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으로 투자를 보류했던 투자자들이 ‘사자’에 나서고 있는 것.
1991년 1월 걸프전 발발 후 1년 동안 미국 다우지수는 24.5%나 올랐다. 이번에도 5, 6개월간 증시를 짓누르던 이라크 전쟁이 주가 상승을 이끄는 ‘촉매’로 작용할 것이란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은 수많은 악재 가운데 하나가 해소되는 것일 뿐이어서 지나친 희망은 큰 실망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 일본 독일 등 세계 각국 경제가 전쟁 뒤에도 쉽게 회복될 것 같지 않은데다 북한 핵 문제 등 장외(場外) 악재가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탓이다.
▽전쟁과 평화, 그리고 주가〓미국은 지난 100년 동안 5차례의 큰 전쟁을 치렀다. 그 전쟁이 주가에 미친 영향으로 개전 때보다 종전 때 주가가 훨씬 많이 올랐다. 개전 이후 1년 동안 다우지수는 평균 6.3% 올랐다. 걸프전과 6·25전쟁 때는 각각 24.5%, 15.0% 올랐다. 하지만 제 1차세계대전 때는 16.6%나 떨어졌고 제 2차세계대전 때는 2.2% 오르는 데 그쳤다.
반면 이들 전쟁의 종전 뒤 1년 동안은 평균 23.0%나 급등했다.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이 끝난 뒤에는 28.4%와 21.4%나 올랐다. 증시는 전쟁보다 평화를 더 좋아한 셈이다. 국제유가도 걸프전 때 배럴당 40달러까지 폭등했다가 공격이 시작되면서 20달러까지 떨어졌다.
▽속전속결이 과제〓주가상승(전쟁랠리)이 이어지려면 전쟁이 단기에 끝나 유가가 하락해야 한다. 동원증권 김세중 연구원은 “투자자들은 전쟁이 단기전으로 끝나면 경기도 짧은 시간 내에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며 “펀더멘털과는 상관없이 이런 심리가 주가를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전쟁으로 중동지역과의 갈등이 지속되면 정치적 불안감은 물론 원유 수급 문제 등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심지어 이라크가 유전을 파괴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미국 내에서 보복 테러가 잇따를 우려도 제기된다.
미국 투자회사인 ‘재니 몽고메리 스콧’의 래리 라이스 부사장은 “이번 전쟁에는 시장에 영향을 미칠 다른 지정학적인 변수들이 많이 공존하고 있다”며 “과거 사례에서 이번 전쟁의 결과를 끌어내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메릴린치증권 수석 전략가 리처드 번스타인은 “베를린 장벽 붕괴나 옛 소련의 몰락과 맞먹는 대대적인 지정학적 질서가 변화하는 중”이라며 “이라크 정권의 교체가 세계적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라고 분석했다. 골드만삭스도 전쟁이 단기에 끝나도 유가는 1년간 배럴당 28달러 밑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국 증시, 북한 핵 문제를 넘어야〓종합주가지수가 저항선인 20일 이동평균(561.47) 선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굿모닝신한증권 정의석 선임연구원은 “단기적으로 60일 이동평균(601.27) 선까지 오르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상승세가 계속되기엔 불투명한 요소가 아직도 많다. 북한 핵문제가 가장 큰 변수.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서 단기간에 승리한다면 차후 북한에 대해서도 강경 자세를 취할 수 있다. 이라크 전쟁이 끝난 뒤의 다음 표적은 북한이 될 것이라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주한미군 철수가 공론화되면 외국 투자자들이 이탈하고 국가신용등급도 낮아지는 시나리오가 펼쳐질 수도 있다.
