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은 SK 계열사의 지원이 없다면 은행만 손해를 감수하면서 SK글로벌을 살릴 이유가 없고 실사 결과에 따라 법정관리 또는 청산도 감수하겠다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자신이 보유했던 전 계열사의 주식을 채권단에 SK글로벌 정상화의 담보로 잡힌 최태원(崔泰源) 회장이 주식을 되찾을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 사실상 최 회장의 그룹 지배가 막을 내리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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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글로벌 지원 어렵다=SK㈜의 최대주주로 떠오른 크레스트의 모(母)회사 소버린 자산운용은 SK㈜측에 “관계사에 대한 부당한 지원은 안 된다”는 뜻을 전달한 바 있다. 소버린은 14일 발표한 성명에서도 “소버린의 목표는 주주가치의 확립”이라고 밝혀 SK㈜의 기업가치를 낮출 수 있는 부실 계열사에 대한 지원에 반대하겠다는 의사를 명백히 했다.
이에 따라 SK글로벌은 15일까지 제출하기로 했던 2차 자구계획안 제출을 연기했다. 소버린측의 입장 표명으로 자구안의 핵심인 SK㈜에 대한 주유소 매각과 대주주 출자 등에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또 외국인 주주와 소액주주들의 관심이 집중돼 있는 SK텔레콤도 이미 공식 논평을 통해 “현행법을 벗어난 지원은 없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소버린은 SK㈜측에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조건으로 ‘이사회 중심의 기업지배구조’를 강조하고 있다. 채권단에 담보로 잡힌 최 회장의 계열사 주식 회복문제는 관심권 밖에 놓여 있는 것이다.
SK㈜ 최태원 회장이 보유한 상장 계열사 지분은 △SK㈜ 0.11% △SKC 7.5% △SK글로벌 3.31% △SK케미칼 6.84% 등 현재 시가로 300억원 상당. SK글로벌에 연대보증했던 금액 2조원에 턱없이 못 미치는 액수다. 게다가 비상장 지분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이뤄지면 금액이 오히려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
▽채권단, “우리만 손해볼 수 없다”=채권단은 SK글로벌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SK㈜가 SK글로벌 소유의 주유소를 제값에 사주고 SK글로벌에 외상으로 준 석유대금 2조원을 회수하지 말고 현행 수준을 유지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채권단 고위관계자는 “SK글로벌은 매출의 70%, 이익의 90%가 SK㈜ SK텔레콤 등 계열사와의 내부거래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 조치가 선행되지 않으면 정상화는 불가능하다”며 “따라서 채권단 지원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채권단은 SK㈜를 압박하기 위해 SK글로벌이 소유한 SK주유소를 다른 정유사에 파는 것과 법정관리 신청을 검토하고 있다. 정유사업은 주유소 판매망이 경쟁력의 핵심이어서 이를 LG 등 다른 정유사에 팔면 매출이 큰 타격을 받게 된다. 또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SK㈜가 갖고 있는 매출채권 2조원의 상당부분을 회수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협상의 여지는 남아있지만 명분에서 채권단의 주장이 그리 힘을 받지 못하고 있어 미래를 낙관하기 힘들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소버린, SK글로벌 지원 반대" ▼
SK㈜의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유정준(兪柾準) 전무는 15일 “최근 SK㈜의 최대주주가 된 크레스트 시큐러티스의 모(母)회사인 소버린자산운용의 관계자가 ‘관계사에 대한 부당한 지원이 없기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고 말했다.
이는 SK글로벌의 채권단이 최대주주인 SK㈜ 등 SK그룹 차원의 자구책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버린이 SK글로벌에 대한 지원을 사실상 반대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유 전무는 이날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빌딩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말했다.
그는 “10일 소버린 관계자와 만났으며 그는 적대적 인수합병(M&A)이나 지분을 무기로 지분을 비싸게 되파는 ‘그린 메일(Greenmail)’의 의도가 없다고 밝혔다”면서 “이사회 중심의 지배구조, 투명경영 등을 통해 회사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소버린의 경영권 참여 요구와 관련, 유 전무는 “아직까지 이사진 파견 요구 등은 없었다”면서 “이사진 선임은 주주의 고유 권한으로 법률과 정관에 따라 이뤄질 일”이라고 말해 소버린측의 요구가 있을 경우 수용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소버린이 SK㈜의 지분 15%를 넘겨 SK텔레콤에 대한 SK㈜의 지배력을 약화시키는 조건으로 그린메일을 요구할 가능성에 대해 유 전무는 가능성이 낮은 일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크레스트가 14.99%로 지분을 맞춘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면서 “SK㈜의 기업가치를 높이겠다는 소버린이 SK텔레콤에 대한 지배권을 약화시켜 득 될 것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 전무는 또 “소버린측이 스스로를 ‘패밀리’ 몇 명이 소유하고 있는 펀드로 외부에서 자금을 빌린 적도 없고 3∼4년 이상 장기투자를 기본 원칙으로 한다고 소개했다”면서 “실제로 국내의 국민은행이나 러시아의 정유업체인 ‘가즈프롬’ 등에 장기투자를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그는 “크레스트나 다른 외국인 주주의 적대적 M&A나 단기차익을 노린 ‘치고 빠지기 투자’에 대한 적절한 대비책은 이미 세워져 있다”면서 “특히 그린메일에는 절대 응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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