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구조조정본부 '흔들'…공정위 "지주회사 전환" 독려

  • 입력 2003년 4월 14일 18시 17분


그룹 구조조정본부 폐지론이 거론되면서 지주회사 시스템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LG그룹의 통합지주회사 (주)LG가 이달 1일 현판식을 갖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사진
그룹 구조조정본부 폐지론이 거론되면서 지주회사 시스템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LG그룹의 통합지주회사 (주)LG가 이달 1일 현판식을 갖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사진
외환위기 이후 삼성 LG SK 한화 등 주요 그룹의 ‘종합 사령부’ 역할을 해온 구조조정본부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특히 최근 지주회사 논의가 정부와 경제계에서 동시에 급속히 진행되면서 과거보다 훨씬 구체화된 변화에 직면해 있다.

▽구조본 문제의 이슈화=구조본은 외환위기 이후 각 그룹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한 ‘한시적’기구로 출발했지만 사실상 그룹 비서실의 업무를 그대로 이어받아 그룹 전반을 관장해온 기구. 그러나 재벌체제에 대한 단골 비판메뉴가 ‘총수의 법적 근거 없는 계열사 경영개입’이었으며, 이를 가능케 했던 조직이 구조본이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올 1월 구성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일부 위원들이 “구조본은 당연히 해체돼야 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시작된 논란은 지난달 말 LG그룹이 지주회사 출범에 발맞춰 ‘구조본 해체’를 전격 선언하고 나서면서 한층 증폭됐다. 여기에 14일에는 강철규(姜哲圭) 공정거래위원장의 발언까지 겹친 것. 재계에서는 강 공정위원장의 14일 발언이 지주회사 체제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첨예한 대립=그러나 LG를 제외한 나머지 기업들은 “여전히 그룹의 전략적 목표를 수립하고 효과적인 투자, 경영감시 등을 위해 구조본 유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

특히 이달 초 청와대에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을 만난 삼성그룹 이건희(李健熙) 회장은 “청와대는 조직, 일, 사람을 분기마다 진단해 조정하기로 했다”는 노 대통령의 말을 받아 “기업에서는 그 일을 구조조정본부가 하며 제너럴일렉트릭(GE)에서는 400명이 그 일만 한다”고 답했다. 구조본의 필요성과 존속의지를 대통령 앞에서 강조한 셈.

사실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지주회사의 요건(최소지분 확보비율이 공개기업 30%, 비공개기업 50%)이 국내 재계의 현실에 비춰 너무 엄격한 것. 이 때문에 재계는 “우선 제도를 수용가능한 수준으로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다.

▽해법은 없나=현 상태에서는 LG그룹 외에 삼성 현대차 등 그룹이 지주회사로 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삼성그룹의 경우 삼성전자 하나만 지주회사에 편입하려 해도 3조5000억원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이들 그룹의 관계자는 “이미 우리도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내부 검토했으나 막대한 추가자금 소요 때문에 포기했다”고 털어놓았다.

이 때문에 지주회사를 고려하는 기업들은 현재 100%로 묶여있는 지주회사의 부채비율을 한시적으로 200∼300%로 높였다가 낮추도록 하는 방안, 공개기업 30%, 비공개기업 50%인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보유 의무비율을 낮추는 방안 등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요건을 함부로 낮출 수도 없다. 계열사와 지주회사를 ‘경제적 동일체’로 보아 각종 혜택을 주는 제도의 취지로 볼 때 현행요건조차 지나치게 느슨하기 때문이다.㈜LG의 강유식(姜庾植) 부회장은 “지분 의무비율을 더 낮추면 사실상 자회사에 대한 지배가 불가능해진다”면서 “이보다는 내년 도입예정인 연결납세제도에서 지주회사가 가진 자회사의 비율 만큼 연결납세를 허용한다면 지주회사 전환을 원하는 기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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