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2단지에선 현재 300㎜(12인치) 웨이퍼 생산을 위한 제12라인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 불과 몇 개월 후인 올 3·4분기(7∼9월)에 이곳 12라인에서 D램과 플래시메모리가 양산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세계적으로 나노급 기술을 적용한 첫 공장이 된다.
90년대까지 반도체 공정기술은 마이크로 즉 100만분의 1m 수준의 선폭으로 만족했다. 그것이 한계라고들 했다. 하지만 나노는 그보다 100분의 1 더 가는 10억분의 1m다. 원자 몇 개를 이어놓은 정도의 굵기다. 이 기술을 적용해 올해 삼성전자가 선보일 4G급 플래시메모리에는 음악 CD 70장이 손톱만한 칩에 담기게 된다. 이런 속도로 집적도가 계속 높아지면 과연 어떤 세상이 올 것인지 상상하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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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이후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1위를 고수하고 있지만 삼성전자의 반도체 전략은 조심스럽다. 요즘처럼 시장과 기술의 변화 속도가 빠른 상황에선 어느 한 곳에 묶여있는 것은 위험이 너무 크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90년대 중반 초고속 메모리 반도체 표준을 둘러싸고 램버스, DDR, 싱크링크 등이 경합을 벌일 때 경쟁업체들은 서둘러 한 쪽에 줄을 섰지만 삼성전자는 좀 더 두고보자는 자세를 취했다. 어떤 게 표준이 될지 기다려보자는 전략이었다.
D램 이후의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메모리 반도체 가운데 S램은 전력 소모가 낮다는 장점을 갖고 있고 D램은 속도가 빠르다. 플래시메모리는 전원을 꺼도 작업한 내용이 지워지지 않는다. 이런 모든 장점을 한 곳에 모아놓은 반도체가 최근 연구되고 있는 F램과 M램 등 차세대 반도체들이다. 메모리 개발사업부 전준영(全峻永) 부장은 “최종적으로 어떤 제품이 뜰지 몰라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연구 개발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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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여유스럽게 보이지만 삼성전자의 최근 실적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메모리 반도체 업계가 불황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지만 삼성전자는 메모리 부문에서 흑자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반면 경쟁사인 마이크론테크놀로지와 인피니온은 2년 이상 연속으로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더이상 설비뿐 아니라 기술에 대해 투자할 여력이 없어 보인다. 이에 비해 삼성전자는 기술에 대한 투자를 지속해 왔다. 전 부장은 “남보다 앞선 선행 투자의 효과가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삼성 메모리 반도체 사업의 고공 비행은 제품의 포트폴리오가 부가가치가 높은 쪽으로 구성된 덕분이다. 일반 PC에 들어가는 저가 제품 비중은 10%도 안 된다. 최근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게임기만 해도 마이크로소프트의 X박스는 거의 모든 제품에,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는 절반가량에 삼성의 반도체가 들어간다. 이런 점이 반도체 가격 하락에도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공급받는 쪽에서 삼성전자 제품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불황에도 견딜 수 있는 것이다.
화창한 봄날 오후 화성에서 만난 연구원들의 모습은 자유로워 보였다. 넥타이를 맨 기자만 이방인 티를 내고 있었다. 예전처럼 밀어붙이는 식의 연구는 이제 없어졌다고 한다. 개인의 창의성과 토론 문화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브리핑룸의 칠판엔 토론을 벌인 흔적이 아직 남아있었다. 지화용 대리는 “업무가 끝나면 체육관은 운동하는 사람들로 가득 메워진다”고 소개했다.
40년대 미국에서 최초로 트랜지스터가 발명된 이후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주도권은 ‘서진(西進) 행진’을 벌이고 있다. 64kD램 이후 1GD램에 이르기까지 처음에는 미국 업체가, 다음은 태평양을 건너 일본 업체가, 그 다음엔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 개발’의 개가를 올린 것이다. ‘다음은 중국 아니냐’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삼성인들은 고개를 젓는다. 서진(西進)의 다음 행선지는 기흥의 서쪽에 자리잡은 화성 2단지일 것으로 믿고 있다.
화성=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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