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 자본주의는 다음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 첫째, 기업은 주주의 소유물이고 따라서 주주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어야 한다. 둘째, 주주의 이익이란 주가로 표현되는 기업가치의 극대화를 말한다. 셋째, 이러한 기업가치 극대화를 위해서는 적대적 인수합병이 활성화되어 무능한 경영자를 갈아치울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기업가치의 극대화는 곧 사회적 이익의 극대화다.
일견 흠 잡을 데 없는 논리다. 주인인 주주를 위해 기업이 경영되고 사회 전체에도 이익이 된다는데 감히 누가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논리에는 이론적, 실증적 문제가 많다.
기업의 주인이 주주라는 것은 법적인 해석일 뿐이다. 실제로 영미계 나라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주주란 직접금융의 조달자로서 경영진, 노동자, 채권자, 하청업체, 지역사회 등 여러 이해당사자(stakeholder) 집단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주주 대부분은 기업의 장기적 성공에 따른 이익보다는 단기적 배당이나 주가차액만을 추구하므로 주주의 이익을 따르는 것이 기업의 장기적 발전에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리고 기업가치는 주식시장이 가장 잘 판단한다는 가정도 문제가 많다. 17세기 말 영국의 동인도회사에 대한 투기부터 20세기말 세계를 휩쓴 인터넷 거품까지 자본주의의 역사 300여년은 주식시장이 기업가치 판단에서 얼마나 비효율적일 수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실적이 분기별로 평가되는 주식시장의 속성상 ‘단기주의(short-termism)’의 만연이 불가피하고, 이는 설비와 기술에 대한 꾸준한 투자를 통한 경영을 어렵게 한다. 1990년대 초까지 미국이나 영국에서 주식시장의 단기주의에 따른 기업경쟁력 저하에 대한 우려가 팽배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적대적 인수합병이 활성화돼야 기업경영의 효율성이 유지된다는 주장도 근거가 희박하다. 일련의 연구에 따르면 어떤 기업이 적대적 인수합병의 대상이 되는가는 대부분 효율성보다 덩치나 자금 동원력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인수합병 뒤 기업의 효율성이 좋아진다는 증거도 없다. 대부분의 비(非) 영미계 선진국이 지난 50여년간 적대적 인수합병 한 건 없이 경제발전을 이룩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무엇보다 과연 주주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국민경제 전체에 득이 되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주주자본주의는 글자 그대로 주주의 이익을 추구하는 체제다. 따라서 주식시장이 교과서적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주주의 이익과 사회적 이익이 일치한다는 보장은 없다. 특히 주식시장이 단기적 효율성도 담보하지 못하고 장기적 투자를 어렵게 한다면 주주의 이익은 국민경제 전체의 이익과 배치될 확률이 높다.
주주자본주의를 추구한 영국이나 미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경제 성적표상으로는 ‘우등생’이 아니었다. 미국은 2차대전 직후 경제 규모로는 단연 1위였지만 실질적인 경제파워는 그에 따르지 못했다. 1990년대 말 소위 미국 경제의 ‘부활’도 주식시장의 거품에 힘입은 바 크다. 주주자본주의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영국은 유럽연합 15개국 중 끝에서 5등 내에 머무는 유럽 내 2류 국가로 전락했다.
한국도 주주자본주의가 자리 잡으면서 기업들이 장기 투자보다는 경영권 방어에 더 힘을 써야 하는 상황이 돼 가고 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아직 설비와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가 절실한 한국 경제의 앞날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기업 경영에서 주주의 이익뿐 아니라 여러 이해 당사자들의 이익, 나아가 국민경제의 이익을 고려한 체제 건설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볼 때 진정으로 주주를 위하는 길이기도 하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고려대 BK21 교환교수·경제학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