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개성 있는 서체를 뽐낼 무렵부터는 필기도구가 무엇이냐가 관심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친구는 외제 만년필, 어떤 친구는 미술 연필, 또는 엉뚱한 수제 깃털까지 별의별 필기도구가 다 모였다. 한동안 계속되던 소란이 시들해진 것은 어느 친구가 가져온 몽블랑 만년필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꽤 굵고 묵직했던 만년필. ‘몽블랑’이라는 명성에다 미끄러지듯 흐르는 그 필기감. 친구들이 한번씩은 돌려 써본 다음 호들갑은 조용히 잦아들었다.
요즘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광고가 이탈리아에 등장했다.
무심코 책을 넘기다가 발견한 BMW 3시리즈 광고.
BMW 로고와 차가 보이고 그 오른쪽에 사람이 등장한다. 위쪽에는 젊은 남성의 머리카락이 반백으로 변해 있고 아래쪽에는 탱탱해야 할 젊은 여성의 눈가에 주름살이 쭈글쭈글하다. 무슨 뜻일까 하는 의구심은 ‘갑자기 다른 모든 것이 더 늙어 보인다’라는 광고문구를 읽으며 확 풀렸다.
‘무엇이 젊음인가’라는 논란을 일순간에 잠재우는 BMW 3시리즈. BMW 3시리즈를 가진 사람에게 젊은이들이 늙어 보이는 것은, 몽블랑 만년필을 가진 친구 앞에서 멋진 펜글씨 솜씨를 자랑하던 친구가 하찮아 보이는 것과 같은 것일 것이다.
소비자들은 이 광고에서 과거의 논란을 모두 잠재우는 강력한 브랜드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광고제작자들은 이처럼 현재의 논란을 한 번에 바꿀 수 있는 소비자들의 미래 욕구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언제나 아이디어의 한계에 부닥치게 마련이다.
하지만 새로운 욕구를 발견하는 기쁨은 매번 자신의 신기록을 깨는 운동선수의 인터뷰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우리의 몸은 여기까지가 한계라고 느끼는 순간이 있지만, (정신으로)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 스포츠다. (정신적으로)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던지기가 가능해질 때까지 정진하겠다.”
정성진 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sj.choung@sams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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