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스톡옵션? 차라리 연봉을 올려 주시죠

  • 입력 2003년 3월 6일 17시 41분


왼쪽부터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김정태 국민은행장, 이금룡 이니시스 사장
왼쪽부터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김정태 국민은행장, 이금룡 이니시스 사장

새 정부의 초대 내각 발표 이후 샐러리맨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인물은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이다. 세계적 초우량 기업의 사장직을 그만뒀다는 점도 화제였지만 그가 장관직을 택함으로써 잃게될지 모를 돈에 관심이 집중됐다. 아들의 ‘병역미필’ 관련 의혹이 일기 이전의 일이었다.

진 장관은 삼성전자 사장이던 2001년 3월 8일 삼성전자 주식 7만주를 19만7100원에 살 수 있는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을 받았다. 증권거래법상 스톡옵션을 행사(주식을 매수)하려면 스톡옵션 부여일로부터 2년 이상 재직해야 한다. 지난달 27일 입각한 진 장관은 이 규정에 따르면 9일 차이로 ‘자격 미달’이다. 만약 스톡옵션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면 5일 삼성전자의 종가 27만6000원을 기준으로 할 때 약 55억원의 시세차익을 포기해야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 진장관 포기여부 엇갈린 해석

하지만 진 장관이 스톡옵션을 포기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해석이 엇갈린다. 장관직 임명에 의한 퇴직이 ‘본인의 귀책 사유’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 법에는 ‘본인의 귀책 사유가 아닌 이유로 회사를 떠날 경우 (2년이 경과하지 않더라도) 스톡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이 있다.

오른쪽부터 래리엘리슨 오라클 회장.마이클 아이즈너 월트디느지 회장. 마이클 델 델컴퓨터 회장

삼성전자 측은 “변호사들에게 물어봤는데 의견이 엇갈렸다”면서 “재경부의 해석을 받아 결정할 문제”라는 입장. 재경부 쪽도 “삼성전자에서 유권 해석을 의뢰해 오더라도 ‘된다’ ‘안된다’고 재경부가 결정을 하기엔 애매한 사안”이라면서 “법 테두리 내에서 판단할 수 있는 데까지 해석만 해 줄 예정”이라며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노무현 대통령까지 이번 일에 관심을 보이면서 스톡옵션에 대한 관심이 새삼 높아졌다. 주식 시장이 곤두박질 치며 스톡옵션을 통한 ‘대박의 꿈’을 꾸던 샐러리맨들 중 상당수는 꿈을 포기한 상태. 하지만 그 와중에도 꿈을 이루는 사람은 있다.

● 일부는 대박에 웃고

2001년 3월 진 장관과 함께 스톡옵션을 받은 삼성전자 임직원은 모두 559명. 가장 많은 스톡옵션을 받은 사람은 10만주씩 받은 윤종용 부회장과 이학수 사장이다. 행사 시기는 내년 3월10일부터여서 아직 주식을 매수할 수는 없는 상태. 5일 현재 주가로 계산하면 두 사람은 약 79억원의 평가 차익을 올리고 있다. 평직원 가운데서 가장 많은 1500주를 받은 사람들은 현재 각 1억2000만원 가량의 평가 차익을 누리고 있다.

올해 행사 시기가 돌아오는 상장 기업 가운데선 삼성화재와 삼성SDI의 임직원이 가장 짭짤하게 재미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이수창 삼성화재 사장은 6월1일이면 10만주를 2만3800원에 매수할 수 있다. 삼성화재의 5일 현재 주가는 5만4900원. 이 가격만 유지해도 31억원의 시세 차익을 올리게 된다. 같은 방식으로 계산했을 때 3월17일부터 10만주에 대한 스톡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김순택 삼성SDI 사장의 예상 차익 역시 31억원에 이른다.

벤처 업계에선 이금룡 이니시스 사장(전 옥션 사장)의 성공 사례가 돋보인다. 이 사장은 옥션 사장 취임 당시 받은 20만주의 스톡옵션을 지난해 옥션을 떠나면서 행사했다. 행사 가격 5750원에 20만주를 인수한 것. 현재 옥션의 주가는 2만7000원 대로 20억원이 넘는 평가 이익을 올리고 있다.

지금까지 스톡옵션으로 가장 재미를 본 사람은 김정태 국민은행장. 김 행장은 옛 주택은행에서 받은 스톡옵션 40만주 가운데 지난해 20만주를 행사해 60여억원의 시세 차익을 올렸다. 그는 이 돈을 모두 불우 이웃 돕기 등에 썼다. 98년 주택은행장 취임 당시 연봉은 1원만 받는 대신 당시로서는 생소한 스톡옵션을 요구한 ‘베팅’이 결실을 거둔 것.

그러나 일찌감치 스톡옵션 제도를 시행한 미국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한국의 수준은 ‘새발의 피’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지난 5년 간 스톡옵션 행사로 가장 돈을 많이 번 사람은 래리 엘리슨 오라클 회장. 무려 7억6000만달러(약 9120억원)에 이른다. 마이클 아이즈너 월트디즈니 회장은 97, 98년 스톡옵션을 집중적으로 행사해 5억6982만달러를 벌었다.

