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회장 SK지배 막내린나…글로벌정상화 '암초' 부딪혀

  • 입력 2003년 4월 15일 18시 02분



SK㈜에 대한 인수합병(M&A)이 진행되면서 SK글로벌의 경영정상화가 미궁에 빠졌다. 채권단은 SK글로벌의 경영정상화 조건으로 SK㈜를 비롯한 그룹의 지원을 요청하고 있으나 SK㈜의 최대주주가 크레스트 시큐러티스로 바뀌면서 계열사 지원이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채권단은 SK 계열사의 지원이 없다면 은행만 손해를 감수하면서 SK글로벌을 살릴 이유가 없고 실사 결과에 따라 법정관리 또는 청산도 감수하겠다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자신이 보유했던 전 계열사의 주식을 채권단에 SK글로벌 정상화의 담보로 잡힌 최태원(崔泰源) 회장이 주식을 되찾을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 사실상 최 회장의 그룹 지배가 막을 내리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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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글로벌 지원 어렵다=SK㈜의 최대주주로 떠오른 크레스트의 모(母)회사 소버린 자산운용은 SK㈜측에 “관계사에 대한 부당한 지원은 안 된다”는 뜻을 전달한 바 있다. 소버린은 14일 발표한 성명에서도 “소버린의 목표는 주주가치의 확립”이라고 밝혀 SK㈜의 기업가치를 낮출 수 있는 부실 계열사에 대한 지원에 반대하겠다는 의사를 명백히 했다.

이에 따라 SK글로벌은 15일까지 제출하기로 했던 2차 자구계획안 제출을 연기했다. 소버린측의 입장 표명으로 자구안의 핵심인 SK㈜에 대한 주유소 매각과 대주주 출자 등에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또 외국인 주주와 소액주주들의 관심이 집중돼 있는 SK텔레콤도 이미 공식 논평을 통해 “현행법을 벗어난 지원은 없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소버린은 SK㈜측에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조건으로 ‘이사회 중심의 기업지배구조’를 강조하고 있다. 채권단에 담보로 잡힌 최 회장의 계열사 주식 회복문제는 관심권 밖에 놓여 있는 것이다.

SK㈜ 최태원 회장이 보유한 상장 계열사 지분은 △SK㈜ 0.11% △SKC 7.5% △SK글로벌 3.31% △SK케미칼 6.84% 등 현재 시가로 300억원 상당. SK글로벌에 연대보증했던 금액 2조원에 턱없이 못 미치는 액수다. 게다가 비상장 지분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이뤄지면 금액이 오히려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

▽채권단, “우리만 손해볼 수 없다”=채권단은 SK글로벌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SK㈜가 SK글로벌 소유의 주유소를 제값에 사주고 SK글로벌에 외상으로 준 석유대금 2조원을 회수하지 말고 현행 수준을 유지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채권단 고위관계자는 “SK글로벌은 매출의 70%, 이익의 90%가 SK㈜ SK텔레콤 등 계열사와의 내부거래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 조치가 선행되지 않으면 정상화는 불가능하다”며 “따라서 채권단 지원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채권단은 SK㈜를 압박하기 위해 SK글로벌이 소유한 SK주유소를 다른 정유사에 파는 것과 법정관리 신청을 검토하고 있다. 정유사업은 주유소 판매망이 경쟁력의 핵심이어서 이를 LG 등 다른 정유사에 팔면 매출이 큰 타격을 받게 된다. 또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SK㈜가 갖고 있는 매출채권 2조원의 상당부분을 회수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협상의 여지는 남아있지만 명분에서 채권단의 주장이 그리 힘을 받지 못하고 있어 미래를 낙관하기 힘들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소버린, SK글로벌 지원 반대" ▼

SK㈜의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유정준(兪柾準) 전무는 15일 “최근 SK㈜의 최대주주가 된 크레스트 시큐러티스의 모(母)회사인 소버린자산운용의 관계자가 ‘관계사에 대한 부당한 지원이 없기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고 말했다.

이는 SK글로벌의 채권단이 최대주주인 SK㈜ 등 SK그룹 차원의 자구책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버린이 SK글로벌에 대한 지원을 사실상 반대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유 전무는 이날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빌딩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말했다.

그는 “10일 소버린 관계자와 만났으며 그는 적대적 인수합병(M&A)이나 지분을 무기로 지분을 비싸게 되파는 ‘그린 메일(Greenmail)’의 의도가 없다고 밝혔다”면서 “이사회 중심의 지배구조, 투명경영 등을 통해 회사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소버린의 경영권 참여 요구와 관련, 유 전무는 “아직까지 이사진 파견 요구 등은 없었다”면서 “이사진 선임은 주주의 고유 권한으로 법률과 정관에 따라 이뤄질 일”이라고 말해 소버린측의 요구가 있을 경우 수용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소버린이 SK㈜의 지분 15%를 넘겨 SK텔레콤에 대한 SK㈜의 지배력을 약화시키는 조건으로 그린메일을 요구할 가능성에 대해 유 전무는 가능성이 낮은 일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크레스트가 14.99%로 지분을 맞춘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면서 “SK㈜의 기업가치를 높이겠다는 소버린이 SK텔레콤에 대한 지배권을 약화시켜 득 될 것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 전무는 또 “소버린측이 스스로를 ‘패밀리’ 몇 명이 소유하고 있는 펀드로 외부에서 자금을 빌린 적도 없고 3∼4년 이상 장기투자를 기본 원칙으로 한다고 소개했다”면서 “실제로 국내의 국민은행이나 러시아의 정유업체인 ‘가즈프롬’ 등에 장기투자를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그는 “크레스트나 다른 외국인 주주의 적대적 M&A나 단기차익을 노린 ‘치고 빠지기 투자’에 대한 적절한 대비책은 이미 세워져 있다”면서 “특히 그린메일에는 절대 응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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