우리증권 신성호 이사는 “북한 핵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기 전까지는 종합주가가 600선을 뚫고 추세적으로 상승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쟁과 평화의 주가 영향 (단위:%) | ||||
전쟁 | 미국 참전일 | 개전 후 1년간 주가등락률 | 종전일 | 종전 후 1년간 주가등락률 |
제1차세계대전 | 1917년4월6일 | -16.6 | 1918년11월11일 | 27.9 |
제2차세계대전 | 1941년12월7일 | 2.2 | 1945년8월14일 | 23.8 |
6·25전쟁 | 1950년6월25일 | 15.0 | 1953년7월27일 | 28.4 |
베트남전쟁 | 1964년8월7일 | 6.4 | 1975년4월30일 | 21.4 |
걸프전쟁 | 1991년1월17일 | 24.5 | 1991년3월3일 | 13.4 |
다우지수 등락률임. 자료:CNN머니 |
남북 주요사건과 주가지수 등락률 (단위:%) | ||||
사건 | 일자 | 발표일 | 발표 후 5일 | 발표 후 10일 |
남북고위급회담 합의 | 1990.7.3 | 1.32 | ―3.99 | ―7.50 |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 1991.9.17 | ―0.37 | ―0.39 | 3.47 |
북한 IAEA와 협상타결 | 1994.2.15 | ―2.02 | 4.90 | 2.72 |
미-북 제네바합의 | 1994.10.1 | ―0.98 | 0.73 | 4.66 |
남북정상회담 합의 | 1994.6.28 | ―1.11 | 2.99 | 3.55 |
김일성 사망 보도 | 1994.7.9 | 0.79 | ―0.64 | ―2.20 |
북한 경수로 공급협정 | 1995.12.15 | 1.71 | 0.03 | ―1.19 |
강릉 잠수정 침투 | 1996.9.18 | 1.16 | ―0.54 | ―0.72 |
정주영 소떼 방북 | 1998.6.16 | ―2.85 | 11.17 | 7.82 |
미-북 금창리 핵시설 사찰 | 1999.3.16 | 0.22 | 2.08 | 2.70 |
남북 서해교전 | 1999.6.15 | ―2.21 | 8.99 | 11.66 |
베를린선언 | 2000.3.10 | 4.29 | ―4.02 | ―0.24 |
남북정상회담 합의 | 2000.4.10 | 3.92 | ―14.12 | ―15.28 |
남북정상회담 | 2000.6.13 | ―4.89 | ―2.38 | 0.67 |
서해교전 | 2002.6.29 | 휴장 | 5.47 | 5.49 |
북한 핵무기보유시인 | 2002.10.17 | 1.32 | 2.94 | 3.56 |
북한 핵동결 해제선언 | 2002.12.12 | 2.40 | 1.55 | ―10.17 |
평균 | 0.17 | 0.87 | 0.53 | 자료:증권거래소 |
홍찬선기자 hcs@donga.com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단기 주가 전망…'전쟁랠리' 짧고 굵을 듯 ▼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 후 한국 주가는 단기적으로 어떻게 움직일까? 1991년 걸프전 때의 주가 흐름을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
걸프전 당시 한국 종합주가지수는 전쟁 준비 기간(1991년 1월 13일 미국 의회의 무력 사용 승인∼1월 16일 유엔의 대이라크 결의안 통과)에는 큰 폭으로 오르내렸다.
미국이 이라크 공습을 시작한 1월 17일엔 대량거래를 동반하며 4.6% 올랐다. 이후 3일 동안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인 주가는 곧이어 급격한 조정을 받았다. 공습 1주일 뒤인 1월 23일 바닥을 찍은 주가는 이후 2월 11일까지 20여일간 이렇다할 등락 없이 옆걸음질쳤다.
지상군 상륙 소문으로 또다시 폭등하기 시작한 주가는 지상군 투입 다음날 열린 2월 25일 장에서 고점을 찍고 이후 3월 3일 이라크의 휴전 조건 수락과 더불어 내림세를 탔다.
걸프전 기간에 미국 주가의 흐름은 한국과 크게 달랐다. 다우지수는 전쟁 발발이 기정사실화한 1월 중순부터 전쟁이 끝날 때까지 완만한 오름세를 유지했다.
걸프전 기간(1991년 1월 17일∼3월 2일·3월 3일은 일요일)에 한국 주가는 5.6% 오르고 미국 주가는 16.2% 상승했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이라크 침공은 걸프전 때보다 개전 시점과 전쟁 결과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전쟁 초기에 주가가 떨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20일 주가 상승률은 4.9%로 걸프전 당시와 비슷했다.
동원증권 강성모 투자분석팀장은 “유정(油井) 파괴, 생화학전 등 돌발변수가 없는 한 이번에는 걸프전 때보다 짧고 굵은 랠리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중장기적인 주가 흐름은 원유 가격 동향과 북한 핵문제의 진전 양상에 달려있다는 것이 증시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전망이다.
