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금리시대]<3>재테크의 패러다임 시프트

  • 입력 2003년 4월 16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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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사는 김모씨(39)는 2001년 남편과 사별하고 유산과 보험금 등 7억원을 물려받았다. 쉽게 쓸 수 있는 돈이 아니었던데다 특별히 운용할 곳도 없어 은행을 찾았다.

외환위기와 같은 사태가 터지더라도 예금자보호를 받기 위해 한 은행에 4500만원씩 15개 은행의 정기예금에 분산 예치한 뒤 이자를 받아 생활해 왔다. 금리는 평균 연 4.5% 수준.

2002년 12월. 한 은행의 담당 직원이 “예금 이자가 낮아 손님께 늘 미안했는데 연 5.4%의 이자가 붙는 상품이 나왔다”며 이 상품에 들 것을 권했다.

거래하는 은행이 추천한 데다 예금보다 나은 확정 금리를 준다는 말에 별 생각 없이 쉽게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2003년 3월. SK글로벌에 이어 카드회사에 문제가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서야 “우량 카드회사에 투자한다”는 직원의 말이 떠올랐다.

확인 결과 상품은 실적배당형인 특정금전신탁이었고 한 카드회사의 기업어음(CP) 한 종목에 1억원이 집중 투자돼 있었다. 화들짝 놀란 김씨는 사정사정해서 겨우 1억원을 찾을 수 있었다. 김씨는 아직 특정금전신탁이 무엇인지, 또 CP가 뭔지 잘 모른다.

▽왜 패러다임 변화인가=김씨는 초저금리 시대를 맞아 투자 변신을 요구받는 우리시대 예금자의 전형이다. 김씨는 우선 저축에서 투자 중심으로 자산운용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대적 변화에 동참했다.

강창희 PCA투신운용 투자문화연구소장은 “한 나라의 여유자금 운용수단이 달라지는 원인은 소득수준과 금리수준”이라고 말했다.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돈을 원본이 보장되는 예금 등 안정상품에 넣어둔다. 그러다 여윳돈이 많아질수록 위험을 감수한 투자상품에도 돈을 넣게 된다.

은행에 맡기기만 하면 두 자릿수 이상의 금리를 얻을 수 있는데 굳이 위험한 곳에 투자를 할 필요가 없다.

강 소장은 “가계 여유자금이 늘어나고 초저금리가 계속되면서 한국에서도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9일 현재 금융시장의 부동(浮動)자금은 387조원. 3월 중 저축성예금 금리는 평균 4.29%로 떨어져 물가성장률을 감안한 금리는 마이너스다.

▽새 패러다임의 원칙들=김씨는 그러나 충분한 준비를 하지 않고 투자에 뛰어들었다가 애를 먹게 됐다.

천동설이 지배적 패러다임이던 세상과 지동설 이후의 세계는 기본적인 원칙이 다르다. 이는 저축의 시대와 투자의 시대도 마찬가지다. 우선 원칙을 알아야 살아남는다.

저축의 사전적인 의미는 ‘아껴서 모으다’이다. 투자는 ‘가능성을 믿고 자금을 쏟아 넣다’이다. ‘시간’ ‘위험’ ‘수익’이라는 투자의 3요소에서 세 가지 원칙이 나온다.

하나, 곧 써야 할 돈, 원금을 잃으면 안 되는 돈은 저축하고 오래 묻어둘 수 있는 돈, 단기적인 시장 상황 변동을 견딜 수 있는 돈은 투자한다.(시간)

둘, 기대 수익이 높을수록 위험도 높다. 김씨는 CP가 금리를 많이 주는 줄만 알았지 회사가 부도나거나 CP가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을 위험을 몰랐던 것.(위험과 수익)

셋, 저축의 시대에서 위험 부담은 은행과 국가가 진다. 은행이 파산해도 예금자는 보호받는다. 반면 투자의 시대에서 위험 부담은 투자자가 진다.(위험 부담 주체)

결국 투자 성공 여부는 기대수익에 수반되는 위험을 얼마나 잘 통제하는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기투자와 분산투자가 강조되는 이유다.

▽새 패러다임과 친해지기=전문가들은 현명한 투자가가 되기 위해서는 연구하는 자세와 경험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개인투자자 이모씨(34)는 주식 투자를 하면서 한 종목을 10주 미만 단위로 사고파는 ‘단주투자’를 한다. 10주 미만의 단주는 증시가 끝난 뒤 하루에 한 번 사고 팔 수 있다. 분위기에 휩쓸린 매매를 피할 수 있고 내일을 내다보며 경제 공부를 하는 효과를 거둔다.

부동산에도 관심을 돌려야 한다. 김영진 내집마련정보사 사장은 “과거처럼 양도차익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금리보다 높은 임대수익률을 내는 상가나 주택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수익증권 등을 통해 주식 채권 부동산 해외자산 등 위험자산에 간접투자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 그러나 간접투자에도 물론 위험이 따른다.

