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좋은 작품인지, 턱없이 비싼 것은 아닌지, 주변 환경과 어울리기는 할지…. 안목이 ‘꽝’이라는 소리를 듣게 될까 걱정마저 된다. 결국 화랑 앞에서 발걸음을 돌려버리기 일쑤.
이런 고민의 해결사를 자처하고 나선 사람들이 있다. ‘아트 컨설턴트’라는 직업을 개척해낸 서울옥션의 한여훈(29) 정은영(30) 장경화(34) 정진숙씨(45).
이들은 고객의 취향, 공간의 특성, 분위기 등을 파악해 딱 맞는 미술품을 설치해 주는 작업을 하고 있다. 현재 수행 중인 대표적인 프로젝트는 ‘그림이 있는 병원’ ‘그림이 있는 집’ 등.
‘아트 컨설턴트’라는 직업은 아직 생소해 종사자가 국내에 10명 남짓으로 손꼽을 정도. 한씨 등이 일을 시작한 지도 이제 겨우 4개월째다. 그래도 이들은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며 싱글벙글한다.
“수많은 벽들이 텅텅 비어 있는데도 작가들은 작품을 못 팔아 생계 유지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수요와 공급은 있는데 유통이 안 되는 거죠. 이러다 보니 가격이 터무니없이 왜곡되기도 하는데 거품을 빼고 진가를 인정해주는 것이 또 다른 역할이지요.”(정은영씨)
이들은 100만원 미만의 그림에서부터 컨설팅을 시작한다. 수억원짜리 그림을 다루기도 하지만 이런 대작들도 연 3% 안팎의 임대료를 내면 부담없이 감상할 수 있다고.
아트 컨설턴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간에 맞는 컨셉을 잡아내는 것. 이를 위해 수차례 현장을 방문하고 깊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영감을 얻는 방법은 다양하다. 가정집 주인이 쓰는 그릇, 화장품 담는 통, 읽는 책 등을 살펴보고 취향을 읽어낸다. 병원이라면 진료과목, 병실 크기, 환자의 연령대, 진료 분위기 등을 조목조목 따져본다. 환자들과의 잡담이 큰 도움이 될 때도 있다.
다음은 한여훈씨가 떠올린 성형외과 컨설팅 프로젝트의 하나.
“막상 방문하니 머릿속에 그려놨던 이미지와 달랐어요. 보통 성형외과는 강남의 카페를 연상시키는 젊은 느낌인데 그곳은 차분하면서도 고급스러운 호텔 분위기더군요. 환자들이 예뻐진다는 느낌보다 격(格)이 올라간다는 느낌을 받도록 계획을 수정했죠.”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다. 수차례 현장을 들락거리던 어느 날 한 아주머니 환자가 안타깝다는 듯이 물어왔다. “도대체 왜 아직도 결정을 못하는 거요?”
병원장과 합의를 못 봤다고 한숨을 쉬며 한참동안 고민을 나누다 보니 뭔가 이상했다. 알고 보니 질문의 뜻은 “왜 아직 성형수술 받겠다는 결심을 못하느냐”였다고.
한동안 사람들을 웃긴 이 사건은 아트 컨설턴트의 활동량과 직업정신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됐다.
“언뜻 보기에 우아한 직업 같지만 사실은 백조예요.(웃음) 물 위로는 한가해 보여도 물 속에서는 열심히 발을 놀리는 백조 같은 거죠. 미술품을 찾아다니다 보면 발이 붓기도 하고, 고객에게 작품을 거절당한 뒤 끙끙거리며 들고 돌아올 땐 서럽기까지 해요.”(한여훈씨)
작품에 대한 온 가족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고객의 요청에 따라 오후 10시 이후나 출근시간 전인 오전 8시경 방문하기도 한다. 주말과 공휴일도 예외가 없다.
나머지 시간에는 화랑 등을 돌아다니며 작품을 발굴한다. 이런 방식으로 이들이 모은 데이터베이스에는 어느새 화가 400여명의 작품 2000여점이 담겼다.
아트 컨설턴트가 되는 데 특별한 자격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판화를 전공한 정진숙씨는 30여회 전시회를 열며 작가로 일하다 이 분야에 관심을 갖고 일을 시작한 케이스. 나머지는 미대를 졸업하고 큐레이터나 코디네이터 등으로 활동하다 서울옥션에 자리를 잡았다.
“프로젝트의 규모가 클수록 보수도 커지기 때문에 능력에 따라 만족할 수준의 연봉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
보람을 느끼는 때를 묻자 “250만원짜리 프로젝트가 600만원짜리로 올라갈 때”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고객 만족 같은 일반적인 내용이 아닌 직업인으로서 똑 부러지는 대답이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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