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최태원의 '날개와 굴레'

  • 입력 2003년 4월 10일 16시 45분


작년 10월 아시아 지역 세계경제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는 최태원 회장(왼쪽)과 지난달 31일 첫 재판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는 최 회장.동아일보 자료사진
작년 10월 아시아 지역 세계경제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는 최태원 회장(왼쪽)과 지난달 31일 첫 재판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는 최 회장.동아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5월22일 서울대 제2공학관. 200여 좌석을 메운 학생을 대상으로 한 젊은 ‘초빙교수’가 파워포인트 화면을 가리키며 2시간 동안 열정적으로 강의했다.

“우량기업이 되려면 이사회 역할이 강화되는 방식으로 기업 지배구조가 개선돼야 한다.”

“세계적 경쟁력을 갖는 우량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경영시스템과 경영진이 모두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

● 서울대 초빙교수 최태원

서울대 산업기술정책대학원 과정의 공개강의였고 주제는 ‘지식기반사회의 기업경영전략’이었다. 강사는 초빙교수인 최태원 SK㈜ 회장이었다. 대학원생을 상대로 강의해 온 그가 이날 공개강의에 나선 것이다.

수업이 끝난 뒤 서울대 공대 학장은 그에게 감사패를 주며 책의 제목을 빗댄 소개말을 했다. “한국에는 ‘좋은(good) 기업’은 많지만 ‘위대한(great) 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제 이 젊은 총수께서 위대한 기업을 만들어주길 기대한다.”

올 2월 22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지검 청사 1층 로비. 장시간의 검찰 조사를 받은 최 회장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배임혐의가 입증돼 막 구속영장이 떨어졌다. 기자들의 질문에는 무답이었다.

재계 3위 그룹의 후계자인 최 회장의 이 같은 ‘추락’은 서울의 심장부인 종로구 서린동에 버티고 선 SK사옥 25층 집무실과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의 독방의 차이처럼 현기증이 날 정도다.

그를 면회하고 온 이들은 “(최 회장이) 잠을 잘 못 이루고 있다”고 전한다. 1m80에 가까운 체구가 지내기엔 답답한 1평 정도의 방에 갇혀 있어야 하는 데서 오는 육체적 고통 때문만은 아니다.

“‘기업이 사회와 국가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기업인으로 중대한 과오를 범하게 되는 것이라고 늘 말해 왔기에 현재 처지를 수긍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SK 관계자)

새가 평형을 유지하며 날기 위해선 장애물인 공기를 이겨내야 한다. 최 회장에게 ‘2세 경영자’라는 조건은 날개였을까, 굴레였을까.

“재벌 2세 경영인 중 가장 촉망받던 인물이 누구냐”는 설문조사에서 최 회장은 늘 수위를 다퉜다. 최 회장의 개인적 역량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재계 내 SK의 위상에서 비롯된 면이 크다고도 볼 수 있다. SK는 ‘삼성 독주 견제’의 대표주자로 꼽혀왔다. 그리고 SK 성장세의 중심에 최 회장이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손길승 회장이라는 전문경영인과 ‘투톱 체제’를 이뤘지만 무게 중심은 최 회장에게로 이동 중이었다. 그는 SK㈜를 통해 그룹의 변신과 변화를 주도하면서 2세 경영체제를 구축하는 듯했다.

마케팅에 새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 ‘캐시백 서비스’가 그의 작품. 이를 발판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장악하려는 게 최 회장의 계획이었다. 그는 “SK㈜를 종합마케팅기업으로 변신시키고 3조원 규모의 기업가치를 2005년에는 100조원대로 늘리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여러 갈래다. 그러나 그룹 내에선 대체로 미국에서 공부한 탓인지 토론을 통한 합의를 즐기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매주 과장급 직원들과 넥타이를 풀어제치고 캔맥주를 마시며 사업 방향에 대해 토론하는 모습이 그 같은 이미지를 형성했다. 그는 임직원을 직접 설득하기도 했다. 2세 경영인 모임인 ‘브이소사이어티’ 창설을 주도하면서 그는 2세 경영자 사이에서 리더 역할을 했고 세계경제포럼(WEF)은 그를 ‘차세대 지도자 100인’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런 것들이 일반에 비친 최 회장의 이미지였다.

● “다른 길은 선택 할수 없었다”

그러나 단순한 이미지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한꺼풀 벗기고 들어가면 최태원의 숨은 모습이 드러난다. 그것은 ‘특별하게 태어났지만 사실 특별할 것 없는’ 이의 고단한 분투다.

최 회장은 자신의 여러 사업구상을 ‘To-Be’ 모델로 이름붙였다. ‘미래의 수익모델’을 뜻하는 이 말은 햄릿의 운명적인 대사 ‘To Be, Or Not To Be(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를 떠올리게 한다. 아버지를 잘 만나 ‘물려받은 오너’를 넘어 전문경영인이 되고 싶어한 그의 꿈은 우선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선친인 고(故) 최종현 회장은 카리스마적인 경영자였다. 선대인은 직물회사를 굴지의 재벌그룹으로 일궈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 회장은 생전의 아버지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털어놓았다.

“아버지는 왜 사업을 하십니까?”

고 최 회장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숙명이다. 그렇게 살 수밖에 없으니까 하는 것이다.”

최 회장은 아버지의 길을 따라 걷기로 결심했지만 정작 아버지는 ‘친절한 선생님’이 아니었다.

그는 아들이 스스로 답을 찾기를 원했다. 아들이 해답을 구할 때마다 아버지는 말했다.

“네가 생각하고 네가 고민해서 네 실력으로 해결해야지, 그걸 왜 나에게 묻느냐.”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다른 선택이 없는 것이고 이걸 최대한 잘 하는 게 내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선대인의 말을 닮은 최 회장의 말이다.

최 회장은 “경영인이 안 되었으면 교수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사석에서는 좀 더 솔직한 본심을 털어놓았다.

“(대기업 경영하는 게) 내 일이 아닌 것 같다. 그저 근사한 레스토랑 하나 운영하면서 애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살고 싶은데….”

그의 공개강의를 들어본 기자는 그의 말이 무척 빠르다고 생각했다. 빠른 말 속에는 지식과 정보가 많이 담겨 있다. 시카고대 박사과정을 마친 그는 아는 게 많다. 2시간이고 3시간이고 그는 첨단의 경영이론을 동원해 논리적으로 풀어 설명할 수 있다. 게다가 최고경영자로서의 직관과 경험의 무게도 가볍지 않다.

하지만 그 빠른 말은 다소 쫓기는 듯한 초조감을 풍겼다.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자의식의 압박이 심한 때문이 아니었을까.

최 회장은 모든 재산을 SK글로벌 채권단에 담보로 내놓은 상태다. SK글로벌이 제대로 회생하지 못하면 그는 모든 재산을 잃을 수 있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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