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라크전쟁이 조기에 종결됐으나 북핵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고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도 가늠하기 어려워 한국경제의 전망은 더욱 불투명한 상황이다.
김종석(金鍾奭)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의 경기 침체는 경기순환의 과정이나 해외변수 때문만이 아니다”면서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이 떨어지는 등 내부의 구조적 문제일 가능성이 큰 만큼 기업에 부담을 주는 정책들에 대해서는 재고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경상수지 적자행진, 언제까지 이어지나=3월 중 경상수지 적자가 외환위기 이후 최대 폭인 11억9000만달러에 이른 주원인은 이라크전쟁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 때문. 지난해 배럴당 25달러대에 머물던 두바이산 기준 국제유가는 이라크전쟁으로 올 들어 30달러대를 나타냈다. 한국의 연간 원유수입물량은 8억배럴. 국제유가상승으로 연간 40억달러의 적자요인이 발생한 셈이다.
이인규(李仁揆) 한국은행 국제수지통계팀 차장은 “국제유가가 최근 들어 배럴당 25달러대로 하락한 데다 서비스 수지도 개선되는 모습이어서 경상수지가 5월부터 다시 흑자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한은의 낙관론과는 달리 사스와 북핵 문제 등 경상수지를 위협하는 요인들이 만만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스로 아시아 경제 침체가 장기화될 경우 수출 감소 등으로 경상수지 악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경상수지 적자의 주범 중 하나인 서비스수지는 3월 중 5억달러 적자에 그쳐 전월의 8억9000만달러에 비해 적자폭이 크게 줄었다. 여행수지 적자는 사스 확산 등으로 출국자가 크게 감소하면서 3월 중 3억1000만달러로 전월보다 1000만달러 떨어졌다.
▽생산 실물지표들도 바닥=통계청이 발표한 3월 중 산업활동 동향은 ‘생산은 증가세 둔화, 소비는 계속 부진, 설비투자는 다소 회복’으로 요약된다.
생산지표 가운데 중화학부문은 지난해 3월에 비해 7.6% 증가했으나 의류 등 경공업은 6.0% 감소해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의 사정이 더욱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경제가 최대 얼마나 생산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산능력’ 지수가 계속 낮아지고 있어 구조적인 대책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3월 중 생산능력지수는 2.3으로 지난해 연평균 3.2보다 크게 낮아졌고 전월인 2월의 2.4에 비해서도 더 떨어진 것.
이들 지표를 종합한 경기선행 및 동행지수가 모두 마이너스여서 당분간 경기침체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다만 설비투자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0.2% 늘어 그나마 위안이 됐다.
▽현장경기는 통계수치보다 더 나빠=주요 백화점들은 이달 초 봄 정기세일 때 예상외로 고객이 들지 않아 지난해에 비해 마이너스 매출신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홈쇼핑업체 주요 5개사도 올 1·4분기(1∼3월) 매출이 직전 분기인 지난해 4·4분기(10∼12월)에 비해 감소했다. 홈쇼핑업계의 매출이 줄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재래시장은 상황이 더욱 좋지 않다. 흔히 있는 상인들의 ‘엄살’로 넘기기에는 심각한 수준이다. 서울 동대문시장의 체육복 전문업체 진어패럴의 박근재 사장은 “체육복은 4월이 대목인데 단체주문이 단 2건밖에 안 된다”며 “값을 내려도 손님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수요가 없으니 물건을 만드는 공장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기 안산시 시화공단에서 포장 박스를 생산하는 형제포장의 이순이 사장은 “지난해 이맘때보다 물량이 3분의 1 이상 준 데다 결제도 제때 안돼 자금 회전이 안 된다”면서 “최근 직원을 11명에서 8명으로 줄였다”고 하소연했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
임규진기자 mhjh22@donga.com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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