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뒤에도 한국 증시는 의외로 탄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SK그룹 주가는 동반 약세를 보였으나 증시 전체적으로는 안정적인 모습.
지난해 말 이후 한국 증시의 발목을 잡았던 이른바 ‘신정부 리스크(새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불확실성 탓에 주가가 떨어지는 현상)’가 상당히 사라진 모습이다.
▽잘 버틴 주가〓검찰의 SK그룹 수사 소식이 알려진 이후 18, 19일 이틀 동안 종합주가지수는 보합 수준에 머물렀다. 주가가 크게 오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폭락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평가.
우선 시장 상황 자체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나타난 주가 안정세여서 가치가 더 크다. 18일은 전날 주가가 워낙 많이 올라 단기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우세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시가총액 비중이 큰 SK그룹 관련주가 대거 폭락해 지수도 하락 압력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이날 종합주가지수는 1.58포인트 올랐다.
19일에는 개장 직전부터 앞으로 닥칠 악재에 관한 예상이 쏟아져 나왔다.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될 것이다” “더 많은 대기업이 걸려들 것이다” “이미 외국인이 실망 매물을 내놓고 있다” 등등. 그러나 이날 종합주가지수는 2.62포인트 떨어지는 데 그쳤으며 600선도 지켜냈다.
▽이미 반영된 신정부 리스크〓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전문가들은 신정부의 정책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지난해 말부터 이미 상당히 증시에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올해 들어 전경련 간부들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한 적이 있고, 인수위나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도 재벌 개혁에 대한 강경 대응 의지를 몇 차례 나타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주가는 계속 하락세를 겪었다.
신정부의 경제정책이 실제 어떻게 드러날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증시는 이미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채 먼저 반응했던 것.
따라서 앞으로 검찰의 수사 진행에 따라 그룹별로 주가가 다소 출렁일 수는 있어도 증시 전체가 정책 불확실성 때문에 크게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동원증권 강문성 연구원은 “이틀 동안 시장의 반응을 볼 때 신정부 정책의 불확실성은 이미 시장에 충분히 반영된 것으로 판단된다”며 “주가가 상승 추세로 올랐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우나 많은 악재가 이미 주가에 상당히 반영된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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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검찰수사' 주가엔 별 영향없어 ▼
SK그룹에 대한 검찰수사가 SK 계열사 주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과거 대기업의 불법행위로 파장을 일으킨 대표적인 사건은 92년 대선 직후 현대그룹의 국민당 불법지원사건과 99년 한진그룹 탈세사건.
하지만 당시 현대건설 현대자동차 현대증권 등 3개사의 주가는 관계자들에 대한 형사처벌이 진행된 93년 1∼5월 평균 15.65% 올라 종합주가지수 상승률 10.8%를 웃돌았다.
정주영 당시 국민당 대표가 검찰에 소환된 93년 1월15일의 주가하락률도 1% 안팎으로 소폭에 그쳤다.
한진그룹에 대한 수사가 이뤄진 99년 10월 초 대한항공 한진해운 한진의 주가는 폭락했지만 평균 주가 상승률은 1주일 만에 종합주가 지수를 넘어섰다. 이후 수사가 일단락된 11월까지 두 달간 주가는 5.8% 올라 종합주가지수 상승률 6.2%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굿모닝신한증권 김학균 연구원은 “기업의 불법행위와 사법처리에 대한 소문이 미리 주가에 반영됐기 때문에 사건 당일의 일시적 충격 외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검찰수사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뜻밖의 악재였던 사건은 2002년 4월 LG화학의 계열사간 내부거래를 꼽을 수 있다. 사건 초기 주가가 연이어 20%까지 급락하는 등 시장의 호된 질책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하락세가 진정되면서 폭락이 저가 매수의 기회로 인식됐다.
동원증권 강성모 투자분석팀장은 “기업의 편법행위를 제대로 처벌한다면 검찰수사는 지배구조 개선과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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