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한발만 물러나보자. 이번 세일이 정상궤도에서 비켜나 있다는 것을 쉽게 읽을 수 있다.
백화점은 연중 4번의 정기세일(1, 4, 7, 10월)을 실시한다. 제철에 팔다가 남은 재고상품을 처분하기 위해서다. 이번처럼 열리는 브랜드 세일은 보통 정기세일 1주일 전에 열리는 ‘바람잡이’ 세일이다.
그런데 올해는 제철이 채 지나기도 전에 브랜드 세일이 시작됐다. 세일을 기피하던 여성 의류업체까지 가세했다. 브랜드의 세일 참여율은 50∼60% 정도에 이를 정도로 대규모다.
한참 여름 상품을 팔아야 하는 의류업체들은 전체 세일 품목의 20∼30% 정도를 여름 신상품으로 채우고 있다. 정기세일을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로 경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소비 심리 위축으로 의류 매출이 저조해지자 의류업체들이 세일 행사를 열어달라고 요구했다”며 사정을 설명했다. 여기에는 값을 깎아서라도 움츠러든 소비를 되살리려는 백화점측의 이해관계도 얽혀 있을 것이다.
소비심리 위축 탓에 세일을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재고 상품이 아니라 제철에 신상품까지 세일을 할 정도라면 상황이 다르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가 전국 2500가구를 대상으로 의류구입 실태를 조사한 결과 지난해 정상 가격으로 의류를 구입한 가구는 전체의 46.4%에 불과했다. 의류 정상가격 구입 비율은 99년 이후 50%를 넘은 적이 없다. 정상 판매가로 팔리는 의류보다 세일 등 할인가격으로 팔리는 의류가 더 많았다는 소리다.
이 때문에 고가(高價) 브랜드를 표방하며 가격을 높게 매긴 뒤 매출이 시원치 않으면 세일에 의존하는 의류업계의 잘못된 관행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식이라면 요즘처럼 소비가 위축될 때 당연히 정상 판매가 줄고 세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진정한 고급 브랜드는 부풀려진 가격이 아니라 엄격한 품질과 재고 관리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점을 한번쯤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박용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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