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농사꾼 성광수는 "내일 내가 죽어도 나는 한그루의 오가피나무를 심겠다"고 말한다.
자신의 농업 프로젝트에 대해 국내외 대학에서 연구가 진행되는 농부. 전국 21곳에서 국내 최대규모의 오가피를 생산하는 대형 농장주. 한방병원과 민속촌 등이 어우러지는 민속관광단지를 개발중인 사업가. 과수농가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까치잡이틀'을 고안해 낸 발명가.
이 모든 수식어의 주인공이 바로 요즘 일간지 광고란에 매일 등장하는 주식회사 수신오가피의 대표 성광수(60)씨다.
최근 그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풍산개와 진돗개를 교배시킨 '통일견'을 선물하겠다고 밝혀 또 한번 뉴스의 촛점이 됐다.
통일견이 청와대로 가기전, 그 모습을 미리 필름에 담으러 간 길에 그를 만나보기로 했다.
▼"암만 그래도 내 직업은 농부입니다"▼
새순이 움찔거리는 봄의 길목, 충남 천안시 수신면에 위치한 '성광수 오가피 농장'을 찾았다.
지난 여름 수신면 만경산 일대를 뒤덮으며 푸른 숲을 이뤘던 오가피 농장은 앙상한 가지만 남은채 새로운 1년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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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턱에 좁다랗게 난 진흙 투성이의 길을 따라 농장입구에 들어서자 경비원이 컨테이너 박스와 비닐하우스가 붙어있는 곳을 '사무실'이라며 안내한다.
'국내 최고의 부농이 운영하는 농장이라던데…'
혼잣말을 하며 사무실로 들어서자 그가 손을 내밀며 반갑게 맞이했다. 신문광고의 흑백사진보다 훨씬 젊게 보인다.
투박한 그의 손을 잡으며 그가 농부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한다.
"배, 고구마, 오가피를 키우면서 땅을 배우고 인생을 배웠습니다. 무역도 해보고, 땅장사도 해봤지만 역시 전 농사꾼입니다"
그는 사무실용 컨테이너, 작업용 비닐하우스, 사육장 등 농장에 필요한 모든 자재를 중고품으로 쓴다.
"새것이면 물론 더 좋겠지요. 그러나 새 것 살 돈 있으면 오가피 한그루 더 심을랍니다. 내 다음 경영자부터는 새 것 써도 될 만큼 키워 놔야죠"
▼"얄미워 죽겠드라구, 그래서 몇년을 고민했지."▼
그의 성공-그는 아직 성공이라고 하지 않는다 -의 뒤에는 독한 오기가 자리잡고 있다.
어려운 형편에 학교 다니며 공부하던 일, 국세청 공무원 시험에 응시한 일, 단돈 3000원을 빌려서 목장일을 시작하던 일, 이 모두가 오기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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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오기가 여실히 드러나는 작품이 만경산 중턱에 우뚝 솟아있다.골프연습장에서 사온 그물망을 철제 구조물에 씌워서 만든 '까치잡이틀'이다
"저거 새장입니까? 까치 키우세요?"
알면서 물어봤다.
"까치들이 그 귀한 오가피 씨앗을 마구 파먹는 것을 보니 정말 얄밉더군. 어떻게 하면 저놈의 까치들을 잡을 수 있을까, 10여년을 고민했지 "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연구를 거듭하다 마침내 방법을 생각해냈다. 오기엔 오기라던가. 자기 구역을 지키려는 까치의 '오기'를 이용한 것.
까치 몇마리를 틀 안에 넣어 놓으면 세력을 다투는 다른 까치들이 사다리 모양의 입구로 들어와 싸우다가 결국 나가지 못하고 갇히게 된다. 이 발명품이 소문이 나자 이젠 동병상련의 각 지방 과수원에서 견학을 오기도 한다.
잡은 까치를 어떻게 처리하는지도 궁금했다.
"맛있습니다. 그래서 까치고기 요리 연구도 시켰습니다. 정력에 좋다면 까치도 구경하기 힘들걸요."
▼900마리의 개를 기르는 이유는... ▼
산중턱을 거닐면서 저장해 놓은 오가피 뿌리며 가지를 보여주던 그가 흥분(?)하기 시작했다. 국산 농작물이 외국 것보다 좋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물어본 것이 실수였다.오가피는 현재 토종과 러시아등 외국산 사이에 약효를 싸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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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는 약 20여분이나 이어졌다.
"한국 토양은 순상지대로 지구가 생긴뒤 한번도 바다속에 가라앉지 않아서 미량원소가 풍부합니다. 거기서 재배되는 농산물과 그 농산물을 먹고 자란 축산물, 그리고 그 토지에서 흘러나간 물에서 자란 수산물 모두 명품입니다."
오가피 저장고를 지나서 한참을 걷다보니 개 짖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북한 풍산개 100여마리, 진돗개 100여마리, 그 사이에서 태어난 통일견 300여마리, 기타종이 400여마리, 도합 900여마리.
풍산개는 진돗개보다 몸집이 휠씬 크고 얌전하게 생겼다. 귀도 아래로 덮여있으며 가까이 다가가도 슬슬 피하고 짖지도 않는다.
옆에 있는 진돗개는 난리가 났다. 으르릉대고 짖고 껑충껑충 뛰고 한다.
"원래 개는 겁이 나면 짖습니다. 풍산개는 싸울 상대 앞에서만 그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냅니다."
성광수씨가 처음으로 교배시킨 '산'이라는 통일견은 이 농장의 '산부인과'로 통하는 비닐하우스 앞에서 경계근무 중이다.
전반적으로 풍산개를 많이 닮은 '산'이는 뒷다리 굵기가 다른 개의 두 배정도.
그는 앞으로 250여마리의 통일견을 더 만들어 그 안에서 우수품종을 찾아낼 계획이다. 통일한국의 대표이자 세계적인 명견을 만든다는 것이 그의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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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광수씨의'오가피 사랑'▼
비닐하우스로 지어진 식당에서 직원들과 식사를 함께 하던 그에게 과장 한명이 다급히 찾아왔다.
"땅에 묻어놓은 오가피 씨앗에서 싹이 나려고 합니다. 날씨가 너무 따뜻한 것 같습니다."
그는 즉각 휴대전화로 각 농장에 비슷한 상황이 있는지를 확인토록 했다.
"과장님(그는 직원들에게 꼭 존대말을 쓴다), 차양막을 3겹정도 씌우고 다리를 세워서 바람이 잘 통하도록 해 주세요. 아니요 손이 많이 가니까 다리는 세우지마세요. 아니 그래도 세워야겠죠? 아니 하지마세요."
직원들의 고생과 사랑하는 오가피 사이에서 그의 갈등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의 계획은 방대하다. 농장 한켠에는 '오가피 술'이 가득히 숙성되고 있다. 양주시장에도 도전하겠다는 것.
"오가피 향도 약간 나면서 뒷맛이 깔끔하고 숙취가 없는 좋은 술을 만들고 있습니다. 나중에 꼭 드셔 보십시요."
오가피는 항염, 항암, 피로회복, 스트레스 해소, 해독작용 등의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성대표는 "오가피는 우리나라의 대표 농작물이 될 것"이라며 이를 반드시 세계적 상품으로 키워나가겠다고 말했다. 만경산 들녁을 지긋이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오가피에 대한 꿈과 애정과 자신이 가득했다.
천안=최건일 동아닷컴기자 gaegoo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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