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노블리안스]박용/꿈틀거리는 헝가리의 저력

  • 입력 2003년 4월 20일 18시 26분


영화 ‘글루미 선데이’를 보셨나요. 이 영화를 보고 세계적으로 자살한 사람이 속출해 화제가 됐죠. 이 영화의 무대가 바로 헝가리입니다.

헝가리는 한국인에게 1956년 부다페스트에서 일어난 ‘반소(反蘇)항쟁’으로도 유명한데요. 최근 우울한 공산국가의 이미지를 벗고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이를 ‘다뉴브강의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최근엔 국민투표를 거쳐 유럽연합(EU)에 가입했습니다.

헝가리 경제가 발전하면서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대형 유통업체가 속속 진출하고 있는데요. 얼마 전 헝가리 부다페스트 교외 부카르요시 지역의 영국계 할인점 테스코 엑스트라 매장을 가봤습니다. 한국 할인점과 비슷한 수준인 3만여종의 상품이 진열대에 빼곡히 쌓여 있었습니다. 경품으로 한국 현대자동차의 소형 승용차를 내걸고 한국에서는 금지된 무료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더군요.

사실 헝가리는 간단치 않은 나라입니다. 인구는 1000만명이지만 노벨상 수상자는 13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헝가리계 수상자까지 합하면 무려 29명이 이 상을 받았다고 하네요. 세계 최초로 전신국을 세웠고 유럽 대륙에서 처음으로 지하철을 건설했다고 합니다.

헝가리에서 10년 이상 살고 있는 한 교민은 “자유화 이후 1956년 반소항쟁 당시 피해자에게 국가가 보상을 제의했지만 ‘당시의 아픔은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다’며 모두 거부했다”는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그는 헝가리인의 저력은 평범한 학생을 영재로 만드는 교육제도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5∼6세부터 무료로 영재교육을 받을 수 있는데 영재성이 있는 학생을 선발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적성만 맞으면 분야별로 영재교육을 받는다고 합니다.

암기보다 창의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피아노를 배울 때 악보 읽는 법보다 타악기를 가지고 놀며 박자 감각부터 익힌다고 합니다. 남보다 빨리 글을 배우고 책을 떼야 똑똑한 아이로 생각하는 한국 부모들이 처음에 무척 당황한다고 하네요.

헝가리 교육제도에 당황하는 한국인의 모습은 ‘한강의 기적’은 일궈내고도 노벨상 수상자를 1명밖에 내지 못한 한국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요.

박용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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