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가 가장 먼저 전쟁 종료를 ‘선언’했다. 하늘에선 여전히 폭탄이 떨어지고 총구는 불을 뿜고 있다. 매스컴은 ‘백댓(바그다드)’을 입에 달고 살지만 투자가들은 전쟁이 끝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백악관의 그 누구도, 기자나 군인 가운데 누구도 소리내서 말하지 못한 것을 시장이 먼저 평가를 내렸다.
시장의 판단은 8일 오전(뉴욕 시간) 미국이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겨냥해 재차 공격을 가한 뒤 더욱 뚜렷해졌다. 이라크 전황은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됐다. 후세인 대통령의 생사 여부가 시장에서는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중요하다는 건가. 월가의 한 이코노미스트는 이렇게 진단한다.
“초점은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사람들은 이라크 전쟁의 진전 상황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전후의 이라크가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가 말하듯 민주주의로 나갈지, 심각한 분열상을 빚을지, 유엔에서 이 문제를 두고 논란이 벌어질지, 미 정부의 복안은 무엇인지 등 수없이 많다. 이런 상황에선 시장은 좀 쉬었다 가는 형국이 될 것이라고 월가 사람들은 진단한다. 게다가 미국의 전쟁에 큰 불만을 품고 있는 나머지 아랍국가들의 태도나 이번 전쟁에 따라 테러 위협이 되레 커졌을 가능성 등도 전후 불확실성의 이유로 지적한다.
월가에서 중요하게 보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이다. 전쟁 안개가 걷혀가면서 다음주부터 발표될 기업들의 1·4분기(1∼3월) 실적이 투자자들의 관심사다. 일단은 지독하게 나쁜 성적표가 나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500대 기업의 경우 이익이 8.4%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언뜻 보면 높은 것 같지만 에너지 회사의 이익이 무려 172% 증가한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평균 1.8% 증가에 그친다. 인플레율도 따라잡지 못한 셈이다. 2·4분기 6.9%, 3·4분기 13.1%, 4·4분기 22.0%의 이익증가 전망도 미국 경제의 회복을 전제로 한 것이다. 미국 재무부도 전후 미국 경제가 빠른 회복을 보이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7일 큰 폭으로 올랐던 뉴욕주가는 8일 보합세에 머물렀다.
홍권희기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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