우재룡 한국펀드평가 사장은 “펀드에 가입할 때에는 최근 3년 동안 펀드의 수익률과 회사의 운용철학, 운용인력의 자질 등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투자자교육’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주요 기관들의 투자자 교육 내용
기관대상내용교육방법신청 및 문의
투자신탁협회기업 기관 등 단체
(개인교육 없음)
평생재무설계 및
자산관리 방법
무료 강사 파견02-2122-0163,6
www.kitca.or.kr
증권업협회20명 이상의 개인이나 단체증권과 투자에 관해
원하는 내용
무료 강사 파견02-2003-9323
www.ksda.or.kr
증권거래소일반투자자투자방법 및 증시정보
제공
월 1회
공개 강좌
02-3774-9248
www.kse.or.kr
금융감독원
소비자교육실
교직원 및 구청 직원과 구민자산관리 재테크
투자유의사항 등
무료 강사 파견일반인 및 단체 신청은 받지 않음
한국개발연구원
경제교육실
교직원 및 공무원경제 현상 전반연수 교육일반인 및 단체 신청은 받지 않음
자료:각 기관

▼'투자의 시대' 전환…美는 성공 日은 실패▼


선진국이면서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 노후생활 대비를 위한 장기투자가 활발할 것 같지만 일본의 투자문화는 사실상 ‘실패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적인 근거는 일본 가계 금융자산의 55%를 차지하는 은행 예금. 명목 금리가 0.6%대의 바닥인 점을 고려하면 개인투자자의 절반 이상은 투자 수익을 포기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미국은 55%가 주식 등 투자상품에 들어가 있다. 30%에 이르는 변액보험과 연금 등도 주식시장에 재투자된다. ‘투자의 시대’로 연착륙한 대표적인 국가다.

대표적인 두 선진국의 개인 자금운용 방법이 이처럼 극과 극인 이유는 무엇일까.

▽본받지 말아야 할 일본의 투자문화〓전문가들은 일본이 투자를 하는 데 있어 부동산에 지나치게 의존한 것이 큰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부동산 신화에 들뜬 투자자들이 금융시장을 외면한 결과 주식시장과 투자마인드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다는 것.

이 상태에서 부동산 거품은 꺼지기 시작했고 갈 곳을 잃은 돈은 예금상품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자금이 노년층의 손에 묶여있는 것도 문제. 최고령화 사회에서 90세 아버지가 사망하면 그 배우자나 60세 아들이 유산을 상속받는 식이다. 이들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투자를 꺼리기 때문에 돈이 주식시장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투자의 시대’로 연착륙한 미국〓미국은 1970년대 베트남전쟁 이후 장기 불황과 ‘바닥 금리’라는 현실에 직면했다.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401(K)’라고 불리는 투자형 기업연금을 도입하고 세금 혜택 등을 통해 제도적으로 이를 뒷받침했다.

연금이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었고 새로운 투자회사와 각종 상품, 판매 채널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증시는 기지개를 켰다. 위험을 감수한 투자금은 정보기술(IT)산업 등 신흥시장에도 기꺼이 들어가 경제 성장을 도왔다.

여기에 투자교육이 꾸준히 이뤄지면서 미국인들은 최소 20∼30년을 바라보는 장기투자에 익숙해졌다.

▽뒤늦게 변신하는 유럽의 투자〓‘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구호 아래 연금에 의존해온 유럽도 이제는 미국식 투자로 옮겨가고 있다.

70년대 이후의 경기 침체와 함께 정부가 복지에서 손을 떼면서 ‘투자를 통해 스스로 노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90년대 초반 5억유로에도 못 미쳤던 유럽의 투자신탁 자금은 2000년 말 4조5000억유로까지 늘었다. 벨기에 핀란드 이탈리아 등에서는 국민의 45% 이상이 증권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PCA투신운용 강창희 투자교육연구소장은 “주식시장 위주의 미국 투자 문화가 반드시 옳다는 것은 아니다”며 “중요한 것은 리스크를 떠안는 투자의 개념을 명확히 알고 스스로 노후를 대비해 장기투자를 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72법칙'이란▼

돈을 어떻게 모으고 굴릴지 결정할 때 ‘72법칙’을 알아두면 도움이 된다.

72법칙은 돈을 은행이나 투자신탁에 맡겼을 때 그 돈이 2배로 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를 알려주는 계산법칙. 수학자들이 원리금 계산공식인 P=A(1+r)ⁿ에서 A를 1만원, P를 2만원으로 놓은 뒤 r와 n을 달리하면서 계산해 본 결과, 72를 적용되는 금리로 나누면 그 기간이 나온다는 법칙을 만들어냈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연 4.3%짜리 정기예금에 맡기면 2000만원이 되는 데 16.7년(72÷4.3) 걸린다. 금리가 4%이면 18년이 걸리고 5%이면 14.4년이 걸린다.

이 법칙은 특정기간 안에 돈을 2배로 불리려면 금리가 얼마나 돼야 하는지도 알 수 있게 한다. 1억원을 10년 후에 2억원으로 만들려면 연 7.2%(72÷10)의 이자를 받아야 한다. 15년 만에 2배로 불리려면 4.8% 금리로 충분하다.

72법칙은 물가가 올라 똑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 줄어드는 현실세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연간 물가상승률이 3%라면 24년(72÷3) 뒤에는 구매력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24년 후에 지금과 같은 생활수준을 유지하려면 돈이 현재보다 2배는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법칙은 재테크를 할 때 물가상승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예금이나 보험(자산운용 성과에 따라 지급금액이 달라지는 변액보험은 제외) 및 연금(국민연금 등)은 모두 물가상승에 따른 자산가치 하락 위험에 노출돼 있다.

구매력 하락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해야 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홍찬선기자 hcs@donga.com

▼마이너스 금리 시대-제Ⅰ부 시리즈 순서▼

1. 불안한 노후생활(4월3일)

2. 라이프 사이클 재테크 시대(4월10일)

3. 재테크의 패러다임 시프트

4. 원금보전형 상품, 꼼꼼히 따져야

5. 해외투자펀드, 허와 실

6. 세금을 알면 재테크가 풀린다

7. 따뜻한 노후맞이 전략

8. 부동산도 간접투자

9. 자산획득 전쟁의 틈새 공략하기

10. 맞춤형 재테크

이 시리즈는 Ⅰ부에 이어 Ⅱ, Ⅲ부가 계속되며 매주 목요일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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