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60개에 가까운 SK의 계열사들을 그룹으로 묶고 있는 것은 계열사간에 얽힌 출자관계, 선경직물이라는 모회사에서 출발했거나 파생했다는 태생적 뿌리, 사업 구조상의 연관성 등. 그리고 이런 연결고리의 핵심이 그룹 총수인 최 회장이다. 계열사들은 최 회장이 대표로 있는 SK㈜를 중심으로 복잡하게 얽힌 지분 구조를 통해 직접적으로, 또는 우회적으로 한 집안 관계를 맺어왔다.
그러나 최 회장이 모든 상장 및 비상장 주식을 은행단에 담보로 제공함에 따라 SK그룹을 엮는 핵심고리가 단절될 위기에 놓였다.
지분을 전부 담보로 제공했지만 최 회장의 그룹 경영권에 당장은 영향이 없다. 그러나 SK글로벌이 정상화에 실패할 경우 채권단은 이를 모두 처분할 수 있다. 최 회장의 채무보증액은 2조여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현재까지 알려진 최 회장의 주식 평가액은 많이 잡아도 2000억원 안팎에 불과하다. 최 회장은 SK글로벌의 정상화라는 ‘외줄’을 타게 된 셈이다.
만약 최 회장이 모든 지분을 잃는다면 이는 그룹의 구심점이 사라진다는 걸 의미한다. 이를 대신할 새로운 연결축이 마련되지 않을 때 이는 SK글로벌의 분리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계열사들의 분리, 다시 말해 그룹 분해로 이어질 수 있다.
SK글로벌은 또 자구계획서에 SK계열사 주식 매각을 포함하고 있어 SK㈜와 함께 그룹의 ‘준(準) 지주회사’ 역할을 해온 SK글로벌이 분리될 가능성이 높다.
SK글로벌의 1대 주주가 채권단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 채권단의 공동관리를 받는 과정에서 부채규모가 너무 커 채무 만기연장 이외에 출자전환이 필요하다는 판정이 나올 수 있기 때문. 그러면 채권단이 SK글로벌의 1대 주주가 된다. 다른 계열사들도 부실한 SK글로벌과의 관계를 끊으려 할 걸로 보여 분리 속도는 급격히 빨라질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그룹이 분리될 때 SK 계열사들이 제대로 독립경영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SK는 1998년 최종현(崔鍾賢) 회장이 별세한 직후에도 형제간의 그룹 분리설이 나돌았었다. 그러나 당시 회장에 오른 손길승(孫吉丞) 회장은 “지금은 ‘싱글(single) SK’로 가야 할 때며 분리할 시기가 아니다”고 못박았다.
올해로 창사 50주년을 맞는 SK가 본격적으로 성장한 건 80년 대한석유공사(현 SK㈜), 94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인수한 이후다. 짧은 기간에 급성장해 아직 계열사들이 안착하지 못했다. 수익구조도 SK텔레콤과 SK㈜ 등 몇 개의 주력 계열사에 의존하는 체제다. 작년 10월 제주도에서 사장단이 모여 “앞으로 3년 안에 계열사별로 생존 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선언한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 나온 것.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그룹의 틀을 유지하는 방안도 있으나 SK의 현재 형편으론 쉽지 않다. 우선 지주회사가 계열사 지분을 일정지분(공개기업 30%, 비공개기업 50%) 이상 사들여야 하므로 SK로서는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다. 지주회사는 부채비율 100% 이내의 조건을 맞춰야 하는데 SK㈜는 2001년 말 현재 부채비율이 152.1%에 이른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김두영기자 nirvana@donga.com
▼김승유 하나은행장 일문일답▼
하나은행 김승유(金勝猷) 행장은 12일 “최태원 SK㈜ 회장은 앞으로 경영권은 계속 행사할 수 있으며 SK글로벌이 정상화되면 지분을 돌려받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현재 SK글로벌의 상황은 어떤가.
“더 분석을 해봐야겠지만 현재로서는 안정적으로 영업이 이뤄지고, 채권금융기관들이 기존 여신을 리볼빙(만기연장)해주면 회생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또 SK글로벌은 유동성이 충분하기 때문에 신규 자금지원은 필요없을 것으로 본다.”
―SK글로벌의 자구계획안은 받았나.
“오늘 오후에 받아 검토 중이다. SK측은 현금예금을 1조5000억원 정도 확보하고 있으며 주유소 3100여개의 부동산 처리를 검토하겠다고 한다. 가치는 1조1000억원으로 돼 있다. 그 밖의 내용은 아직 협의 중이므로 밝힐 수 없다.”
―최 회장의 경영권에 대한 영향은….
“최 회장의 경영권은 그대로 유지된다. 채권단의 동의를 받으면 주주로서의 권리도 행사할 수 있다. 다만 자구계획안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채권단이 지분을 팔 수도 있다. 우리는 최 회장의 경영권에는 관심 없다. 채권 회수가 목표다.”
―해외채권단 처리는….
“대표적인 해외 채권금융기관이 10여개인데 아직 상환요구 등의 움직임은 없다. 해외채권자와의 협상은 기본적으로 SK글로벌이 할 것이다. 기본 방침은 국내 채권자와 해외 채권자가 동등하게 대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다른 기업처럼 국내 채권단이 해외채권을 할인해서 매입해 주는 일도 없을 것이다.”
―SK글로벌이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적용되면 다른 계열사 영향은 없나.
“계열사와의 보증채무가 없기 때문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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