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로 치면 민주노총 및 진보적 시민단체에서나 나올 법한 주장들이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 곳은 미국의 ‘책임 있는 부자(Responsible Wealth)’라는 단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사 회장의 아버지인 빌 게이츠 시니어, 한국인에게도 익히 알려져 있는 조지 소로스 미국 퀀텀 펀드 회장, CNN 창업자인 테드 터너 등이 이 단체의 회원이라는 사실을 알면 사람들은 충격을 받을 것이다. 이들은 지난해 5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상속세 폐지에 대해 정면으로 반대하며 뉴욕 타임스에 자신들의 의견을 광고까지 하고 나섰다. 주가 조작, 분식 결산, 편법 상속 등이 흔히 이뤄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부자와 대기업들에 비하면 진실로 ‘책임 있는 부자’들이 아닐 수 없다.
▼기업들 버는만큼 잘쓰는것 중요 ▼
‘아름다운 재단’이 18일 금융감독원에 제출된 상장기업 감사보고서를 토대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30대 기업(공정거래위원회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순위)들의 평균 기부액은 200억원, 매출액 대비 기부금 평균비율은 0.15%로 집계되었다. 이 기부금 항목에는 정치자금이나 사내 근로복지기금, 체육단체 기부금 등과 같은 준조세 성격의 기부금에다 수재의연금이나 연말 불우이웃돕기성금까지 포함되어 있어 기업이 자발적으로 내는 기부금은 극히 적을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나라의 전체 기부금 중에서 기업이 내는 기부금이 거의 80%에 이르는 게 현실이다. ‘아름다운 재단’이 벌이고 있는 ‘1% 나눔운동’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수와 이들이 내는 기부금도 크게 늘고 있기는 하지만 역시 목돈을 기부하는 것은 큰돈을 만지는 기업일 수밖에 없다. 기업이 수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자선에 사용할 때 사회는 보다 더 풍요로워지고 아름다워질 수 있다.
한때 ‘경제동물’로 불리며 돈버는 데만 관심을 갖고 지역사회에 아무런 기부와 공헌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던 일본 기업들도 세계시장에 진출하면서 원칙과 입장을 바꾸었다. 지금은 세계의 자선과 기부시장에서 큰 손이 된 것이다. 번 만큼 많이 써야 영리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는 당연한 원리를 체득했기 때문이다. 지금 전 세계는 ‘자선의 경쟁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빌 게이츠 회장은 재산의 60%를 에이즈 퇴치사업에 내놓았다. 1998년부터 그가 5년간 내놓은 돈은 무려 28조원에 이른다. ‘비즈니스 위크’지는 매년 ‘기부자 50인’ 특집을 꾸미면서 기부마인드의 확산을 꾀한다. 기업이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우고 있다.
물론 우리에게도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상장기업은 아니지만 수익의 10%를 꼬박꼬박 자선과 공익에 사용하고 있는 기업도 있고, 세전이익의 1%를 매달 소외지역의 청소년들을 위한 공부방을 만들어주는 데 사용하는 기업도 있다. 대기업 중에서도 기부금 비율은 아직 낮지만 전략적 목표를 세우고 사회공헌팀을 만들어 효율적 사회투자를 위해 노력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 전경련에서도 ‘1% 클럽’을 만들어 보다 많은 수익의 사회 환원과 투자를 독려하고 있기도 하다.
▼많은 기부가 더 큰 성공 가져와 ▼
그러나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사회에 많은 돈을 기부하는 기업이 대국민 이미지가 좋아져 경제적으로도 성공한다는 사실이 점차 입증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기부에 대한 인센티브가 확실히 주어지도록 세제를 개편해야 한다. 현재 기부금이 손금(損金)으로 인정되는 것은 개인의 경우 소득의 10%, 법인의 경우 법인 소득의 5% 한도 내에서다.
아직도 우리 사회를 ‘천민적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진정한 자본주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최소한의 윤리와 의무를 부자와 기업에 부과하고 있다. 부자와 대기업이 더 큰 기부를 통해 사회적 존경을 받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랄 뿐이다.
박원순 '아름다운 재단' 상임이사·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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