하나 둘 짐을 쌌다. 시골 장터에는 따로 문닫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어두워지면 그때가 곧 돌아갈 때.

빈 광주리를 머리에 인 할머니들이 차례차례 버스에 올랐다. 빈 상자를 실은 용달차도 떠날 채비를 했다. 다시 닷새 후를 기약하며.

밀양=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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