마이클 델 델컴퓨터 회장(2억3328만달러), 샌포드 웨일 씨티그룹 회장(2억2016만달러), 토머스 시에벨 시에벨시스템스 회장(1억7461만달러)이 뒤를 이었고 스티븐 케이스 AOL타임워너 회장, 존 챔버스 시스코시스템스 회장 등도 1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 대다수는 ‘일장춘몽’에 아쉬워하고

증권 업계에 따르면 올해 스톡옵션 행사 시기를 맞는 회사 가운데 옵션 행사 가격이 주가보다 높은 회사는 80%가량. 현 주가에서 스톡옵션을 행사해 주식을 사면 오히려 손실을 본다는 얘기다.

SK텔레콤이 그 가운데 하나. 3년 전만 해도 SK텔레콤의 임직원은 꿈에 부풀었다. 당시 42만4000원에 행사할 수 있는 스톡옵션을 받았을 때만 해도 최소한 2배는 오를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행사 시기가 된 현재 주가는 16만∼17만원을 오가고 있다.

한때 스톡옵션으로 가장 큰 이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됐던 곽치영 데이콤 전 사장은 지난달 3만주의 스톡옵션을 포기했다. 회사측이 전한 취소 사유는 ‘회사 발전을 위해 중요한 시기임을 감안해 전임 사장으로서 스톡옵션을 자진 포기함으로써 회사 경영에 기여하겠다’는 것. 그러나 증권 업계에선 현재 주가(1만1000원선)가 행사 가격(4만3618원)에 턱없이 못 미치기 때문일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2000년 초만 해도 곽 사장의 스톡옵션 평가 이익은 100억원을 웃돌았다.

삼성그룹 내에서도 삼성중공업 삼성증권 등 상당수 계열사들은 주가가 낮아 삼성전자나 삼성화재의 ‘대박’은 남의 일이다.

날아간 꿈에 대한 허탈감은 벤처 업계 직원들에게서 더욱 두드러진다. 당장 손에 쥐는 월급은 적어도 스톡옵션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는 희망에 벤처행을 택했던 많은 이들이 속수무책으로 떨어지는 주가를 바라보며 ‘일장춘몽’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있다.

지난해 코스닥 등록 기업 가운데 스톡옵션을 취소한 건수는 255건에 이르렀다. 2001년에 비해 45.2% 증가한 수치. 취소 대상 인원은 2556명이었다. 주가가 행사 가격을 밑돌아 스톡옵션을 자진 반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미국도 사정은 마찬가지. 지난달 셀렉티카는 주가 보다 높은 행사 가격의 스톡옵션을 가진 직원들을 대상으로 스톡옵션을 교환해주는 고육책을 마련했다. 현재의 스톡옵션을 아예 취소해버리고 행사 가격을 대폭 낮춘 스톡옵션을 다시 부여해주겠다는 계획이다. 시어벨 시스템스는 지난해 하반기 임원을 제외한 일반 사원이 보유한 스톡옵션을 회사돈으로 사들이기도 했다.

● 퇴조하는 스톡옵션

JP모건체이스의 전 부회장인 로베르토 멘도자는 지난해 말 파이낸셜타임스에 게재한 기고문에서 “스톡옵션의 퇴조가 대세”라고 말했다. 주식 시장 침체로 스톡옵션의 장점이 퇴색한 데다 스톡옵션을 바라보는 주주들의 시선이 곱지 않아 이제 스톡옵션을 대신할 직원 보상 방식이 나와야 할 때라는 주장이었다. 스톡옵션 대신 더 많은 현금을 연봉으로 요구하는 기업인들도 늘고 있는 추세다.

미국에서 스톡옵션에 대한 인식이 나빠진 것은 지난해 엔론 사태 등 일부 기업의 회계 부정 사건에 스톡옵션이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부터. 많은 경영자들이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스톡옵션으로 한 몫을 챙기기 위해 엉터리 회계로 이익을 부풀리기까지 한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

스톡옵션의 도입이 회사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까지 나왔다. 인디애나대 경영학과 교수들이 지난 30년간의 연구를 종합 분석한 결과 중역들의 스톡옵션과 기업 실적 사이에 큰 상관 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낸 것.

스톡옵션 제도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임직원들에게 스톡옵션을 줌으로써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회사의 실적을 끌어 올리고 주가를 높여달라는 것이다. 따라서 스톡옵션 부여와 주가에 별 상관이 없다는 연구 결과는 스톡옵션의 ‘존재 근거’ 자체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이 같은 문제 제기에 따라 스톡옵션의 시행을 대폭 줄이는 기업이 잇따르고 있다. 인재 채용의 방편으로 스톡옵션을 이용해온 대표적 기업인 야후는 지난해 스톡옵션 제공 규모를 다른 인터넷 업체에 비해 크게 줄였다. JP모건체이스는 올해 직원에게 줄 스톡옵션 규모를 지난해의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금동근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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