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情과선물]서울 정수초등학교 졸업생과 선생님 ' 情나누기'

  • 입력 2003년 2월 12일 19시 14분


서울 종로구 혜화동 한 음식점에서 서울 창신초등학교 이영 교사와 제자들이 음료수로 건배를 하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박영대기자 sannae@donga.com
서울 종로구 혜화동 한 음식점에서 서울 창신초등학교 이영 교사와 제자들이 음료수로 건배를 하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박영대기자 sannae@donga.com
졸업시즌이다. 눈물 뚝뚝 흘리며 헤어지지 않겠다고 엉엉 울던 초등학교 졸업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잘못한 제자를 꼭 안아주며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타이르시던 선생님의 인자한 모습은 시간이 흘러도 쉬 잊혀지지 않는다.

‘졸업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믿는 스승과 제자들을 12일 늦은 저녁 서울 종로구 혜화동의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이날 대학로 주변은 하얀 밀가루를 뒤집어 쓴 고교 졸업생들이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며 아쉬움을 달래느라 밤늦도록 시끌벅적했다.

# 졸업은 끝이 아니잖아요

서울 창신초등학교 이영 교사(41)가 언제나처럼 먼저 도착했다. 뒤이어 모임의 ‘연락책’ 남모란씨를 시작으로 이 교사 제자 중 첫 번째 졸업생인 서울 정수초등학교 89년 졸업생 ‘5인방’이 모였다.

체력이 약해 이 교사의 걱정이 끊이지 않았던 남씨는 이동통신회사에 다니고 있다. 반장을 도맡아 했던 ‘모범생’ 유용호씨는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할 예정. 뒤늦게 헐레벌떡 들어온 박순석씨는 이 교사의 속을 꽤 썩인 말썽꾸러기. 지금은 끼를 살려 이벤트 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부반장’ 권지영씨는 출판사에 취직했고 올해 결혼을 앞두고 있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유현주씨는 이비인후과 간호사가 됐다.

“순석이 왔냐, 이쪽으로 앉아라.” “용호는 유럽여행 잘 다녀왔어? 입사도 몇 일 안 남았구나.”

제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던 이 교사의 얼굴이 밝아졌다. 어느 덧 식탁 위에서는 삼겹살이 지글지글 익기 시작했다.

# 10년 만의 만남

“난 그대로인 것 같은 데 얘들을 보면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알 것 같아.”

이 교사가 옛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스물일곱살 동갑내기 제자들과 이 교사가 다시 만난 것은 졸업한 지 딱 10년이 되던 1999년이었다. 친구 중에 하나가 불쑥 이 교사를 찾아가자는 제안을 했다. 근무지를 수소문해서 알아낸 뒤 1999년 5월1일 이 교사가 근무하던 서울 창신초등학교에 불쑥 찾아갔다.

“선생님, 10년 만에 인사드렸는데 어떻게 이름과 반 번호를 모두 기억하셨어요.”(지영)

“너희들이 졸업한 뒤 매일 아침 기도를 드리고 나서 제자들의 번호와 이름을 외웠지. ㄱ, ㄴ 순서대로 번호가 정해져 있어 그렇게 어렵지 않았어. 물론 지금은 제자들이 너무 많아 포기했지만 말야.”(이 교사)

기독교 신자인 이 교사는 10년 만에 찾아 온 제자들을 보고 반 번호와 이름을 모두 기억해냈다. 제자들은 지금도 친구 이름이 가물가물하면 이 교사에게 물어본다고 했다.

# 1989년 추억 속으로…

이 교사가 제자들의 졸업앨범을 꺼내자 자리가 이내 어수선해졌다. 졸업앨범 사이에는 당시 제자들과 등산을 갔을 때 찍은 빛 바랜 컬러 사진도 몇 장 들어 있었다.

‘최선을 다하는 어린이’라는 급훈 밑으로 49명의 앳된 아이들의 얼굴이 죽 늘어서 있었다. 그 옆에는 지금보다 훨씬 젊은 이 교사의 말쑥한 사진이 있었다.

“학교 2층에서 떨어진 아이를 우연히 발견한 선생님이 아이를 등에 업고 맨발로 병원까지 뛰어가셨어요.”(용호)

제자들이 기억하는 이 교사는 이런 모습이었다. 6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비상연락망이 왔다. 내일 학교에 모여 등산을 간다는 것. 비상연락망을 확인하기 위한 전화가 아니었다. 등산 채비를 갖추고 학교 앞으로 모이라는 ‘행동강령’이 내려왔던 것.

“지금은 엄두도 못낼 일이에요. 지난해 방학 때 아이들에게 등산 장비를 갖추고 나오라고 비상연락을 하고 교문 앞에서 기다렸지만 아무도 오지 않더군요.”

이 교사는 달라진 세태를 실감한다. 학원이다 어학연수다 해서 방학이면 더 바쁜 요즘 아이들이 안쓰럽기만 하다.

등산으로 주제가 모이자 제자들과 다시 만나 지난해 3월 떠났던 수락산 등산 이야기가 나왔다.

