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자 스티글리츠 "정부-시장 협조해야 경제발전"

  • 입력 2003년 2월 26일 18시 34분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한국 정부의 해외경제자문위원장 자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기회가 되면 한국 경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제공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26일 본보와 가진 특별 대담에서 이같이 말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방한한 그는 3박4일의 짧은 일정 중 서울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공개 강연을 했으며 국내 언론 가운데는 유일하게 본보와 대담을 가졌다. 진행은 세계 발전경제학계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장하준(張夏準)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맡았다.》

▽장하준 교수=노무현 정부의 해외경제자문위원장으로 거론되고 있다. 수락할 뜻은 있는지.

▽스티글리츠 교수=내각조차 구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문위원직을 말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당선되는 과정과 그가 제시한 비전에 대해 열광하고(enthusiastic) 있다. 취임식 후 가진 리셉션에서 대통령의 연설은 감동적이었다.

▽장 교수=노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성장 동력과 발전 전략을 요구받고 있다”고 말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스티글리츠 교수=정부와 시장이 긴밀하게 협조한 나라들만 경제발전에 성공했다. 이러한 정부 기업관계는 한국의 발전단계와 세계경제의 변화에 맞춰 진화해야 한다. 정부는 기술개발 장려, 교육 의료제도 향상, 금융 증권시장 및 환경과 식품안전에 대한 규제에 주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생산력 향상에 기여한 인터넷을 개발한 것이 바로 미국 정부이고 160년 전에 무선전신을 발명한 것도 미국 정부다. 30년 전 쓰였던 산업정책은 지금은 적절하지 않다. 그렇다고 산업정책 자체가 폐기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실물경제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장 교수=귀하는 세계화를 반대하는 학자로 알려져 있다.

▽스티글리츠 교수=세계화는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발전에 기여했다. 특히 무역자유화와 기술 이전 노력이 도움이 되었다. 그러한 긍정적 요인을 묵과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발전을 살펴보면 오늘날 ‘워싱턴 컨센서스’(월스트리트, 미국 재무부, 국제통화기금 등이 선호하는 정책)로 대표되는 세계화 논리와는 확연히 다른 방식으로 성장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정긴축, 고금리, 자본시장 개방 등으로 대표되는 ‘워싱턴 컨센서스’가 모든 나라에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선진국에 의해 주도되는 국제무역 금융질서는 더욱 공평하고 모두가 잘살 수 있는 방식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인간의 얼굴을 한, 더 나은 세계화’를 주창한다.

▽장 교수=향후 경제정책을 수립할 때 외국인 투자가의 선호도를 어떻게 반영하느냐가 주요한 관심거리이다.

▽스티글리츠 교수=외국인 투자에도 여러 유형이 있다. 20∼30년간 투자하는 외국자본과 극히 일시적으로 들어왔다 나가는 자본은 구분되어야 한다. 장기적 투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관건은 안정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해나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점에서 본다면 국내 자본이 생산적 활동에 동원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이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

▽장 교수=기업지배구조 개선의 방향은 어떠해야 하는가.

▽스티글리츠 교수=미국에서는 기업지배구조가 지나치게 경영자 중심으로 운용되었다는 반성이 일고 있다. 그 과정에서 주주를 포함한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소외됐다. 한국은 언제나 선진국가의 가장 좋은 점을 모방하려고 노력해 왔다. 하지만 무엇이 가장 좋은 시스템인지를 말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주주, 특히 소액주주들의 권리를 적절히 보장해 줘야만 주식시장이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직접금융시장을 통해 기업에 자금이 공급됨으로써 장기적이고 지속적 성장이 가능한 것이다. 이것을 위해 집중투표제, 집단소송제와 같은 제도의 도입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장 교수=기업에서 반발이 있을 수 있는데….

▽스티글리츠 교수=1993년과 94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 시절 미국에서는 큰 논쟁이 있었다. 나는 당시 회계기준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당시 미국증권거래위원장 레빗도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럴 경우 미국 기업에 큰 어려움을 초래할 것’이라는 조직적 반발에 부닥쳐 실현되지 못했던 적이 있다. 단기적으로는 기업의 이해에 반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무엇이 궁극적으로 기업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과거 나를 ‘반기업적’이라고 비난했던 사람들도 이제는 나와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한국의 기업지배구조 개선 노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장 교수=작년 11월 북한을 방문하려고 했는데 어떤 목적이었나.

▽스티글리츠 교수=유엔주재 북한대표부의 요청으로 미국내 ‘코리아 소사이어티(한미 주요 인사들의 모임)’가 3명의 대표자를 파견하려 했다. 방문 직전 미국의 정책이 바뀜에 따라 불발에 그쳤지만 만약 북한이 개방정책으로 나간다면 상당한 조언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장 교수=한국 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 조언한다면….

▽스티글리츠 교수=한국은 세계경제의 모범생이었다. 다른 나라로부터 배우고 그것을 상황에 맞춰 변형시켜 왔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인들 스스로 한국 경제에 대한 확신이 흔들린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다시 스스로를 확신시켜야 할 때라고 본다.

방향은 분명하지 않은가.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자본주의라는 것은 정형화돼 있는 것이 아니고 또 경제발전 단계에 맞춰 다양한 발전 경로가 존재한다. 그 사회의 진정한 이해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선택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정부와 시장의 균형 잡힌 관계가 긴요하다. 과도한 시장근본주의도, 지나친 정부개입주의도 모두 지양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지나친 개인주의도 집단주의도 아닌 그 중간지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과거가 그랬듯이 한국의 미래가 밝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

1943년생(60세)

1967년 미국 MIT 박사

1969년 미국 예일대 정교수(당시 26세)

1993∼97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 위원장 역임

1997∼99년 세계은행 수석부총재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현재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정리=김용기기자 ykim@donga.com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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