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사를 살려라=이호수 박사팀은 매일 2, 3시간씩 한 달간 회의를 한 끝에 N사에 처방을 내렸다. 생산과 관련된 모든 업무 프로세스를 하나의 전산시스템으로 통합하고 관리 프로그램을 자체 개발해 설치했다. 서버 등 추가로 필요한 장비도 공급했다. 협력업체들의 전산망들도 N사의 전산망과 통합하도록 했다.
업무 과정도 바꿨다. 예전에는 주문에 따라 자르고 남은 쇳조각을 재고 창고에 입고해야 재고현황을 알 수 있었지만 IBM이 손을 댄 뒤로는 수주와 함께 재고 예상을 할 수 있게 됐다. 따라서 짧은 철강의 주문이 들어오면 긴 철강을 자르지 않고 예상 재고분으로 대응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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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과정에 있는 제품의 물량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되자 자연 소량 주문도 가능해졌다. 금속의 종류와 양, 생산단계에서의 위치를 알게 되면서 더 다양한 합금도 생산할 수 있었다. 납기일은 종전 45일에서 20일로 줄었다.
N사가 1년 뒤 계산한 결과 IBM의 온 디맨드를 적용하기 전보다 생산 원가가 수 천만 달러 줄어 있었다. 이 비용은 IBM에 지급한 액수와 똑같았다. 이 박사는 “N사의 사례는 21세기 포스트 IT시대를 선도하고자 하는 IBM 비전의 축소판”이라고 소개했다.
▽“IBM은 컴퓨터 회사가 아니다”=IBM은 1896년 허먼 홀라리스가 ‘태뷸레이팅 머신’이라는 이름의 천공기 제조 회사로 설립한 것이 모태가 됐다. 1924년 회사 이름을 IBM(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으로 바꿨으며 1981년 세계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PC)인 ‘IBM5100’을 내놓은 이래 PC 중대형 컴퓨터 컴퓨터언어 소프트웨어 등을 제조해 왔다.
그러나 IBM은 작년부터 ‘세계 최고의 컴퓨터 회사’라는 기존의 명성을 버리기로 했다. 대신 선택한 것이 온 디맨드. 온 디맨드는 IBM이 모든 것을 베팅한 핵심 개념이다. 적시(適時) 적소(適所) 적량(適量)의 ‘3적(適)’을 의미하는 온 디맨드는 기업과 개인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만큼 얻게 해 준다는 21세기 IBM의 철학.
뉴욕 맨해튼에서 기차로 1시간20여분 거리의 북쪽에 있는 소머스의 IBM 마케팅본부에서 만난 데브 무커지 온 디맨드 전략 담당 부사장은 “21세기의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자신 있는 사업부문만 남기고 나머지는 버리거나 하청을 주고(focused), 부동산 설비 등 고정자산을 최소로 줄여 현금 유동성을 높이며(variable), 변화하는 시장 상황에 즉각 대처하고(responsive), 이를 위해 조직과 사업모델을 탄력적으로 바꿀 수 있어야(resilient) 한다”고 설명했다.
IBM은 자체 연구결과 이 같은 조건을 기업들이 갖추지 못하면 그 기업은 곧 경쟁력을 잃을 것으로 본다. IBM의 영업모델은 기업들에 온 디맨드를 실현시켜 주고 기업이 얻은 이익의 일부를 나눠 갖겠다는 것. IBM은 ‘온 디맨드에 관한 한 우리가 세계 최고’임을 자부하고 있다.
▽온 디맨드 열풍=투자은행 JP모건체이스는 지난해 12월 온 디맨드를 도입하기로 하고 IBM과 계약을 맺었다. IBM은 현재 JP모건 내의 부서들이 사용하고 있는 각각 다른 사양의 서버와 저장 장치를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연결시켜 업무효율을 높일 계획이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아멕스)는 IBM의 온 디맨드 서비스로 글로벌 전산망을 운영하기로 했다. 아멕스는 자체 전산실을 없애는 대신 IBM이 전산실 운영을 대신 해 주고 마치 수도요금을 받듯이 전산시설을 이용한 만큼만 아멕스에 청구하기로 했다. 아멕스의 전산인력도 IBM으로 자리를 옮겨 근무한다.
IBM 스스로도 온 디맨드 모델로 사업구조를 바꾸고 있다. 잡슨연구소에는 250명의 연구인력으로 구성된 ‘온 디맨드 이노베이션 서비스’ 팀이 N철강회사 같은 업체들을 진단한 뒤, 처방전을 내리고 18만여명의 IBM 전문인력 중 전문가를 찾아내 짧은 시간 내에 해답을 찾아내고 있다.
IBM은 지난해 매출 중 30%가량만을 컴퓨터 하드웨어 판매에서 얻었다. 나머지 70%는 IT서비스 금융 컨설팅 등의 부문에서 거둔 것.
무커지 부사장은 말했다.
“IBM은 이미 95년에 ‘e비즈니스’라는 말을 처음 썼다. ‘e비즈니스 온 디맨드’도 앞으로 수년간 화두가 될 것이다. HP 선마이크로시스템스 마이크로소프트 등 많은 후발 업체들이 표현은 제각각일지언정 온 디맨드를 향해 뛰고 있다.”
