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는 아직도 적지 않은 기업들이 거액의 빚을 감추고 보잘것없는 이익을 뻥튀기해 금융기관과 투자자의 눈을 속이려는 분식회계를 시도한다.
그러나 정반대로 눈덩이처럼 커지는 순이익을 감추고 싶어하는 기업들도 있다. 이런 회사는 손실을 적극적으로 회계장부에 반영해 전체 이익 규모를 줄이기도 한다. 회계상 이익을 적게 낸 것처럼 보이려 하기 때문에 ‘역(逆)분식회계’ 기업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
▽‘이익 규모를 줄여라’〓한일시멘트는 작년 인도네시아에 설립한 한국기업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본 366억원을 회계장부에 포함시켰다. 아직 기업의 청산 절차가 끝나지 않아 투자유가증권 손실이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이를 미리 반영한 것.
이 회사는 이런 거액의 손실을 반영하고도 작년 518억원의 순이익을 남겼다. 전년보다 74% 늘어난 규모다.
조선내화도 작년에 손실을 몽땅 털어냈다. 타이거풀스인터내셔널(TPI)에 투자했던 14억원과 대신팩토링의 부도로 휴지조각이 된 주식 등을 모두 처리해 80억원대 손실을 회계장부에 반영했다. 그러고도 사상 최대 이익을 냈을 뿐 아니라 자사주까지 사들이고 있다.
이 밖에도 라미화장품 손실을 처리한 동아제약, 매년 100억원 이상씩을 감가상각비로 회계장부에서 지워버리는 선창산업, 과소평가된 공장과 땅의 가치를 현실화하지 않고 유지하는 BYC 등이 있다.
▽뼈아픈 손실을 드러내도 떳떳한 이유〓이익 규모를 줄이면 법인세 등 각종 세금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낮은 실적으로 주가가 상대적으로 싼값을 유지할 경우 기업의 오너는 상속세도 적게 낼 수 있다.
보수적인 회계 기준을 적용해 깨끗한 자산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 점도 매력이다.
기업 내부의 골칫덩어리를 털어내고 매년 흠 없는 새 출발을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손실을 모두 반영해도 충분한 이익을 남길 만큼 탄탄한 경영을 해왔다는 회사의 자신감이 깔려있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보다 내실을 먼저 챙기겠다는 자세로도 해석된다.
동원투신운용 이채원 자문운용본부장은 “엄격한 잣대로 회계장부를 만드는 기업들은 실적이 평범하게 보여도 속으로 꾸준히 성장하는 경우가 많고 솔직한 경영으로 투자자들의 신뢰도 높다”고 평가했다.
대학투자저널 최준철 발행인도 “손실을 털어낸 기업이 영업이익만 유지한다면 다음해에는 그만큼의 손실이 고스란히 이익으로 돌아온다”며 “역(逆)분식회계를 하는 ‘숨겨진 보물’ 같은 기업을 찾아서 투자하면 충분한 결실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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