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월 미 캘리포니아 남부 태평양 연안 페블비치 골프장에서는 AT&T 내셔널프로암 골프대회가 열렸다. 우승자는 ‘필드의 귀족’이란 별명을 가진 데이비스 러브3세.
그러나 미 유명기업 및 은행 경영인들의 관심은 정작 방송카메라가 철수한 뒤 비공개로 열린 회원들의 친선경기에 쏠렸다. 선 마이크로시스템스의 스콧 맥닐리 회장, 크리스 갤빈 모토롤라 회장, 필 퍼셀 모건 스탠리 회장, 데이브 도먼 AT&T 회장 등 미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거물들이 필드 곳곳에 보였다.
잭 웰치 전 GE 회장과 호적수인 맥닐리 회장은 드라이버로 275야드를 날리는 뚝심을 과시했으나, 이날 승자는 미세한 금리변화에서 기회를 만들어 내듯 쇼트게임에 강한 면모를 보이며 최소타를 친 빌 그로스 퍼시픽투자사(PIMCO) 채권매니저였다.
포천의 데이비드 리네키 기자는 일반인의 접근이 차단된 만찬까지 참석한 뒤 “골프장에서의 사업얘기는 자살행위”라는 결론을 내렸다. 보디가드까지 대동하고 플레이를 했던 루 거스너 IBM 회장, 핸디캡을 속여 유리하게 스코어를 끌고 간 호주의 미디어재벌, 주최측에 늘씬한 미인을 가이드로 붙여주길 요청한 프로골퍼 등 별 얘기들이 도마에 올랐지만 사업 얘기는 결코 없었던 것.
그렇지만 이런 모임이 사업과 완전 무관하다고 얘기하는 것은 난센스. 리네키 기자는 ‘골프계원’들이 오랜 기간 기업 이사회 멤버를 공유했고 동일한 헤지펀드에 투자하며, 상대 자녀들의 인턴 교육까지 책임지곤 한다고 전했다. 무엇보다도 최고급 골프장 회원권을 선물로 주고받는 등 ‘신뢰’를 바탕으로 끈끈한 인맥을 유지해왔다는 것.
세계 최고 갑부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은 마스터스대회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 회원권을 사기 위해 지난해까지 몇 년을 기다렸다. 어떠한 회원정보 유출도 금기시하는 전통을 무시하고 “오거스타에 들어가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했기 때문.
여성골퍼의 입장을 금기시해 온 오거스타의 전통은 기존 회원을 보호하기 위해 이런 식으로 철옹성을 쌓았다. 리네키 기자는 “절친한 경영자들이 회원권 얘기만 나오면 입을 다물어버린다”며 “오거스타에서 회원권 얘기는 금기 중 금기다”고 밝혔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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