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 비리 실태, ‘눈먼 돈’ 기업주-정치인 호주머니로

  • 입력 2003년 4월 1일 19시 14분


공적자금 비리 3차 중간수사 결과는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공적자금이 정치인과 로비스트의 호주머니만 불리며 지원 대상 기업의 부실은 오히려 키웠다는 점으로 압축된다.

검찰의 1, 2차 수사 때와 마찬가지로 혈세는 물 쓰듯 낭비됐지만 결과는 기업 부도와 금융기관의 부담 가중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것.

공적자금 투입을 유발한 동아건설은 98년 9월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간 기업. 당시 협조 융자 2조1800억원을 제공한 채권단은 이 회사의 자금사정이 악화돼 신규 자금을 지원하는 등 비상조치를 취했다.

그렇지만 고병우(高炳佑) 전 회장 등 기업주와 경영진은 비자금 38억원을 빼돌려 2000년 4월 총선 직전 정치인 60여명에게 7억원을 뿌린 것으로 확인됐다. 동아건설은 3년 연속 적자가 나고 그 결손이 보전되지 않으면 정치자금을 낼 수 없다는 정치자금법을 무시하고 분식회계를 통해 적자를 흑자로 둔갑시켜 협조융자를 받아내고 정치인에게 돈을 건넸다.

결국 동아건설은 같은 해 11월 악성 채무 3조5000억원을 남긴 채 부도를 냈다. 은행이 고스란히 떠안은 동아건설의 채무와 손실은 공적자금으로 메워졌다. 동아건설 채권 5477억원을 갖고 있던 서울은행의 경우 모두 8조1113억원의 공적자금이 긴급 수혈됐다.

대농그룹은 계열사인 미도파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막기 위해 막대한 회사 자금을 동원하는 바람에 부도를 맞은 기업.

이 회사의 박영일(朴泳逸) 전 회장 등은 신동방그룹에서 M&A를 시도하자 영업과 무관한 기업주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1370억원을 투입했으나 주가 폭락으로 97년 5월 회사의 워크아웃을 초래했다.

대농그룹의 부실채무는 1조900억원에 이르렀으며 이로 인해 역시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97년 11월 부도가 난 해태그룹도 공사비 과다지급과 사기 대출 등으로 부실채무가 5100억원으로 늘어나 금융권 부담을 더 지웠다.

수사결과는 한마디로 ‘기업주의 개인 비리와 부실경영→금융권 동반 부실→공적자금 긴급 투입’이라는 판에 박은 결과로 나타났다.

기업주가 사욕을 채운 뒤 ‘눈먼 돈’을 정치인과 로비스트에게 제공하고 손실 보전을 위해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여전했던 것.

이번 수사에서는 또 정경(政經) 유착의 고리가 여전했다는 점도 확인됐다. 동아건설 기업주 등이 2000년 5월 김포매립지 공사 수주 청탁과 함께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막내처남 이성호(李聖鎬)씨의 비서를 자처한 박백선씨에게 5억원, 국세청 세무조사 무마 청탁 명목으로 로비스트 유창조씨에게 4억원을 건넨 혐의가 드러난 것. 또 공적자금은 금융기관 임직원의 개인 비리용으로 흘러가기도 했다. 주택분양업자에게 불법 대출해 주고 사례비 1억3000만원을 챙긴 전 주택은행 지점장 조모씨와 불법 대출금 지급시 수입 물품의 통관비용을 지급한 것처럼 꾸민 전 상은리스 영업과장 양모씨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검찰 '정치인 봐주기' 논란▼

공적자금 비리 3차 수사 결과 검찰이 부실기업에서 돈을 받은 정치인에 대해서 늑장 수사를 벌이고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검찰이 2000년 4·13 총선 전 돈을 받았다고 확인한 전 현직 국회의원 등 정치인은 60여명. 이 중 1명은 5000만원, 또 다른 1명은 2000만원, 20여명은 1000만원씩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이들은 대부분 영수증 발급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동아건설의 총선자금 살포 의혹’을 동아일보가 보도하자 뒤늦게 돈을 돌려주거나 영수증 처리를 마쳐 무혐의 처분했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

이 중 정영훈(鄭泳薰) 전 민주당 의원, 이종찬(李鍾贊) 전 국가정보원장, 김선길(金善吉) 전 자민련 의원 등 3명만 영수증 교부를 하지 않아 약식 기소된 상태. 검찰 관계자는 “정치자금법상 영수증 처리 기한이 명시되지 않아 당해 회계연도 말까지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면 범죄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검찰의 늑장 수사로 정치인의 범죄 혐의가 없어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이 영수증 처리나 자금 반환 이전에 정치인을 입건하거나 즉각 수사에 나섰다면 범죄 혐의를 충분히 입증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검찰은 동아일보가 정치자금 제공 의혹에 대해 보도했으나 남북정상회담 등 수사 외적 요인을 거론하며 2년9개월간 수사를 질질 끌었다. 당시 검찰은 총선 정치자금 살포에 대한 첩보는 있지만 본격적인 수사는 남북정상회담이 끝나는 6월 14일 이후에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은 같은 해 10월 16일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사정(司正)수사는 없다”고 언급한 뒤부터 수사를 한동안 방치해 버렸다. 검찰은 “당시 검찰 수사로 워크아웃 중인 기업이 망했다는 소리가 나올 우려도 있었고 기업에 대한 조사 없이는 정치인 수사 자체가 어려웠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 안팎에서는 나라종금 퇴출 저지 로비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측근 A, Y씨에 대한 수사 등이 지지부진한 것에서도 보듯이 이 경우도 ‘정치권에 약한 검찰’의 실상이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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