밋밋한 네모 철판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밀하게 잘리고 서로 묶여 63빌딩보다 더 큰 선박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보며 기자는 말을 잊었다.
13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는 분주했다. 초호황을 누리고 있는 국내 조선업계의 분위기가 그대로 살아있었다. 삼성중공업은 초대형 컨테이너선 수주량 1위를 기록하는 등 부가가치가 높은 선박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조선소에선 현장의 아이디어가 생산성을 높이고 품질 관리에 접목되는 경영 혁신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생산성을 높여라=수주 물량이 쏟아지면서 조선업계의 관심은 조선소 설비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에 쏠려 있다. 1∼3독에 이어 최근 부상(浮上)형 제4독까지 풀가동하고 있는 삼성중공업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독은 마치 ‘레고’를 조립하듯 중간 단계의 생산품인 블록을 결합해 선박의 모습을 갖추는 최종 조립장. 보통 100여개의 블록을 조립해 하나의 배가 만들어진다. 삼성중공업의 고민은 독 설비가 충분치 않아 생산성 향상의 병목 노릇을 한다는 점.
고민 끝에 나온 게 ‘메가 블록’ 공법이다. 배 하나 짓는 데 필요한 블록수를 8개로 줄이고 대신 블록의 크기를 늘렸다. 생산운영팀 최한일 부장은 “바깥에서 블록을 만드는 기간을 늘리면서 11만t 규모의 유조선을 지을 경우 보통 2.5개월 걸리던 독 작업이 당장 1.5개월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독의 회전율을 높인 것.
최근 조선소에선 자동화 작업이 한창이다. 삼성중공업의 자동화는 ‘현업 밀착형’으로 이뤄지고 있다. 연구원이 현장과 계속 의견을 조절해 가며 자체적으로 자동화 설비를 만들어낸다. 조선플랜트연구소 김세환 수석연구원은 “공정 혁신과 연결해 자동화 작업이 이뤄지면서 효과가 배가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까다로운 품질 관리=조선업계 고객은 까다롭다. 배가 워낙 비싼 물건이다 보니 조그만 결함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2001년 고객 설문을 통해 불량률을 처음 수집한 삼성측은 깜짝 놀랐다. 자체적으로 판단했을 때 0.4%였던 불량률이 고객 조사 결과 6.8%나 됐던 것. ‘안 되겠다’ 싶어 아예 고객 체감불량률이라는 지표를 마련했다. 품질 지표의 최고 수준인 ‘고객 인지(認知) 품질’을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체감불량률은 1.0% 수준.
품질보증그룹 우용환 그룹장은 “품질에 대한 생산자의 기준이 고객의 기준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인식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최근 선박 건조 과정에 자동화 물살이 거세지만 손으로 하는 용접 비중은 여전히 높다. 삼성은 협력사를 포함해 6000여명에 이르는 용접사에 대해 ‘실명제’를 도입했다. 용접사마다 용접 결과를 분석해 불량 원인 등을 가려낸 후 개인별로 알려주는 제도. 이와 함께 매년 8명의 우수 용접사를 선발해 총 2억원가량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실패 비용을 감안하면 200억원을 절약한 효과가 있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꿈★은 이루어진다=‘꿈★은 이루어진다. 2006년 세계 1등.’ 거제조선소 곳곳에 적힌 구호다. 구호대로 세계 조선 시장은 한국 업체들이 주도하고 있다. 50여년간 시장을 지배했던 일본의 경우 선행 투자에 실패해 몇 해 전부터 기술적으로 앞선 선박이 나오지 않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부가가치가 높은 선박 건조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세계 최대 규모인 81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수주한 후 현재까지 같은 크기로 17척을 수주하는 등 초대형 컨테이너선에서 가장 앞서 있다. 심해유전개발용 특수선인 굴착선, 부유식 원유생산저장선박, 셔틀탱커 등의 분야 역시 세계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는다. 2006년까지 일반선까지 포함해서 업계 1위를 달성하겠다는 각오다.
조선기술영업팀 공도성 부장은 “외환위기 이후 국내 선사의 주문이 전혀 없어 100% 해외 시장에서 수주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경영체질이 개선된 것이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거제=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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