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총리는 ‘경제팀 수장(首長)’으로 불린다. 해당 부처 업무만 챙기는 장관이 아니라 내각의 전반적인 경제정책을 책임지기 때문이다.
이 자리가 생긴 것은 1964년 5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장기영씨를 초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에 임명하면서부터였다. 김영삼 정부 때인 94년 12월 기획원과 재무부의 통합으로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이란 이름으로 이어받았다. 김대중 정부 초 한때 폐지됐다가 경제총괄기능 부재(不在)에 따른 시행착오와 부작용이 잇따르자 2001년 1월 부활됐다.
개개인의 역량과 각 대통령의 성향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역대 경제부총리 가운데는 지금도 이름이 오르내리는 ‘거물(巨物)’이 적지 않다. 특히 장기영 김학렬 남덕우 신병현씨는 공과에 대한 평가는 다소 엇갈리지만 다양한 에피소드와 함께 많은 실적을 남겼다. 경제부총리제 부활 후 임명된 진념 전윤철씨도 오랜 공직생활에서 오는 카리스마와 대통령의 신임을 바탕으로 꽤 강한 인상을 남긴 편이다.
취임 한 달을 조금 넘긴 김진표 부총리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그동안의 행보를 보면 솔직히 걱정스럽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는 자연스럽게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운 구조에서 현직에 발탁됐다. 행시 13회로 서열과 경력을 중시하는 경제관료 사회에서 주요 경제장관 가운데 행시 기수가 가장 낮다. 경제정책 조율이나 금융분야 정책을 다뤄본 경험도 적다. 요즘 아무리 ‘서열 파괴’가 유행이지만 조직운영에서 파격적인 초고속 승진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그에게 필요한 것은 국민적 신망이다. 경제부총리라고 하지만 냉정히 따져보면 예산권도, 금융감독권도 없다. 가진 것은 ‘입과 책임’이다. 이 때문에 자리가 갖는 ‘무게’를 인식하고 말과 행동에서 신뢰를 잃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하지만 김 부총리가 취임 후 몇 차례 보여준 ‘자살골’은 그의 능력을 인정하는 사람들에게조차 당혹감과 실망감을 주었다. 경제팀 수장으로서의 당당함이 없이 시류(時流)를 너무 타는 듯한 모습이 그렇고, 미국의 북한공격설 발언이나 SK 수사관련 검찰접촉 과정에서 잇따라 불거진 ‘말 바꾸기’도 그렇다.
어려운 전투일수록 지휘관의 역량이 중요하다. 먹구름이 낀 한국경제의 현실을 감안할 때 경제부총리가 흔들리거나 가볍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걱정스럽다. 김 부총리는 그 자리에 필요한 무게를 빨리 찾길 바란다. 좀 듬직하고 믿음이 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권순활 경제부 차장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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