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땅이 안팔린다…분양시장 위축 개발사 매입 꺼려

  • 입력 2003년 2월 13일 19시 11분



아파트에 이어 서울 토지시장에도 냉기류가 흐를 조짐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서울 땅값은 부르는 게 값일 정도였다. 특히 주상복합아파트와 오피스텔을 지을 수 있는 상업지역 내의 토지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는 푸념이 돌았을 정도다. 시세차익을 노린 가수요가 일면서 정상적인 건설회사가 땅을 사지 못해 사업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하지만 올 들어서는 상황이 반전됐다. 분양시장이 위축되면서 토지시장도 소강 상태다.

▽땅 수요 줄었다〓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경쟁이 줄었다는 것. 토지 매물 자체가 귀하기기도 하지만 사겠다는 사람도 예전처럼 많지 않다. 주로 대형 매물을 사고파는 ‘큰손’이나 개발회사들이 거래를 삼가고 있다는 게 부동산 업계의 귀띔.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정부의 규제가 늘고 토지 수요가 줄면서 상업지역의 땅 거래도 부쩍 줄었다. 서울의 대표적인 상업지역 가운데 하나인 강남구 테헤란로. 동아일보 자료사진

개발회사인 ‘피앤디’ 홍창환 사장은 “작년 중반에는 강남 상업지역 땅 한 필지를 놓고 10개 이상의 개발회사가 각축을 벌였지만 12월 이후 이 같은 현상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전했다. 분양이 신통치 않은데 굳이 웃돈을 들여 땅을 사두겠다는 개인이나 회사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실제 작년 12월 서울에서 거래된 상업지역 내 땅은 2859필지로 11월보다 127필지 줄었다. 면적으로 따지면 19만1000㎡로 전달(26만2000㎡)보다 27%나 감소했다.

정부 규제도 토지시장의 열기를 가라앉히는 요인. 최근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대부분이 토지거래 허가구역으로 지정되자 수요가 많이 줄었다. 가격은 아직까지 큰 변동이 없다. 강남 대로변에 있는 상업지역은 평당 3500만∼5000만원, 일반주거지는 1100만∼1800만원 선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입지여건이 떨어지거나 용적률(대지면적 대비 건물 지하층을 뺀 건축 연면적)이 낮은 곳에 있는 땅은 가격 절충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강오 참좋은건설 사장은 “개발 가능성이 낮은 땅은 최근 들어 10%가량 낮은 값에 급매물로 나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건설사 신규 수주도 줄어〓개발회사들이 땅 매입을 주저하면서 대형 건설회사에 시공을 의뢰하는 주문도 줄어드는 추세다.

H건설 관계자는 “작년에는 하루 2, 3건의 시공 의뢰서가 접수됐지만 지금은 일주일에 2, 3건”이라고 털어놨다. 요즘 분양되는 주상복합이나 오피스텔은 대부분 작년 하반기에 사업성 검토를 마친 땅에서 나오는 물량이다.

D건설 관계자도 “대형 시공사들이 분양성을 의식해 선별 수주를 하는 데다 개발회사들이 의뢰하는 물건 자체가 많이 줄어 작년처럼 대규모 공급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경향은 은행권에서도 감지된다. 류창남 국민은행 차장은 “개발회사들은 땅을 계약하면 잔금을 내기 위해 은행에 담보대출을 요구한다”며 “작년 말부터 이 같은 대출 수요가 꾸준히 줄고 있다”고 전했다.

▽‘큰손’은 경기 외곽으로〓서울 토지시장의 매력이 떨어지자 땅 수요가 경기 이천시나 여주군 가평군 등으로 옮아가고 있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 돌공인중개소 진명기 사장은 “토지거래 허가구역에서 제외된 곳을 중심으로 큰손들의 입질이 활발하다”며 “한때는 충청권에도 서울 돈이 몰려들었지만 정부 규제가 강화되면서 수도권 나대지가 관심을 끌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회사 등 기업체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토지전문 브로커를 중심으로 “아파트만 짓던 건설회사들이 용인 수지 등에 대단위 단지형 펜션(고급 민박)을 개발해 한 채에 10억∼15억원에 분양할 계획”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실제 진 사장은 최근 일주일 동안 6개 회사가 수도권 지역에 땅을 사고 싶다며 접촉했다고 밝혔다.고기정기자 koh@donga.com

차지완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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