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제는 현 정부 출범 후 특히 관심을 끌었다. 노 대통령의 반(反)주류-비(非)주류적 행태 때문이었다. 그가 보여 온 인식은 한미관계 재정립과 사회적 평등의 강조로 압축된다.
‘큰 것은 악, 작은 것은 선’의 논리는 원초적 감정에 대한 호소력을 지닌다. 이것이 선거라는 시기적 변수와 맞물려 극대화됐다. ‘안전과 식량 보장’ 측면에서 국익과 경쟁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잠시 잊혀졌다.
이제 파티는 끝났다. 휘황찬란한 불빛은 꺼졌다. 기다리는 것은 차가운 현실이다. 누구보다 취임 3개월을 앞둔 노 대통령이 절감하고 있을 것이다.
열병처럼 불어 닥친 반미와 자주 구호의 코스트(비용)는 컸다. 노 대통령은 이번 방미에서 유난히 ‘낮은 자세와 친근감’을 나타낼 수밖에 없었다.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을 잊고 ‘변경(邊境)과 제국(帝國)’의 동맹관계를 너무 감상적으로 접근한 데 따른 쓰라린 수업료였다.
한때 ‘뗏목론’이 화제가 됐다. 강을 건넜으면 타고 왔던 뗏목은 버리고 가야 한다는 말이다. 지도자가 지지세력이나 공약에 얽매여 국정을 그르쳐서는 안 된다는 뜻이 들어 있다.
노 대통령은 안보분야에서 일단 뗏목을 버렸다. 일부 지지층의 반발과 이탈을 감수하고 내린 고뇌에 찬 결정으로 이해한다.
눈길은 경제로 쏠린다. 어려움을 일일이 설명하는 것은 생략하자. 하지만 정말 무서운 것은 ‘경제하려는 심리’가 얼어붙은 것이다. 기업인은 물론 많은 경제관료도 사석에서는 동의한다.
불쑥불쑥 터져 나오는 기업의 비리는 우리 사회의 고민거리다. 하지만 짧은 자본주의 역사와 부족한 민족자본의 한계 속에서 한국 기업이 이룩한 성취와 그에 따른 우리 삶과 국가위상 향상도 한번은 생각해보자. 역사적 산물의 측면도 있는 ‘흠과 때’를 들어 도매금으로 매도하는 사회에서 시장경제의 활력을 가능케 하는 기업가 정신이 살아나기는 어렵다.
노동정책도 그렇다. 글로벌화와 정보화, 무한경쟁과 사회주의 몰락으로 노조 영향력은 세계적으로 격감하고 있다. 가치판단과 별개로 한 나라 경제가 살아남으려면 거스르기 힘든 대세다. 선진국보다도 ‘전투적 노조’의 입김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 한국에서 집단행동을 앞세운 노동계의 목소리가 더 커지면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성장과 분배’ ‘효율과 형평’은 모두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경제학은 자원의 희소성(稀少性)과 선택의 불가피성을 강조한다. 성장과 효율을 외면할 때 총체적 역량의 추락은 각오해야 한다. 아직 한국이 가야할 길은 멀다.
노무현 정부는 이제 경제정책에서 뗏목을 버려야 한다. 꼭 사람을 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보고 싶지 않은 현실’까지 직시하고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성공한 정부’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달리 대안이 없어 보인다.
권순활기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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