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개방' 현실 인정 … 농업정책 대전환

  • 입력 2003년 2월 4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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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쌀값을 인위적으로 떠받치지 않겠다.’

정부가 1948년 수매제도를 도입한 이래 처음으로 수매가 인하를 결정한 것은 쌀 정책의 대전환을 뜻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박동규(朴東奎) 연구위원은 “이제 쌀값은 결코 오르지 않으며 국내 생산량을 늘리지도 않겠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수매가 인하에 대해 농민단체는 물론 여야 정치권의 거부감이 적지 않아 최종적으로 ‘인하 방침’이 유지될 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더 이상 ‘쌀값 부양’은 없다=농림부 고위 당국자는 “내년은 물론 앞으로 추곡수매가를 올리지 않겠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방침”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수매가 인하뿐 아니라 생산량 감축도 유도할 계획이다. 인위적 가격 부양이 한계 농가의 쌀 농사 중단 등 구조조정을 막았다는 판단이다.

정치권도 농민의 반발을 의식하지만 개방 현실은 인정한다. 한나라당 이상배(李相培) 정책위의장도 “인하는 곤란하지만 인상도 어렵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개방 협상 앞두고 불가피하다”=정부가 정치권과 농민들의 반발을 예상하고도 수매가 인하를 결정한 것은 개방 시한에 쫓겨 불가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 진행 중인데다 세계무역기구(WTO) 쌀 협상이 내년으로 다가옴에 따라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얘기다.

정부는 그동안 국내 쌀값이 수입산의 4배를 웃도는데도 보조금과 수입제한으로 버텨왔다. 인위적 쌀값 부양은 엄청난 수급 불균형을 가져왔다. 국내 쌀값은 96년 수입 쌀값의 4.3배였으나 2002년 4.9배에 이르렀다.

개방이 눈앞에 다가왔는데도 국내외 쌀값 차이는 오히려 늘어나 개방의 충격을 키워온 꼴이다.

국내 쌀 소비량은 꾸준히 감소했지만 재고량은 적정 재고의 2배로 급증했다. 쌀 저장 비용, 감가상각비, 금융비용 등 재고에 따른 부담이 한 해 5000억원을 넘어섰다.

▽구조조정 시급=정부는 개방 대책으로 △국내외 가격 차이 축소 △품질 향상 등을 추진키로 했다. 이와 함께 농가의 충격을 무마하기 위해 논농업직불금 등 보조금을 확대할 예정이다.

농업전문가들은 쌀 농업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종합 정책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박 연구위원은 “소득이 보전되는데 누가 쌀 농사를 중단하겠는가. 보조금은 임시방편이며 오히려 수급 불균형을 확대할 것”이라며 과잉생산에 따라 한 해 5000억원에 육박하는 비용을 농업을 포기하는 노령농과 영세농에 대한 생활 지원과 농가당 경작 면적 확대를 위한 지원 등에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조조정을 추진하더라도 2004년 WTO 쌀 협상에 따라 농가의 치명적인 피해가 우려된다. 현재 국내 쌀 수입은 소비 물량의 4%만 허용되고 있다. 쌀 수출국들은 내년 WTO 협상에서 수입물량 제한 대신 관세화를 추진하고 있다. 국내외 쌀값 차이를 고려하면 100%가 넘는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농가 피해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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