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과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한 ‘방사선 산업(RT·Radiation Technology)’이 국내에서도 활성화될 전망이다. RT의 산업적 응용에 대한 업체의 이해가 높아지고 정부에서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방사선, 안 쓰이는 곳이 없다=방사성 동위원소에서 방출되거나 방사성 가속기 등을 통해 생산되는 방사선(α, β, γ선 등)은 액체와 고체를 지나면서 물체의 기본적인 특성을 알아내고 물질의 특징(원자 분자구조 등)을 변화시킨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기본적인 특징을 이용한 다양한 산업이 등장하고 있다.
몸에 이식하는 인공 고관절은 7, 8년이 지나면 마찰부위가 닳아 다시 시술해야 하는 등의 불편이 있었다. 그러나 방사선으로 표면을 처리하면 내(耐)마모성이 크게 높아진다.
하수종말처리장을 거쳐 나온 하수를 방사선으로 처리하면 기존 방법으로는 제거하기 곤란했던 색도(色度)를 없애고 유기물 농도를 크게 낮춰 공업용수로 다시 쓸 수 있게 된다.
농업 및 생명공학 분야에서는 저장기간을 늘리거나 병과 추위 더위 등에 강한 품종 개량 등 다양한 분야에 방사선이 활용된다. 철강업체에서는 철강 원광을 녹이는 용광로에서 적절한 비율의 석회석 등이 섞였는지를 재는 것은 방사선 조사(照射)에 의한 검사가 필수적이다.
과학기술부는 전 세계 ‘RT 시장 규모’는 지난해 약 100억달러에서 2010년 500억달러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의 RT 산업은 이제부터, 편견 극복이 과제=국내에서 방사선이 사용되는 것은 병원에서 CT 등 진단장비가 대표적. 정유업체는 원유 저장 탱크에 얼마나 원유가 남아 있는지를 방사선을 이용해 측정한다. 건물 안전 진단 등에서 사용되는 비(非)파괴 검사에도 방사선이 사용된다.
하지만 선진국에 비하면 국내에서 ‘방사선의 산업적 이용’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과기부에 따르면 미국의 RT 시장(1997년 기준) 규모는 182조원으로 미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1.5%에 이른다. 이에 반해 한국의 RT시장 규모(2000년 기준)는 1755억원으로 GDP 대비 0.03%에 불과하다.
또 선진국에서는 정보기술(IT) 생명공학기술(BT) 나노기술(NT) 등과 연계해 RT 산업이 크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방사선=원자력 발전’으로만 인식돼 관련 기술의 발전과 산업적 이용이 활발하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12월 통과된 ‘방사선 및 방사성 동위원소 이용 진흥법’은 RT 산업 육성에 큰 힘이 될 전망이다.
또 직접 사업비만 1280억원이 투자되는 ‘선형 양성자 가속장치 개발’ 사업은 과기부가 ‘21세기 프런티어 사업’의 하나로 선정해 추진하는 것으로 국내 RT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릴 것으로 관련 업계는 기대한다.
과기부 조청원(趙靑遠) 원자력국장은 “정부는 진흥법과 양성자 가속기 사업 등을 통한 RT 산업 육성으로 2007년까지 500개 관련 기업에 2만명의 고용을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자력연구소 박경배(朴敬培) 박사는 “다만 일반인들 사이에 ‘방사선=원자력 발전’으로 잘못 인식돼 방사선은 위험한 것으로 오해되고 있어 관련 기술과 산업의 발전에 장애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유명 식품회사는 방사선을 이용한 첨단 방부처리에 대한 취재를 ‘정중하게 사양’했다. 회사 관계자는 “방사선 방부처리 사실이 알려지면 소비자들의 인식이 나빠진다는 우려가 있다”며 양해를 구했다.
구자룡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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