뉴욕=나성엽기자 cpu@donga.com
▶수치로 본 IBM
▽6개국 8개 연구소에 과학자 8000명 연구 중
▽포천지선정 IT부문 10대 존경받는 기업 1위
▽2002년 한 해 동안 특허 3288건 취득
▽최근 10년간 특허 2만2357건 획득(IBM을 제외한 10대 IT기업의 특허 획득건수보다 많음)
▽2002년 매출 812억달러(약 100조원), 순이익 36억달러(약 4조5000억원)
▽세계 170개국에 직원 32만5000명(미국 18만명)
▽네트워킹 스토리지 서비스 업계 1위(가트너그룹)
▽무선 서비스 분야 1위(IDC)
▽소프트웨어 매출 업계 2위(가트너그룹)
▽데이터베이스 시장점유율 1위(데이터퀘스트)
▽서버 시장 점유율 1위(IDC)
▽포천지 선정 100대 기업 중 74%가 IBM 서버 사용
▽한국인 과학자 120여명이 IBM연구소에서 공동연구
▼IBM 이호수 과학기술 고문 "첨단 경영기술 국내업계 이전" ▼
한국IBM의 이호수 과학기술 고문(컴퓨터공학 박사·사진). 그의 역할은 미국 IBM 본사의 첨단 기술을 한국IBM에 전하고, 이 기술을 국내 업계에 이식(移植)하는 방안을 연구하는 것이다.
이 박사는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전자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의 노스웨스턴대에서 컴퓨터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자마자 85년 IBM 왓슨연구소의 연구원으로 들어왔다.
왓슨연구소에서 그는 기업간(B2B) 전자상거래와 생산자동화 등을 연구했으며, 일본의 N철강회사 등 일반 기업들의 경영혁신 작업을 담당하기도 했다.
소머스의 IBM 글로벌 서비스 사무소에서 만난 그는 “IBM의 ‘e비즈니스 온 디맨드’ 전략을 위한 기반 기술의 준비는 이미 8년여 전부터 시작됐다”며 “만약 IBM이 기초과학에 근거한 기반기술 없이 몇 개 소프트웨어업체와 컨설팅업체를 인수한 것만으로는 실현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박사는 기업이 한 분야에 집중하고 고정자산을 최소로 줄이며 시장의 변화에 즉각적이고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기업 내외부의 통합 △리눅스와 같은 개방형 표준 사용 △‘오토노믹(자율) 컴퓨팅’(본보 2002년 10월 23일 B1면 참조) 등 기반 기술이 필수라고 설명했다.
‘온 디맨드’ 환경에서는 한 기업의 컴퓨터(서버)에 과부하가 걸리면 그리드(일종의 서버 네트워크) 기술로 연결된 다른 서버를 일부 빌려쓸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넓은 지역의 서버들이 하나의 신경망처럼 유기적으로 복잡하게 작동하는데 사람이 일일이 서버들의 상태를 점검할 수 없으며 이때는 서버가 스스로 자신을 진단하고 에러를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 고문은 “‘온 디맨드’ 환경을 만드는 데는 이 밖에 수백가지의 안정된 특허 기술이 적용된다”며 “IBM의 포스트 정보기술(IT) 시대 전략은 ‘기술과 경영의 접목’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뉴욕=나성엽기자 cpu@donga.com
▼작년 한해동안 7개 SW社 인수 ▼
IBM의 ‘온 디맨드’는 기존의 것을 표현만 달리 한 구호가 아니다. 월드컵 열기로 세계가 들뜬 2002년, IBM은 온 디맨드를 실현할 수 있도록 회사의 체질을 바꾸는 작업을 마무리 중이었다.
2001년 4월 IBM은 인포믹스사를 10억달러에 인수, 데이터베이스 관리 소프트웨어 사업부문을 강화했다. 인포믹스사의 고객 10만명을 IBM으로 끌어들임과 동시에 기존 IBM의 데이터베이스 소프트웨어를 한층 업그레이드시켰다.
IBM은 이어 2002년 1월에는 크로스월드 소프트웨어사를 1억2900만달러에 인수, 사무자동화 부문을 강화했고, 이어 6월에는 메타머지, 9월 액세스360, 10월 EADS 매트라 데이터비전, 11월 태리언 소프트웨어, 올 2월에는 래셔널 소프트웨어를 인수하는 등 1년여 만에 무려 7개의 소프트웨어 업체를 인수했다. IBM은 이로써 기업용 소프트웨어 개발 능력을 높이는 동시에 잠재 고객사 수십만개를 추가로 확보했다.
당초 하드웨어 업체로 출발한 IBM이 소프트웨어 업체를 인수한 것에 대해 업계에서는 그러나 ‘별 다를 것 없는 사업확장’으로 봤다.
그러나 작년 10월 IBM과 컨설팅 업체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컨설팅(PwCC)이 합병을 선언했을 때는 업계에서는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임을 실감했다. 세계 160여개국에 6000여 고객사를 갖고 있던 PwCC에 IBM은 자사 IT전문인력 3만여명을 배치해 임직원 6만여명의 IBM-BCS(Business Consult-ing Services)라는 세계 최대의 경영컨설팅 업체를 단숨에 만들어 낸 것.
온 디맨드의 개념은 IBM-BCS를 주축으로 개념이 형성됐으며, PwCC를 인수하려고 물밑작업을 벌이던 휴렛팩커드(HP) 등 경쟁업체는 통한의 한숨을 쉬었다.
90년 전통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제작 노하우와 1년 사이에 인수한 7개의 경쟁력 있는 소프트웨어 업체, 그리고 세계 최대의 컨설팅사로 무장한 IBM은 2003년 명실상부 경영혁신(BT) 전문기업으로 탈바꿈했다.
뉴욕〓나성엽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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