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비업체 직원 30여명은 서울역 한쪽에 도시락과 잠자리를 마련해 놓고 ‘노숙자 모시기’에 나섰다.
“주무시는데 죄송합니다, 곧 광고 촬영이 있어서요….”
‘레디∼, 액션!’
한 개의 무게가 60㎏에 달하는 1000와트짜리 전구 5개가 역사(驛舍) 내부를 오후 2시처럼 비추고 엑스트라 20여명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행인 1∼20’을 연기하기 시작. 이때 밝은 표정으로 도착한 아빠와 아들이 배낭을 메고 기차에 오르기 위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3월 20일 방송을 타기 시작한 ‘함께 가요, 희망으로’편은 이날 아버지와 아들이 대합실을 떠나는 서울역 촬영에 이어 승강장을 향해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청량리역), 새마을호 기차가 출발하는 모습(춘천역)까지 3개 기차역을 돌며 불과 7일 만에 찍어냈다.
그러나 “담당자들은 10개월간 밤잠을 설쳤다”는 게 제일기획 이유신 제작국장(사진)의 설명.
삼성그룹은 이미지 광고에 메시지를 담는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할 수 있다는 믿음”이라는 카피로 시대상을 반영했고, 1999∼2000년 광고에서는 본격적인 정보기술(IT) 시대를 맞아 “디지털 프런티어”를 강조했다. 경기 불안 속에서 월드컵이 열린 작년에는 “기대하세요, 좋은 소식”을 외쳤다.
2003년의 화두를 잡기 위해 제작진은 삼성생명 삼성증권 삼성전자 등에서 발간한 1만 페이지 분량의 내부용 보고서를 외우다시피 했다. 세상이 바뀐 상황. 삼성은 소비자와 함께 ‘참여’한다는 메시지를 정하기로 결론 내리고 제작진은 광고기획안을 만들기 시작했다.
2월 17일, ‘함께 가요, 희망으로’ 안이 OK받을 때까지 제일기획이 내놓은 기획안은 10개월간 10차례 퇴짜 맞았다. 삼성의 실적을 내세우는 광고안은 모두 휴지통에 처박혔고, ‘겸손하게 감성에 호소하라’는 주문에 부합한 ‘함께 가요…’ 편만 살아남았다. 이 광고 시리즈는 △나눔 △경제 △인재 △희망 편 등으로 주제를 달리해 올 연말까지 매체를 탄다. 경기가 불안한 상황임에도 삼성은 광고 예산을 작년보다 50% 늘려 집행하고 있다.
이 국장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광고에 메시지를 담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다”며 “안팎으로 불안한 상황이지만 편안하게 광고를 보면서 사람들이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나성엽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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