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IT회사도 종이 없으면 회의 못해요"

  • 입력 2003년 2월 17일 17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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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1898세, (디지털) 메모리=0, 네트워크 기능=없음.”

컴퓨터 칩의 메모리 용량이 무한대로 커지고 있고, ‘언제 어디서나 모든 매체를 통해’ 접속이 가능하다는 유비쿼터스의 실현을 눈앞에 두고 있는 2003년. 정보기술(IT) 시대에 다른 정보매체에 비하면 종이의 ‘능력’은 이처럼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1970년대와 80년대, 나아가 90년대 초까지도 종이의 한계를 들먹이며 “조만간 종이는 멸종할 것”이라는 ‘종이 때리기’가 도처에서 계속됐다. ‘종이 없는 사무실’도 단골 메뉴 중의 하나였다.

▽종이의 역설=인터넷 회사인 야후코리아 마케팅팀 김병석 과장은 회의가 열리면 관련 자료를 프린트한 뒤 회의 참석자수만큼 복사한다. ‘인터넷 회사인데 종이자료가 꼭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김 과장은 “종이 없이는 회의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전체 직원 190명이 소비하는 A4 용지는 매달 5만여장. 1인당 평균 260여장을 사용한다.

실제로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1인당 종이 소비량은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도 지난 10년 사이에 1인당 종이 소비량이 50% 가까이 급증했다. 한국이 20위권 밖에 머물고 있을 정도로 선진국 대부분이 종이 다(多)소비국이다.


LG투자증권 기업분석팀 강승림 연구원은 “종이소비량은 대체로 경제성장률과 비슷한 추세로 증가한다”며 “저렴한 비용, 간편성, 문서 저장의 안전성에 있어서 아직까지도 종이를 대체할 만한 매체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정보화가 종이소비의 일등공신(?)=전 세계 사무실에서는 오늘도 끊임없이 복사기와 프린터가 돌아가고 있다. 복사용지는 항상 부족하다. 인터넷과 e메일의 활성화는 많은 정보량을 디지털화해 종이 사용을 줄였지만 한편으로는 정보량의 폭발적인 증가를 가져왔기 때문.

전자문서와 프린터 등 문서 관련 회사들의 모임인 엑스플로 인터내셔널은 1995년도를 100으로 봤을 때 2005년에는 650으로 정보량이 폭증할 것으로 예상했다. 정보의 절대량 자체가 증가하기 때문에 종이 소비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 국내에서도 복사용지 시장은 매년 10% 이상 성장한다.

IT는 또 다른 종이수요를 낳는다. 온라인쇼핑몰과 홈쇼핑이 활성화되면서 택배물량이 늘어나자 상품을 포장하는 골판지 수요가 급증한 것이 대표적인 예. 한국수출포장은 국내 택배용 골판지 판매가 매년 30∼40%씩 성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첨단 종이로 거듭난다=로또 열풍이 불자 복권종이인 OMR지를 독점공급하고 있는 한솔제지도 덩달아 바빠졌다. 지난해 11월만 해도 50t이었던 복권용 OMR지 판매량은 올 2월에는 130t이 팔릴 것으로 예상된다.

무림제지는 직원수가 300명이고, 연간 종이생산량이 8만t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난해 매출액은 1250억원. 경상이익률도 18.1%로 알짜회사다. 이 같은 성과의 비결은 무림제지가 주로 첨단기술이 들어가는 특수지와 고급지만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 찢어도 먼지가 나지 않고 정전기도 발생하지 않아 주로 반도체 공장에서 쓰이는 무진지, 입에 넣어도 유해하지 않아 침으로 붙일 수 있는 우표지, 영수증 발행에 쓰이는 종이로 열에 반응하는 감열지 등 40여종의 각종 특수지와 고급지를 생산한다.

▽종이의 장래는=용인송담대학 제지·패키징시스템과 신준섭 교수는 “종이 제조기술이 갈수록 발전하면서 각종 첨단 종이들이 많이 등장할 것”이라며 “환경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플라스틱을 대체하는 분야에도 종이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국내 제지업체들은 제지연구소를 중심으로 첨단종이를 개발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일부 제지회사들은 컵라면 용기를 대체할 수 있는 제품을 이미 내놓았으며, 전통 한지를 개량한 ‘명품 한지’ 등을 개발 중이다.

향기가 나는 종이, 전자파 차단 종이, 심지어 금속과 목재를 대체할 수 있는 기능지 등이 신 교수가 꼽고 있는 유망분야이다.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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