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이닉스는 돈을 빌려준 지 2년이 넘은 작년 12월9일이 돼서야 현대건설에 1억달러를 갚으라고 요구해 하이닉스가 애초부터 이 돈을 받을 의지가 없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13일 본보가 단독 입수한 현대전자(당시)와 현대건설이 주고받은 팩스 서신과 송금명세서 등에 따르면 현대전자의 미국 및 일본 현지법인은 2000년 6월9일 현대건설 런던지사가 팩스를 통해 알려준 영국 HSBC은행의 ‘현대건설’ 명의 계좌로 1억달러를 송금했다.
현대건설 런던지사 K과장이 현대전자 미국법인 L이사에게 보낸 팩스에는 계좌 명의가 ‘현대건설(HYUNDAI ENGINEERING & CONSTRUCTION CO. LTD)’로 기재돼 있다.
K과장이 팩스를 보낸 날짜도 2000년 6월9일로 현대전자가 돈을 보낸 날짜와 일치해 현대전자가 서둘러 돈을 보냈음을 시사했다. K과장은 대북 비밀송금 의혹이 불거진 2002년 10월 퇴사했다.
현대건설은 지금까지 “현대전자가 보낸 1억달러는 현대건설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해 왔으나 팩스 내용으로 볼 때 대북송금 과정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와 관련, 당시 런던지사장 K씨(퇴사)는 13일 본보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해당 계좌는 현대건설이 개설한 것이 맞지만 자금업무를 보던 K과장으로부터 1억달러에 대한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요하거나 급한 자금이라면 본사가 지사장에게 통보하지 않고 자금담당 직원에게 직접 지시를 내렸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하이닉스 본사 임원으로 근무하는 L씨는 정확한 송금 경위에 대한 질문에 “이 건과 관련해 아무 얘기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대전자 영국법인은 2000년 7월20일 스코틀랜드 반도체 공장 매각대금으로 미국 및 일본법인에 1억달러를 현대건설 대신 갚아주고 대여금 채권을 인수했지만 작년 12월9일 이런 사실을 현대건설에 통보했다.
하이닉스 본사도 지난해 12월9일 현대건설에 내용증명 우편을 보내 ‘현대그룹 최고경영층의 요청으로 빌려준 1억달러를 상환하라’고 요구해 대북 비밀송금이 그룹 최고위층의 지시로 이뤄졌음을 내비쳤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고기정기자 koh@donga.com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