이철용기자 lcy@donga.com
▼전문가 추천…운송-석유화학株 유망 ▼
대우증권이 뽑은 전쟁 후 관심 대상 종목 (1개월 이내 단기전의 경우) | ||
업종 | 종목 | 이유 |
섬유 | 제일모직 효성 | 유가 하락으로 재료값 안정 |
제지 | 한국제지 한솔제지 | 국제 수요 증가로 수출 호전 |
석유화학 | LG화학 LG석화 | 유가 하락으로 재료값 안정 |
비철금속 | 고려아연 풍산 | 상품가격 상승으로 수익증가 |
가전/부품 | LG전자 | 소비심리 회복 |
자동차 | 현대자동차 | 내수 및 해외 시장 수요 회복 |
조선 | 대우조선해양 | 신조선가 연간 10% 내외 상승 |
반도체 | 삼성전자 | 불확실성 해소로 수요 증가 |
인터넷 | 다음 | 경기회복 기대감 증가 |
전력 | 한국전력 | 발전연료비 경감 및 수요증가 |
건설 | LG건설 | 전후복구사업 및 부동산경기 |
운송 | 대한항공 | 유가 하락으로 운송비 절감 |
자료:대우증권 |
동원증권이 뽑은 전쟁 후 관심 대상 종목 | ||
업종 | 종목 | 이유 |
운송주 |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한진해운 대한해운 현대상선 | 유가 하락으로 운송비 절감 |
석유화학주 | LG화학 호남석유화학 LG석유화학 한화석유화학 | 유가 하락으로 원재료비 절감 |
대형건설주 | LG건설 대우건설 현대건설 대림산업 삼성엔지니어링 | 중동지역 전후 복구 특수 |
자료:동원증권 |
증시 전문가들은 그동안 이라크전쟁이 단기간에 끝나는 것이 증시에 가장 좋다고 전망해 왔다. 이번 전쟁이 속전속결로 끝난다면 한국 증시에서는 어떤 종목들이 주목받을까.
전쟁 시작 직전인 20일 증시에는 ‘이런 종목이 좋다’는 예측들이 쏟아졌다. 세 회사가 추천한 종목의 60%는 20일 시장 평균보다 더 올랐다.
▽이런 종목이 추천됐다=대우증권은 전쟁이 앞으로 1개월 내에 끝나는 것을 가정해 주가 상승이 기대되는 종목을 추천했다. 한국투신증권과 동원증권 대우증권 등도 엇비슷한 기준으로 유망주를 추천했다.
각 회사들이 종목을 추천한 가장 공통적인 근거는 유가 하락. 추천 종목은 대부분 유가가 내려 비용이 줄거나, 유가 하락으로 경기 상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업종의 대표주들이었다.
운송업종은 세 회사가 모두 추천했다. 유가가 떨어지면 운송비가 줄어들기 때문. 동원증권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한진해운 대한해운 현대상선을 추천했다. 한국투신증권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한진해운을, 대우증권은 대한항공을 추천했다.
유가가 내려 원재료비가 줄어드는 석유화학업종도 두 회사가 추천했다. 동원증권은 호남석유화학 LG석유화학 한화석화를, 대우증권은 LG화학 LG석유화학을 추천했다.
전쟁이 끝난 뒤 중동에 대규모 전후 복구 공사가 시작된다는 가정 아래 대형 건설주도 주목을 받았다. 동원증권은 LG건설 대우건설 현대건설 대림산업 삼성엔지니어링을 추천했다. LG건설은 대우증권도 추천했다.
한국투신증권과 대우증권은 전력업종의 한국전력과 조선업종의 대우조선해양을 공통적으로 추천했다.
유가하락으로 전력생산비용이 줄고 국제 물동량이 늘어나면서 조선경기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근거다.
▽20일 주가 성적표는?=전쟁이 실제로 빨리 끝날지는 미지수다. 또 이들 업종과 종목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진 전문가도 많다.
그러나 개전 첫날 종합주가지수가 4.92% 오른 가운데 세 회사가 추천한 30개 종목이 모두 올랐다.
한솔제지가 13.46% 오르는 등 60%에 해당하는 18개 종목이 시장 평균보다 더 올랐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전쟁랠리' 말 말 말…▼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이 시작되기 전후 증시에는 전쟁의 양상과 증시의 움직임을 전망하는 다양한 수사(修辭)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선 전쟁을 앞두고 미국을 비롯한 세계 증시가 함께 오르는 현상은 ‘전쟁 랠리’. 전쟁의 불확실성이 제거되면서 증시가 크게 오르는 현상을 일컫는다.
김정환 대우증권 연구원은 이를 “투자자들의 ‘벙커심리’가 해소됐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벙커심리란 포탄이 쏟아지는 전장에서는 고개를 쳐들지 않고 안전하게 머리를 수그리자는 심리. ‘시장이 불안할 때는 관망하자’는 투자자의 심리를 빗댄 말이다.
벙커심리가 사라지고 전쟁 랠리가 시작됐으니 만사가 형통할 것이라고 믿는 ‘신기루 현상’을 조심하라는 경고도 나왔다.
조용찬 대신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전쟁 승리가 경기를 회복시키고 주식 매수 세력을 크게 만들 것이라는 믿음으로 투자심리가 개선됐다”며 “투자자들은 CNN 방송의 전쟁속보에 젖다보면 신기루 현상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이 단기간에 끝날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알 수 없고 차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
강현철 LG투자증권 연구원은 “유가나 환율 등 주요 변수의 움직임이 ‘요요 현상’에 불과한지 아니면 ‘추세반전’인지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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