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이 한국기업 지배구조의 변화를 차관공여 조건으로 내걸었던 것. 당시 IMF의 차관공여를 지휘했던 스탠리 피셔 전 IMF 부총재는 2002년 초 영국 런던정경대학(LSE) 강연에서 “다른 나라의 경우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IMF의 차관공여 조건은 주로 금융기관 구조조정에 초점이 맞춰졌던 반면 한국의 경우 거의 유일하게 기업지배구조의 변화가 공여 조건에 포함되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우리의 문제’로=이러한 특이성 때문에 기업지배구조개선과 한국의 재벌 해체는 월가가 주도한 것이라는 ‘음모론’도 제기되었다. ‘강요된 개선’이었던 셈. 그러나 재벌 오너의 황제경영과 잘못된 전략 판단이 과도한 설비투자와 비합리적 신규 투자를 낳았고 이것이 외환위기의 원인 중 하나였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지배구조의 개선은 대세로 자리 잡았다.
특히 99년 대우그룹의 22조원대의 분식회계와 경영진에 대한 형사소추, 소액주주 운동 등이 겹치면서 더욱 힘을 얻었다. 최근 벌어진 SK글로벌의 지분편법거래와 분식회계사건도 지배구조 개선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2001년 터진 미국의 엔론 사건은 지배구조에 대한 관심을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켰다. 한국에서 ‘총수의 전횡’이 문제라면 미국에서는 ‘최고경영자(CEO)의 전횡’이 문제가 됐던 것. 즉 한국에서 핵심적인 논란이 ‘경영제국건설과 기업이익의 비정상적 사외 유출’이라면 미국에서는 ‘분식회계 및 경영자 과다 연봉’이었던 것. 어쨌거나 최대 공약수는 ‘주주의 권리찾기’다.
▽앞으로의 과제=초기의 기업지배구조 개선의 방향이 기업의 자본대비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낮추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대우그룹 분식회계와 SK글로벌 사태로 투명한 기업회계가 다시 한 번 초점으로 떠올랐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조만간 도입될 예정인 주주집단소송제. 전광선 중앙대 교수(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지원센터 원장)는 “이는 대주주와 경영진이 경영책임에 대한 배상책임을 사실상 모든 주주에게 져야한다는 점 때문에 지배구조 문화 자체를 바꿀 혁명적 실험이 될 것”이라며 “정부도 총액출자제한 등 규제에 매달리기보다는 집단소송제를 전면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CLSA의 평가기준=CLSA는 기업이 7가지 핵심 가치를 얼마나 잘 준수하느냐에 따라 기업지배구조를 평가한다. 규율(가치극대화 경영)과 투명성, 이사회 독립성, 경영진의 이사회에 대한 설명 책임, 경영에 대한 경영진의 책임, 공정성 및 사회적 책임 등이 그것이다.
▼CLSA가 제시한 기업지배구조 7대 핵심가치 ▼
① 규율(경영자 인센티브, 가치극대화 경영)
② 투명성(공시)
③ 이사회 독립성
④ 이사회의 CEO에 대한 책임추궁 가능성
⑤ 경영책임
⑥ 모든 주주에 대한 공정성
⑦ 사회적 책임
김용기기자 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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