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원격진료시대가 열린다

  • 입력 2003년 4월 20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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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벽에 걸린 대형 모니터 앞에 선 A씨. 팔뚝에 혈압계를 찬 채 모니터를 향해 열심히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다. 모니터 안에는 그의 주치의가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듣고 있다. A씨의 얘기가 끝나자 주치의는 고혈압이 의심된다며 병원에 한 번 들를 것을 권했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나옴직한 장면으로 여기겠지만 한국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재택(在宅) 원격진료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는 것.》

의료정보 전문회사인 ‘버추얼엠디’의 윤대현 부사장(소아정신과 전문의)은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상상에 그쳤던 일들이 현실로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의료시장도 의사가 환자를 직접 만나는 ‘면대면(面對面)’ 진료 중심에서 원격진료로 영역이 급속도로 확대될 것이라는 다소 성급한 기대까지 나오고 있다.

▽본격화되는 원격진료서비스=재택진료의 핵심은 원격의료(Telemedicine) 기술이 얼마나 가능한지 여부다. 이는 의사가 하는 5가지 진찰방법(문진 시진 촉진 타진 청진) 가운데 3가지 이상을 온라인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현재 온라인에서 가능한 것은 문진 시진 청진 등 3가지. 의사는 원격 혈압계와 체온계, 청진기 확대경 등을 이용해 환자의 몸 상태를 판단하고 처방전을 발급한다.

한국 원격진료의 ‘원조(元祖)’는 서울대병원. 1995년 경기 분당신도시에 있는 한국통신(현 KT)에 원격진료기기를 설치하면서 시작했다. 이후 서울대 관악캠퍼스 등으로 대상을 넓혀갔고 현재는 일반주택을 대상으로 시범 서비스 중이다.

서울 강남구청이 이달 15일부터 수서동과 일원 2동에서 시행하는 원격진료는 시범 단계를 거쳐 정식 운영에 들어간 것이어서 눈여겨볼 만하다. 동사무소 등에 원격진료 장비가 설치돼 장애인과 노인 등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병원을 찾지 않아도 보건소 전문의의 진찰과 처방전을 발급받을 수 있다.

강남구청 보건소의 이병철 원격진료 담당은 “법무부에서 재소자의 건강관리를 위해 원격진료에 대한 조언을 부탁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고 말했다.

▽재택진료 아파트의 등장=원격진료 시스템을 갖춘 아파트도 점차 늘고 있다.

대림산업이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에 짓는 ‘대림 e-편한세상’ 1∼7차(4224가구) 단지가 대표적이다. 99년 입주를 시작, 2004년에 완료될 이 아파트는 입주자가 공동으로 이용하는 정보문화관에 혈당과 혈압, 체지방 등을 측정하는 원격진료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컴퓨터 분석 결과 이상 징후가 감지되면 해당자와 가족, 인근 병원의 ‘고객 주치의’에게 알려주는 첨단 시스템이다.

대림은 이 같은 첨단진료시스템을 경기 안산시 호수마을과 동대문구 이문동의 ‘e-편한세상’ 단지(5월 입주 예정)에도 제공할 계획이다.

대우건설도 지난해 11월 완공한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대우 그랜드월드’ 단지에 심전도와 맥박, 산소포화도 등을 측정하는 진료시스템을 설치했다. 회사측은 “입주자에게 실시간으로 진료 지원을 하기 위해 이대목동병원 등과 진료협약을 맺기 위해 접촉 중”이라고 밝혔다.


최근에는 설계 때부터 재택진료를 도입한 주택도 나타나고 있다.

대우건설이 연세대 밀레니엄환경연구소와 공동으로 개발한 ‘미래 건강주택’은 차세대 재택진료 아파트. 원격진료는 물론 환자와 재활과 치료활동을 돕기 위해 문턱을 모두 없애고 천장에 환자 이동용 호이스트(hoist) 등을 설치한 게 특징. 이르면 올 하반기부터 분양 상품으로 선보일 전망이다.

▽앞으로의 전망=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유태우 교수는 “당뇨병과 고혈압 등 만성 질환자가 증가하는 현실에 비춰볼 때 재택진료 수요는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만성 질환자의 상당수가 특별한 증세의 변화가 없어도 처방전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고 있지만 재택진료는 이 같은 불편을 줄여주기 때문이라는 것.

또 외딴 섬이나 산골 등 의료 취약지역의 주민에게 충실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재택진료나 원격진료서비스가 활성화되기 위해선 △원격진료 장비의 기술 인증 문제 △진료기록의 보안 △의료보험수가의 허용 범위 등 선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보건복지부는 이와 관련, 지난해 3월 의료법을 개정하고 현재 원격진료에 관한 세부 시행 규칙을 마련 중이다.

차지완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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