“선생님의 허름한 가방에서 따끈한 물이 담긴 보온병과 컵라면이 나왔어요. 마치 요술가방같은 느낌이 들었죠.”(모란)

허름한 요술 가방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것일까. 제자들은 그해 스승의 날에 선생님에게 근사한 배낭을 하나 사드렸다. 스승과 제자들은 옛 이야기에 흠뻑 빠져 고기가 타는 줄도 몰랐다.

#1969년, 옛 스승을 찾습니다

“이놈들을 만나면 너무나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맘 한구석이 허전합니다. 정작 내 자신은 옛 스승을 찾아뵙지 못했어요. 특히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이셨던 최능자 선생님을 꼭 한번 뵙고 싶습니다.”

이 교사는 자신을 찾아주는 제자들을 볼 때면 전남 목포달성초등학교 시절 자신을 유독 예뻐했던 최능자 선생님이 떠올라 가슴이 메어진다. 이 교사가 소개한 일화 한 토막.

“선생님 등에 업히고 싶은 사람?”

저마다 손을 들고 고함을 쳤지만 소심한 성격의 어린 이영은 고개만 푹 숙인 채 떨리는 손을 간신히 고개 위로 들었다. 최 선생님은 눈에 띄지 않는 이영을 앞으로 불러 세워 무동을 태워줬다. 소풍을 가면 귀한 껌 한통을 자신의 손에 몰래 쥐어 주셨다.

“그때는 몰랐죠. 제가 선생님이 되니까 알 것 같아요. 수줍음 많고 소심한 아이의 기를 살려 주려고 배려하던 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이 교사는 옛 은사를 찾으려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헛수고였다. 그러나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1969년 전남 목포 달성국민학교 2학년 담임을 맡았던 최능자 선생님을 혹시 아시는 분이 없을까요.”

# 새로운 만남을 위하여

시간은 꽤 흘렀지만 고기는 반 이상 남았다. 이야기꽃을 피우다보니 음식은 뒷전이었던 것. 이 교사는 어렵사리 만난 제자들을 위해 인터넷 홈페이지를 마련했다. 학교별로 졸업생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한 것.

“제가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힘들어 할 때 선생님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됐어요.”(순석)

얼마 전 맘 고생을 심하게 겪던 순석씨는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이 교사는 곧바로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고 순석씨를 위로했다.

“제가 살아오면서 힘든 일을 많이 겪었어요. 제자들과 홈페이지를 통해 꾸준히 고민을 나누고 싶어요.”

이 교사와 제자들의 인연은 아무래도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박 용기자 parky@donga.com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인터넷에서 선생님-친구 찾으세요"

“선생님, 저를 혹시 기억하실지….”

나이가 들수록 옛 스승과 친구가 그리워진다. 나를 아껴주던 스승의 근황이 문득 궁금해질 때 이제는 그리움으로만 남겨둘 필요가 없어졌다. 최근 스승과 친구의 소식을 알 수 있는 길이 많이 생겼다.

바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면 출신 학교가 소속된 시도 교육청 홈페이지에 접속하자. 야후와 라이코스 등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면 바로 연결할 수 있다. 전국 16개 시·도 홈페이지에서는 ‘스승 찾기’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어떤 교육청은 은사의 이름을 입력하면 현재 재직중인 학교가 나온다. 또 서울시교육청처럼 일부 교육청은 스승을 찾아주는 전화번호를 운영하고 있다. 다만 대부분 교육청이 퇴직 교원에 대한 연락처가 없고 퇴직연도와 퇴직 당시 재직학교만 가지고 있다. 스승이 퇴직을 했다면 안타깝지만 공식적으로 찾을 길은 없다는 뜻이다. 이럴 경우에는 인터넷의 동창회 사이트에 기대를 걸어도 된다. 이런 사이트로는 아이러브스쿨, 다음커뮤니케이션, 다모임 등이 유명하다. 동창회 사이트 열풍을 불러온 아이러브스쿨에는 45만명의 전현직 교사가 등록돼 있다. 이 데이터를 이용해 은사를 찾을 수 있고, 여기서도 찾을 수 없으면‘선생님 뵙고 싶어요’란 코너에 그리운 사연을 게재해 다른 회원들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특히 이런 사이트들은 동창이나 동문 선후배를 찾는 데도 요긴하다. 개인 정보 보호법에 따라 공식적인 경로를 밟아 수소문할 방법이 없는 만큼 소식이 끊긴 옛 친구를 찾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학교를 졸업한 지 20년이 안 됐고, 컴퓨터를 잘 다루는 세대라면 이 사이트를 이용해 동창이나 선후배를 찾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

주요 스승, 동창 찾기 사이트
이름홈페이지
아이러브스쿨www.iloveschool.co.kr
다모임www.damoim.net
다음커뮤니케이션www.daum.net
서울시 교육청www.sen.go.kr/minwon/index…c.html
경기도 교육청www.ken.go.kr/html/edudoumi/edu…cyber22.html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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