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명품]“잘키운 브랜드 하나 100년 살림 밑천”

  • 입력 2003년 4월 9일 16시 56분


▼1994년 출시된 롯데제과의 '제크'는 '제대로 만든 크래커'의 약자다.▼대우건설 '푸르지오' 는 깨끗하고 산뜻한 느낌의 '푸르다'에 대지공간을 뜻하는 영어 'GEO'를 결합했다.
▼1994년 출시된 롯데제과의 '제크'는 '제대로 만든 크래커'의 약자다.
▼대우건설 '푸르지오' 는 깨끗하고 산뜻한 느낌의 '푸르다'에 대지공간을 뜻하는 영어 'GEO'를 결합했다.
‘이처럼 멋진 상표를 어떻게 지었을까.’

한국의 대표적 장수 상품들을 볼 때마다 이런 궁금증이 떠오른다. 브랜드가 단순한 상표가 아니라 기업의 미래 가치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되는 현실에서 수십 년 동안 꾸준히 사랑을 받아온 제품과 상표에는 뭔가 절묘한 탄생 스토리 또는 역정(歷程)이 있는 게 아닌가….

실제 많은 상표들이 번뜩이는 기지로, 엉뚱한 상상력에서, 직원들의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에서 탄생했다. 또 한두 번은 회사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상품의 일생을 좌우한다는 상표에 얽힌 다양한 뒷 이야기를 알아봤다.

▽번득이는 기지, 찰나의 아이디어를 잡아라=스낵의 황제인 농심 ‘새우깡’의 어원은 꽁보리밥의 사투리인 ‘깡-보리밥’에 나왔다. ‘깡’이란 말이 풍기는 순박하고 투박한 이미지를 살린 대중 스낵이라는 설명이다. 이 상표는 71년 제품 개발 당시에 농심 신춘호(辛春浩) 회장의 어린 딸이 ‘아리랑’을 “아리깡 아리깡”이라 부르는데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조선맥주는 '하이트'가 인기를 끌자 98년 회사이름을 아예 하이트맥주로 바꿨다.
▼삼성물산 건설부문 '래미안'은 업계 최초로 주택천문 홈페이지를 열고 고객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등 소비자인지도 강화를 차별화하였다.

신 회장은 또 다른 히트작을 남겼는데 바로 라면의 황제 ‘신(辛)라면’이다. 10여 년 동안 라면시장의 1위 브랜드인 이 라면은 1986년 처음 나올 때 당시로는 파격적인 작명법인 상표에 한자를 집어넣어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라면 이름이 신 회장의 성과 같아 ‘신 회장의 라면’이라는 뒷 이야기가 무성하다. 농심에는 신 회장의 가운데 이름인 봄 춘(春)자와 같은 ‘춘면’도 있어 이런 소문을 부추기고 있다.

동아제약의 박카스는 자양강장제 시대를 연 제품. 이 제품의 상표는 우연히 만들어졌다. 강신호(姜信浩)회장이 1950년대 서독에서 유학할 때 우연히 방문한 함부르크 시청 지하 홀에서 ‘바커스’ 동상을 본 뒤 영감을 받았다. 희랍신화의 디오니소스 신으로 술과 추수를 관장하는 바커스를 따 우리말 어감에 맞게 바꾼 게 박카스. 간을 보호하는 효과로 주당을 지켜주고 풍년이 들도록 도와달라는 의미다.

▼라면시장 1위 브랜드인 '신라면'은 농심 신춘호 회장의 성과 같아 신회장의 라면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배보다 커진 배꼽=제품의 브랜드 파워가 회사 이름을 능가할 정도로 커지면서 상표로 회사 이름을 바꾼 경우도 많다.

조선맥주㈜는 93년 시장에 내 놓은 하이트 맥주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98년 회사 이름을 아예 하이트맥주로 바꿨다.

‘햇살이 가득 찬 들녘’이란 말을 축약한 해찬들도 브랜드로 회사 이름을 바꿨다. 삼원식품이 해찬들의 전신(前身).

대웅제약도 78년 간장약 ‘우루사’ 덕분에 회사 이름을 바꿨다. 대한비타민의 간판을 내리고 대웅제약으로 개명해 ‘곰→웅담→우루사’로 이미지 흐름을 유도한 것. 이제는 당초 상표의 어원인 웅담의 간장 해독성분인 ‘우루소데속시콜린산’과 관계없이 이 상표를 듣자마자 곰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상표 싸움=동양제과의 ‘오리온 초코파이’는 초코파이 전쟁이라는 희한한 선례를 남긴 제품이다. 1974년 ‘오리온 초코파이’를 상표로 등록해 많은 사랑을 받자 1979년 롯데제과가 ‘롯데 초코파이’로 추격에 나섰다. 얼마 뒤 크라운제과, 해태제과 등도 잇따라 초코파이 생산에 들어가 상표 구분이 모호해 졌다.

1977년 동양제과는 ‘초코파이’는 고유 상표라는 소송을 낸다. 하지만 4년여의 분쟁 끝에 대법원은 ‘초코파이’는 특정 상표라기보다 ‘보통 명사’로 어느 회사도 사용할 수 있다고 판결을 내렸다. 초콜릿으로 만든 파이라는 뜻으로 정직하게 초코파이라는 상표를 붙인 게 패착이었다. 동양제과 관계자들은 최소 수백 억 원의 손해를 봤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한국야쿠르트도 2001년 상표권 문제로 홍역을 치러야 했다. 발효유 제품 ‘요플레’로 유명한 프랑스의 소디알 인터내셔날사가 “한국인은 ‘요구르트’와 ‘야쿠르트’를 혼용해 쓰기 때문에 ‘야쿠르트’라는 브랜드를 누구나 쓸 수 있게 해달라”고 특허청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1971년 한국 최초의 유산균 음료인 야쿠르트를 내놓으면서 발효유 시장에서 1위를 지켜온 한국야쿠르트로서는 애가 탈 일이었다. 다행히 이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기발한 상표들=1994년에 나온 크래커, 롯데제과의 ‘제크’는 ‘제대로 만든 크래커’의 약자다. 엽기 발랄한 상표의 대표적 사례로 많이 인용되는 상표.

종합 조미료 시장을 연 CJ의 다시다는 직원 공모 브랜드. 1975년 한 여자 종업원이 ‘입맛을 다시다’에서 다시다란 상표를 떠올렸고 순 우리말인데다 조미료의 원료인 ‘다시마’의 청정 이미지를 연상시켜 상표로 채택됐다.

대우건설의 ‘푸르지오’는 깨끗하고 산뜻한 느낌의 ‘푸르다’에 대지 공간을 뜻하는 영어 ‘GEO’를 결합했다. 아파트가 사람, 자연, 환경이 융합된 생활 공간이라는 의미를 적절히 담아냈다.

브랜드 네이밍(naming) 및 컨설팅업체인 브랜드 메이저 서상희 이사는 “한국의 장수 상품들은 브랜드가 해당 제품군을 뜻하는 보통명사처럼 느껴질 정도로 브랜드 가치가 대단하다”고 말했다.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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